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저렇게는 김괜저의 블로그이오니 잘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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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렵게 생각하는 것을 중단한다.

어렵게 생각하는 병은 고치기 참 어렵다. 고치려고 드는 생각이 다 어렵기 때문이다.

어제 일터에서 내 이런 점에 대해 답답함을 표출하고 나서 집에 왔는데 밤에 잠이 안 오는 거다. 내가 밤에 잠이 안 오는 일은 일 년에 두세 번 밖에 없는 일이다. 어찌저찌 아침이 되어 머리를 비우고 싶어서 아침을 먹으면서 Bojack Horseman 에피소드를 하나 봤다.

나는 일산에 갈 사정이 있었다.

백석역 터미널 건너편에는 ‘4050을 위한 새로운 놀이터’가 곧 개장한다는 대형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4050이라면 실제로는 50이 대세인 놀이터일 것으로, 또 일산 신도시 분양 초기에 입주했던 세대가 딱 그 나이대일 것으로 짐작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일산에 가끔 가게 되는 이유도 그 연령대인 우리 삼촌네 집이 있어서다. 신도시에 중장년 놀이터(뭔지 다 알 수는 없으나)가 있는 모습이 생경했다.

나는 우유를 쏟았다.

지난주, 일 년 동안 주된 컵으로 사용해 온 도자기제 컵 하나를 깨트렸다. 내가 산 것은 아니고 동생이나 엄마가 대만이었나 여행을 다녀오면서 현지 스타벅스에서 보고 예뻐서 산, 붉은 게 그림이 그려져 있는 컵이었다. 벽이 이중으로 되어 있고 크기가 적당히 큼지막해서 뜨거운 차도 얼음 넣은 커피도 편하게 마시기 좋았다. 무게가 꽤 나갔기에,

나는 추석에 어디 안 갔다.

어쩌다 보니 이번 추석은 조촐하게 우리 가족끼리만 보내게 되었다. 추석 전날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러 갔다. 할머니는 어디가 아픈지도 모를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읽은 신문을 칼같이 접어 노끈으로 묶어 배출한다. 옆 집 할아버지 식구에요, 하니까 옆 가게 주인이 주차자리를 내 주었다. 할아버지는 대뜸 나더러 결혼을 일찍 하라고 한다. 지금 한들 할아버지 세대로 치면 일찍은 아니겠으나,

세상 너무 넘어져 있어

세상 너무 넘어져 있어 집에 가는 길이 다 기울었네 내가 용서하는 사람은 나를 용서하지 않고 심지어 내 용서조차 이내 가짜가 되어 9호선 급행으로 도망치네 내가 잘 모르고 낯설어하는 목동 부근으로

내가 지킨 침묵도 내가 깬 침묵도 내 표정 연기와 액센트를 비웃네 내 선의 약점 되어 차 안에 갇힌 아기처럼 뜨겁네

세상 너무 넘어져 있어 집에 가는 길이 다 손해이네

그러나 날 보고 누군가는 멀리서 엽서 날리며 날 못 본 동안 얼마나 다 그르쳤느냐 고마운 시비를 거네

세상 원래 넘어져 있어 너도 나도 진작 엎어졌어

나는 장볼 때 많이 사는 것들을 나열한다.

뉴욕 살림 5년 했기 때문에 서울 살림도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나 하나 간수하면 되는 원룸 자취라 실제로도 크게 어려운 일은 없었지만, 서울에서 식단을 꾸리고 장을 보고 요리하는 건 처음이라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내 식성에 유별난 점들을 이제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구하기 쉽고, 만들기 쉽고, 싸고, 입맛에 맞는 식사들의 종류를 확보하는 데 가장 재조정이 필요했다.

나는 남들이 궁금하다.

남들이 궁금하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남들은 일상 속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일로 화가 날 때 어떻게 다스리는지. ‘내가 더 좋은 사람 되면 되지’ 같은 최면이 먹히지 않을 때에 어떻게 생각을 낭떠러지 끝에서 돌려세우는지. 고민 덩어리가 부풀거나 썪지 않게 하려면 어디에 보관하는지. 해소법이 궁금하다.

원래 난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큰 관심이 없었다.

나는 부동산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어졌다.

용산에 6개월 살면서 부동산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단지가 ‘용산 미친 집값’ 뉴스에 나오더라. 박원순 시장이 싱가폴에서 용산을 이렇게, 여의도를 이렇게 말하니 빨간 선이 즉각 움직이더라. 왜 약국도 없는 단지에 공인중개사는 세 군데씩 있는지 이제 알겠다.

씨니컬한 관심만 생긴 것은 아니다. 월세를 내기 위해 월 단위로 돈을 관리하며 사는 데 워낙 익숙하다 보니 다른 형태의 주거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참 없었구나 싶었다.

생각을 멈추면 죽는 게임

생각하면 죽는 게임과 생각을 멈추면 죽는 게임 나는 게임을 미워할 시간도 없었다. 내가 아닌 사람을 위해서 멍하니 있는 시간을 미안해했다.

시간을 보내면 멎는 아픔과 시간을 멈춰야 멎는 아픔 요리를 할 때 시간이 가는지 멈추는지를 알기란 어려워 전자 레인지를 눈 감고 돌렸다.

밥이 됐으며 화분에 물 주다가 발에 맞는 물로 자주적인 귀찮음을 내치지 않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