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고 나오고 또 두고 나오고 가끔은 계속 이러는 내가 별루다.

후임 출신 친구 Light을 만난 광화문 깡장집에 런던에서 산 회색 카디건을 두고 나왔다. 광화문에서 남대문시장까지 걷는데 날이 무척 포근해서 없어진 것을 몰랐다. 나는 이날 정오에서 네시 사이에 그 거리를 총 네 번 왔다갔다했다. 도심은 걸어갈 만 한 곳이 너무 많아서 신나서 싸돌아다니다 보면 이미 하루는 가고 발은 붓는다. 좋아라.

남대문에서 렌즈 뚜껑을 몇 개 샀다. 이런 거 하나 사면서까지 옆집은 얼마고, 저번에는 얼마였고, 군인 같은데 잘 챙겨줄테니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영세하다는 이유 그 하나 때문에 굳이 정의감에 불타 발품 팔아 소비하는 것인데 예전만큼 싱글벙글하고 여유있는 (이게 핵심) 상인들 보기 참 힘들다. 장사 안 되는데 인심이 후하면 부처지 사람이게. 그렇게 새로 산 뚜껑을 끼워 들고 다니다가 덕수궁에서 약속을 기다리면서 던킨도너츠 (커피랩 언제 없어졌냐) 통창 너머로 사람들을 당겨 찍었다.

남의 얼굴을 그냥 찍어 올리는 것도 실례고 마네킹처럼 이렇게 뭉개는 것도 실례겠지만 얼굴을 뺀 나머지로 얼마나 훌륭히 인물화일 수 있는지가 재미있기 때문에 계속 이렇게 하게 된다.

같은 날 남대문에서 만 삼천 원에 산 사냥모자가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밤에 커피집에 그대로 두고 나와버렸다. 다음날 종로까지 다시 올라가 가져오는 수고를 했다. 이제 만 육천원 짜리다. 예전에 산 걸 또 산 모자를 생각하면 이 정도 뻘짓은 일상이다.

  1.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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