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에끌레 베어 무는 소리를 들었다.

대략 이런 느낌의 밤이 있었다. 밖은 눈보라, 안은 빛보라(…)였다. 친구가 디제이라는 것을 빼면 나나 내 친구들과는 하등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공간이었다. Montauk 같은 동네에 있는 부자집 브라운스톤에서 부모가 로마로 금혼식 여행을 떠나 있는 동안 망할 아들놈이 이층 서재에서 아는 사람 다 불러 Baz Luhrmann 식의 잔치를 벌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정도 컨셉 과잉이면 사람들은 좀 몸 풀고 있어야 멋있는데 바텐더부터 다들 너무 어깨가 딱딱해서 재미가 없었다. 턴테이블을 넘기고 나온 Brett도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목요일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신이 나지가 않아서 공짜 술권이 떨어지자마자 나왔다. 공짜 술권은 무척 많았다. 20점.

며칠 뒤 파리시절 친구 Matt네 집에서 밤늦게 모였다. 이 친구도 파리 이후 참 다양한 판을 거쳐왔는데 이날 모인 몇 안 되는 친구들의 연기 먹은 얼굴에 그게 짠하게 드러나보였다. 저녁 다섯 시 갖기도, 새벽 다섯 시 같기도 한 편안하고 알쏭달쏭한 밤이었다. 사진 하는 친구가 있어 되는대로 사진 얘기를, 피아노 치는 이웃이 놀러와서 되는대로 피아노 얘기를 했다. 나는 시끌벅적할 줄 알고 에끌레를 사 갔는데, 에끌레 베어 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하게 놀았다. 70점.

그리고 지난 금요일 밤에는 마말과 YS, HG과 만나 저녁을 먹고 나서, M.M.J. K. 등이 Cake Shop에 있대서 마말과 둘이 합류했다. 대학생활 거의 전체를 함께 해 어지간한 자리에서는 나와 가장 오래 된 친구인 M.M.은 거의 십년지기인 마말을 만나고 처음으로 나에 대해 물어보는 입장이 된 것에 신이 났다. M.M.J.K.는 서로 둘도 없는 단짝인데도 나와 동시에 만나는 게 처음이었다. 몇 년 전 추수감사절에 갈 곳이 없어 모인 친구들 중 한 명인 J.J.도 있었다. 앞으로 한동안은 친구 목록이 크게 바뀔 일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리믹스를 계속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옆 자리엔 체크 남방과 가죽외투로 무장한 일당이 주섬주섬하더니 아이스크림 서너 통과 풍선 한 더미를 꺼내놓았다. 밤새어, 목놓아 풍선을 불었다. 9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