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Ka 집에서 강아지, 첼로, 보드카를 가지고 놀면서, 참 애매한 나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조금만 어린 짓을 하면 좌르륵 미끄러져 어린애가 되는데 그런 어린 짓이 친한 동무들 앞에서는 아직 허용된다. 많이들 하루종일 「이제 이러면 안 되는 건가」 이 생각으로 사는 것 같다. 서울의 우리 또래처럼 주변에 올바른 청춘의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 압박은 없지만 대신 그 때문에 스스로 더 안전에 신경을 쓴다. 나도 알고 지냈던 Ya의 어머니가 재작년 돌아가셨을 때, 상병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뉴욕에 누군가를 위해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괜스레 Hayden 학생식당에 가서 두 시간 정도 죽치고 있었다. 어색한 그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학생들도 학생들이지만, 돈 참 잘 버는 우리 학교가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전파하는 그 낯간지런 방식이, 채식하기 좋은 이 학생식당의 높은 천정에 가득 들어있었다. 뉴욕에서 미국을 가장 몸둘 바 모르게 느낄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우리학교다. 케일과 감자를 먹었다. 아, 미국에 산다면 알겠지만 내가 없는 삼 년간 미국에서는 케일(푸슬푸슬하고 쌉싸름한 쌈채소)이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성장을 거듭해 채소세계의 왕좌를 차지했다. 불편하다.

  1. JHani

    NYU…다니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헐?! 저 이 블로그 완전 열심히봤는데….

  2. 김괜저

    뭘 새삼스럽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