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드시 단서를 단다.

별 일 없이 사는 누나와 나는 광화문집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끓고 있던 김치찌개를 든든하게 먹은 뒤, 용기를 내어 장학회를 방문했다(기 보다 내가 끌고 갔다). 다행히 무사히 방문을 마치고 Anish Kapoor전도 잘 보고 왔다.


「군대 갔다 와서 달라졌네」소리 듣기 십상인 시절이다. 말을 하면 「군대 갔다 와서 말 참 잘 하네」고 잠차코 있으면 「군대 갔다 와서 과묵하네」 한다. 군대 갔다 와서 달라졌다는 말은 보통 틀린 말이다. 일단 그냥 어디에서건 나이 두 살 먹으면 사람은 변한다. 또 내 경우엔 ‘외국에서 지내다가 투덜거리며 들어와서 처음으로 ‘한국 대학생’에 대표성 있는 친구들과 생활하고 ‘한국 직장’ 대표할 만 한 환경에서 초박봉으로 일 보면서 부글부글 끓는 순응(conformity)의 물에서 반숙 상태의 의식을 건저내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다가 말다가하며 슬프지만 즐겁게 살았던 경험에 의해 좀 달라졌다’가 정확한 말이다. 다른 군으로 다른 때에 다른 마음으로 가서 다른 사람들을 만났으면 다르게 달라졌을텐데 ‘군필남’으로 편리하게 정형화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군대 갔다오면 누구나 눈부신 인격적 발전을 이룬다는 게 만약 엄연한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모두 군대를 가야 하는 이유로는 쓸모가 없다. 지금 사람들이 군대에 끌려가는 이유는 병력이 필요해서지 갔다오면 사람 돼서가 아니다. (여성이 끌려가지 않는 이유는 생물학적 성별의 차이가 동성간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차이들(성장 배경, 성격, 나이, 체력 등)과 비교해도 워낙 ‘결정적으로 중요’해서 국방의 의무를 차등 부과하는 최우선의 기준으로 삼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자는 군대를」 어쩌구는 적극적으로 줄여야 할 말습관이다. 또한 현실이 이건데 개인화된 경험 총평을 소주 마시면서 일반론으로 아무렇게나 확장하여 「내가 가봤더니 얻을 것도 많더라」라며 추한 부분에 꽃꽂이 하는 것도 참 도움 안 되는 짓이다. 그래서 누가 군 생활 어땠느냐 물어보면 늘 좋았다고 하지만 반드시 단서를 단다.

  1. 지나가던사람

    상당히 공감가는 글이네요.
    사람들이 자기 군대이야기 풀어놓으면서 군대도 한번쯤 갈만한 곳이다 비슷한
    늬앙스를 풍기면 재밌게 들으면서도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ㅋ

  2. 김괜저

    그렇습니다.

  3. neru

    근데 군대같다온 사람들이 군대안간사람은 정신못차리고 평생산다는 투로 말하더라고요. (부모덕이니 뭐니 요리조리 빠져나가서 잘만사는 남자들은뭐지?)

    그럼 여자도 보내던가… 여자는 안가서 모른다 철모르고 편히산다는투로말하는데 불편.

    군에서 무슨 철을 얼마나 먹어서 오는지 그놈의 철든다 안든다를 군대경험유무에 갖다붙이는 소리, 얼마나 짜증나는지 말하는 그사람들은 알까요?

    그러니까 갔다온사람들하고 안갔다온사람들이 같이 대화하면 피곤해지는것같아요. 아예 갔다온사람들끼리 대화많이 하면 될 듯.

    안갔다온(안가는)사람들이 좋게들으려해도 너무 자기고생,울분,억울을 곁들여 얘기하시는분이많아 뭐라한마디하면 화살10개는 날라오는것 같아요.

  4. 김괜저

    그런 분들에게는 그냥 닫아야죠. 군대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면 많은 남자들의 밑천을 알 수 있습니다.

  5. 매화향기

    마젠타에 이끌려 여기가지 왔습니다. 마젠타의 아름답고도 유혹적이고도 평이하면서도 평이하지 않은 이런 색상에 대한 매력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글에 감동자국 남기고 갑니다

  6.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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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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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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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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