나는 분명히 상하이로 가는 여행길에 올랐다.

2주 전 금요일에 나는 꽉 채운 배낭을 메고 출근했다. 내가 4박 5일로 상하이 여행을 떠나는 날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훌륭한 휴가 정책과 문화를 가진 회사인데도 괜한 무의식적 주저함이었는지 입사하고 4달 동안 휴가를 하루도 쓰지 않았었기에, 첫 휴가는 동료들의 적극적인 축복과 어쩌면 약간의 질투까지 받으며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시계가 다섯 시를 가리킬 때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며 회의실을 박차고 나와, 귀에 리하나를 꽂고 김포로 가는 공항철도에 몸을 실었다.

중국동방항공 카운터 앞에는 관광을 마치고 귀향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중국인들이 길고 두꺼운 줄을 지어 알록달록한 여행가방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수하물카트를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줄은 그 카트들로만 이루어져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배낭만 맨 나로서는 은근히 계속 카트를 내 앞으로 밀어놓는 뒷 남자에게 새치기를 당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출발이 1시간 30분 정도 남은 시각이었는데, 엄마와 동생이 미리 두 개 인터넷면세점을 통해 주문해 놓은 물건 픽업까지 해야 할 것이었기 때문에 약간 조급해졌다. 카운터 한 곳에는 꽤 배가 부른 한 임산부 직원이 무리해서 수화물을 벨트에 올리고 있었다. 나는 그 직원이 나를 맡아서, 잠깐이라도 수화물 처리 없이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옆의 남자 직원이 내게 손짓했고, 나는 앞으로 나와 여권을 가죽 케이스에서 빼어 그에게 건냈다. 그는 내 여권을 앞뒤로 몇 번이나 뒤적거리면서 흘끔흘끔 나를 올려다본 뒤, 이렇게 말했다.

「죄송한데, 중국 비자가 없으셔서 오늘 못 가세요.」

그 순간, 나는 그 말에 대한 대답을 생각하기도 전에 그의 말이 나를 새치기하려던 뒷 남자에게도 들릴 정도로 크지는 않았는지 재빨리 염려했다. 지금 들려온 말인즉슨, 내가 4박 5일 떠나려고 하는 상하이란 곳이 비자가 있어야 하는 곳인데, 나는 어릴 적 중국 여행을 해 봤음에도 불구하고 까맣게 잊어버려서 비자를 전혀 신청조차 한 바 없다는 그 명백한 사실의 서술이구나. 중국 비자가 없으셔서 오늘 못 가세요… 온전히 나도 아는 말들의 조합으로만 이루어진 것치고는 너무나 충격적인 문장이었다. 뒷 남자는 임산부 직원에게 산더미같은 가방을 넘긴 뒤, 내 뒤로 유유히 카운터를 빠져나갔다.

「그럼 비자를 받는 데에는 얼마나 걸리나요?」 나는 짐짓 오늘 출국을 못 하는 것이 크게 대수롭지도 않은 것처럼 일상적인 억양을 꾸며내어 물었다. 아무리 빨라도 사흘은 걸린다고 했다. 환불은 어떻게 하는지 물으니, 구매처에 따라 다른데 저 뒤쪽에 있는 항공사 영업 카운터로 가서 문의하라고 했다. 그에게 물을 질문이 동이 난 나는, 내가 왜 국외 여행에 앞서 비자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않고 있었는지에 대한 답을 잠시간 필사적으로 찾아보았다. 직원은 내가 그 답을 찾는 것이 자기 업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저 쪽으로 가 달라는 부탁을 어떻게 하면 정중하게 할까 고민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면상에 서둘러 고맙다는 말을 던지고, 옆으로 나왔다.

중국동방항공 영업 카운터 직원은 인터넷으로 예매한 항공권이니 인터넷으로 직접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왜 이 카운터에 취소를 부탁할 수는 없는 것인지 통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납득이 안 되는 건 내가 비행기표를 끊어서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에 대한 스스로의 기본지식을 과대평가한 내 탓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순순히 몇 발짝 뒤 의자에 앉아, 테더링한 인터넷으로 이십여분만에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항공권 취소 버튼을 눌렀다.

