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일을 맞아 춘천에 갔고, 부모님이 이십칠년 전에 갔었던 까페 이디오피아에도 들렀다.

씨스터는 무려 디즈니월드에서 인턴을 하게 된 관계로 어제 출국했는데, 그래서 지난 달부터 자기도 괜찮은 사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집안에서는 요구를 받아들여 나와 논의하에 쓸 만한 소형 DSLR이나 Mirrorless 사진기 중 선택하라고 했는데, 씨스터가 애초에 눈독을 들인 것은 소니 NEX F3였고 내가 살짝 권한 것은 니콘 D3200이었다. 결국 소니로 정해 산 이튿날 우리는 내 생일이라 소박하게 계획해 놓은 대로 춘천으로 반나절 나들이를 갔는데, 가는 차 안에서 내 사진기 전지가 바닥난 게 드러났다. 밤새 분명히 꽂아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선풍기를 꽂으면서 누군가 내팽개친 것. 누가 김병장 충전기를 뽑았냐고 으르렁대었지만 이미 늦었다. 그래서 이 날의 사진은 전부 빤짝반짝한 NEX F3으로 찍고 색을 뭉개 칙칙한 흑백으로 누른 것이다.

명동에서 먹은 닭갈비와 막국수는 당연히 맛있었다. 사실 원래 계획은 속초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심순네에 가서 간장게장을 먹고 더 늦게는 회를 먹고 연수원에서 자고 아침에 돌아오는 거였는데 비가 많이 오는데 그렇게까지 갈 게 있나 또 흙탕물이 연상되어 수산물이 별로다, 그런 여론이 형성되어 축소한 것이었다. 난 이천년대 중반에 여름마다 춘천에서 해비타트 사랑의 집짓기 여름 ‘번개건축’에 참가했었는데 때마다 굉장한 쟁반막국수를 먹었었다. 그 때가 생각나서 비빔 막국수를 먹으려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 우리처럼 수도권에서 한 끼니 하려고 온 아버지 아는 분도 주차장에서 마주쳤으니 춘천이 가까워지긴 한 모양이다.

‘이디오피아집’은 공지천에 위치한 에티오피아 참전기념관 옆에 있는 1세대 커피집이다. 68년 개업한 여긴 우리 엄마아빠가 1985년 연애하다 왔을 그 당시에도 오래 되어 이름난 곳이었다. 지금 가니 찬 음료 잔에 공기같이 움푹한 잔받침을 내오고, 볼링공 같은 대리석 식탁에 사장님 푹신의자를 맞춘 배짱이 무척 인상적인 곳이었지만,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하고 오리배 선착장에서는 아주머니가 내려오라, 내려오라 애타게 외치는 공지천은 생일을 맞은 나처럼 낡아 없어져 가는 것들이 아쉽게 좋은 마음이 아니라면 오더라도 흠뻑 빠질만 한 데는 못 돼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서 아직도 운전을 못해 뒷좌석에서 아이폰을 만지작거리는 아들(만 24세)은 그러지 않기로 했는데도 깜빡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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