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흠잡을 데 없는 수치를 겪었다. (1/3)

15 04 21 The Sunset WEB - 120607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는 중간에 새벽에 클라이언트와 전화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다. 개발이 반 정도 끝난 터치스크린용 인터랙티브 지도 어플리캐이션을 발표하고 클라이언트의 감상과 주문사항을 들으면 되었다. 지금 회사 자금운용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프로젝트였고 나는 코딩부터 방문판매까지 운전만 빼고 모든 것을 담당하고 있었다. 내 여행일정이 더 한가할 줄 알았기에 샌프란시스코와 뉴저지의 시차를 개의치않고 시작시간을 새벽 6시로 확정한 것을 후회했다. 모건이나 제니네 집에서 새벽 미팅을 하기가 뭣해서 하룻밤만 호스텔을 잡았다. 푹 쉬었어야 했는데 늦게까지 마시고 놀아버렸다.

잠을 거의 못 잔 채로 새벽을 맞았다. 로비에서 국제전화 거는 독일 아저씨 맞은편에 앉아 전화 미팅을 했다. 그럭저럭 잘 지나갔다. 미팅이 끝날 때쯤 되니 날이 밝아서 공항 셔틀을 타려고 나온 투숙객들로 시끌벅적했다. 방으로 돌아가서 체크아웃 시간까지 눈을 붙였지만 주위가 부산스러웠다.

호스텔을 나와 걸었다. 찌뿌둥했다. 여드름이 났다. 더웠다. 두꺼운 청바지 대신 얇고 발목에 시보리가 있는 트레이닝 스타일 면바지를 사 입고 싶었다. 별로 생각할 것 없이 웨스트필드 몰에 있는 제이크루에 갔다. 머리속에 그렸던 그 바지가 딱 있었다. 한국에 가기 전에 봐 두었던 흰색 나이키 킬샷도 30% 세일이라고 했다. 바지와 운동화를 사서 나오자 기분이 좀 누그러졌다. 얼굴에 바르는 것 몇 가지가 떨어졌는데, 이 참에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층에 드러그스토어와 키엘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 그리로 향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