다음은 에어비엔비 숙소 예약 취소였다. 호스트와는 전날부터 도착 시간과 입실 방법 등에 대해 연락을 하고 있었다. 앱으로 자초지종을 적은 메시지를 보내놓고 나서 리스팅을 다시 훑어보니, 환불정책 란의 ‘엄격’이란 단어가 눈에 튀어나와 박혔다. ‘엄격’이라 함은, 체크인 7일 전부터 숙박비를 일부도 환불받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비행기표를 끊자마자 신이 나서 환불정책 확인도 하지 않고 숙소를 잡았던 순간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아이러니 만세였다. 내가 지난 한 주 내내 회사에서 서비스 환불 정책 사용자경험을 다듬으면서 주된 사례로 참고한 것이 바로 에어비엔비 환불 정책 인터페이스였다. 판매자마다 제각각으로 작성하면 혼란을 줄 수도 있는 다양한 환불 정책들을 큰 갈래로 묶어 ‘유연,’ ‘엄격’ 등으로 간단히 표기한 에어비엔비의 서비스 디자인이 우수하다고 여겨 참고한 바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렇게 간단한 표기를 지나쳐버린 사용자라는 것을 알고 나니, 그 단순한 디자인을 고약하게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는 또 마침 읽고 있던 전자책이 있었다. 진짜 생활을 위한 디자인 (Design for Real Life)이라는 서비스 디자인 책인데, UX 디자이너들로 하여금 웹사이트나 앱 등을 만듦에 있어 문제없이 거뜬히 서비스를 이용할 처지가 되는 평균적인 사용자만 위하는 디자인에서 벗어나, 특수한 상황에 놓인 사용자들을 미리 배려하는 디자인을 할 것을 주문하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응급실로 향하는 택시 속에서 복잡한 병원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환자의 보호자라든지, 딸을 잃은 해 연말에 페이스북에서 ‘신나는 한 해를 돌아봅시다’ 기능을 맞닥뜨리는 부모 등, 기존의 사용자경험 디자이너들이 ‘가장자리 사례(edge case)’로 치부해 고민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사례들을 ‘스트레스 사례(stress case)’로 바꾸어 디자인 과정의 중심에 놓는 것이야말로 진짜 생활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스트레스 사례에 놓인 사용자에게는 일반 사용자처럼 꼼꼼히 글을 읽고 완벽하게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리라는 기대를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서비스 제공자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질문이나 좋은 뜻으로 써 놓은 문구, 처리 효율만 생각해 마련해 놓은 단계 등이 스트레스 사례에서는 사용자에게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상처를 입히거나 예기치 못한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저자들(Eric Meyer & Sarah Wachter-Boettcher)은 수십 가지 실제 사례를 들어 강변한다. 웹 플랫폼을 디자인하는 입장으로서,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기 힘든 그런 사례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해 주니 참 유용하다고 생각하며 난 그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 날, 공항 한복판에 앉아서 온라인으로 항공권과 면세품, 숙소 예약을 취소하고, 그와 동시에 반대쪽 머리를 돌려 새로운 계획으로 그 각각을 대체하는 작업 앞에서 머리속에 연기가 피는 느낌이 드는 상황에 드니, 지금 내 상황이 바로 스트레스 사례의 훌륭한 예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예상대로 호스트로부터 환불 곤란을 알리는 메시지가 온 지 몇 분 안 되어, 나의 홍콩 소년 해리의 문자도 도착했다.

「지금쯤 도착했어? 나 사실 어제까지도 상하이 가는 표 검색하고 있었어. 졸전 준비 때문에 못 가서 속상해. 오랜만에 같이 놀고 싶었는데…」

나는 말없이 공항 벤치에 널부러놓은 짐을 다시 꾸려 한 층 아래 있는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평소엔 이름을 다 읽어본 적도 없는 오레오 들어간 크림 블렌드 음료를 시켰다. 구석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맥에서 결제가 가능할 것 같은 중저가 항공사 홈페이지를 두세 개 탭으로 띄워 놓고, 해리에게 답장했다. 「아니, 나 오늘 홍콩 가려고.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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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괜저는 상하이 여행엔 중국비자 사전발급이 필요하다는 것을 출국 당일 인천공항 보딩 카운터에서야 깨닫고, 중국 언저리에 보고싶은 지인이 있는 홍콩으로 급하게 행선지를 바꾸어 여행한다. 이직후 4개월만의 첫 휴가라 동료들로부터 나름 우아하게 환송받고, 리한나와 함께 공항에 도착했는데, 어떤 방심 탓에 … 그러나 재빨리 차선을 택한다. 환불없는 상하이 숙소와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가족의 면세품에 머리가 약간 지끈거리지만 결과적으로 상하이든, 홍콩이든 어떤 곳도 괜찮을 일이었다.

  2. NP

    You are your deus ex machina.

  3. 하연

    글들이 매력적입니다.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리며 읽고있네요. 오늘 저는 좋은 웹 사이트를 우연히 찾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