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전을 보고 와서 열심히 사진을 보정했다.

비가 얼마나 반가웠는지는 생략해도 되는 정보다. 다 젖게 걸어다니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편하게 부모님 차 타고 광화문 정도로 시원하게 다녀오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깊은 애착이 있는 우리 가족은 더 이상 거울천장을 보며 목 젖힌 채 걸어다닐 수 없는 슬픔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거길 간다. 서로의 독서 취향이 분명하고 각자 최근 들어 독욕(讀慾)이 크게 늘고 있음에 따라 시간 낭비를 삼가고 곧바로 뿔뿔이 흩어져 책을 모았다. 나는 십 년 전부터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있었던 소설 몇 권과 대단히 시대성 짙은 한국 현대정치철학서 여럿, 또 그보다도 가벼운 시사 단행본 두셋을 샀다. 그런 단행본은 내용을 읽고 싶어서라기보다는 해당 세력, 해당 메시지에 힘을 보태고 도의를 강화하고 싶은 욕심에 산다고 보는 것이 맞다.

다들 산 책이 무거워서 차에 두고 다시 내렸다. 세종문화회관의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전을 관람했다. 사진을 줄창 찍고 다니는 건 나지만 이른바 거장의 대표작들을 참을성있게 찬찬히 관람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건 부모님 쪽이다. 내게 브레송은 순수주의 사진철학의 불편한 성자로 느껴질 때가 많다. 거리와 연출없는 인물을 사랑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사진이 예술이 되는 순간은 사진가가 양껏 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는 사진이 예술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는 그만큼 ‘위대한’ 사진을 만들 생각은 없지만 훨씬 천박하고 같잖고 무시당하더라도 단 일그램의 ‘예술거리’를 함유한 화상을 만든다면 만족한다.

그나저나 어떤 생각으로 브레송과 아무 관련없는 라이카 기종들을 버젓이 전시물의 일부인 것처럼 내놓았을까. 공간의 활용이나 조명, 안내 방식, 직원들의 두드러진 활보, 심지어 벽지까지 실제로 전시를 만드는 과정에 투자가 턱없이 부족한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잘못된 영상이 돌아가고 있지 않나……. 방학을 맞은 중학생들이 노트에 작품설명 전체를 꼼꼼히 적으며 불쌍한 모습으로 관람할 정도로 흥행이 예상된 전시면 신경 더 썼어야 했다.

오늘부터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레티나 등)에서 보는 사람을 고려해 사진해상도를 두 배 올렸다.

  1. nuristep

    헤헷 사진 분위기들 정말 좋네요!
    저도 앙리까르띠에전 다녀왔는데, 라이카를 보고 읭?=ㅁ= 했었다지요. 휴식공간도 좀; 분위기랑 너무 동떨어져 있었구요;

  2. 김괜저

    정말 전반적인 인상이 읭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