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저렇게는 김괜저의 블로그이오니 잘 읽으세요.

생각을 멈추면 죽는 게임

생각하면 죽는 게임과
생각을 멈추면 죽는 게임
나는 게임을 미워할 시간도 없었다.
내가 아닌 사람을 위해서
멍하니 있는 시간을 미안해했다.

시간을 보내면 멎는 아픔과
시간을 멈춰야 멎는 아픔
요리를 할 때 시간이 가는지 멈추는지를
알기란 어려워 전자 레인지를
눈 감고 돌렸다.

밥이 됐으며
화분에 물 주다가 발에 맞는 물로
자주적인 귀찮음을 내치지 않았다는 것.

나는 순천만 전망대에서 누워 있었다.

여수에서 묵기는 했지만 순천만이 진정한 목적지였다. 여름이 분명히 갈 것 같은데 가지 않고 앉아서 끓고 있는 주말에 휴가 이틀을 붙였다. 사실 여행은 주말만 이용했지만 여행 뒤에도 쉴 날이 남아 있으니까 비로소 놀 힘이 났다. 최근에 피로가 누적되어 일터에서 작은 일에도 감정적으로 변하는 나를 보면서 쉬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다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제일 확실히 쉬는 방법이 가족과 쉬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요즘은 가족과 쉴 때 스트레스 레벨이 가장 낮다. 본가와 내 생활터를 분리하고 나니 본가에 돌아가면 사사로운 일들이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번 여행은 나는 용산에서, 엄마 아빠는 광명에서 출발해 기차 안에서 만나 찐계란 나눠 먹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순천만은 무진장 넓고, 곰보인 바닥 뻘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뻘건 게들이 기어나오는 것을 빽빽한 갈대가 머리칼처럼 덮어 숨기고 있다. 용산 전망대에서 만나기로 하고 앞장서 다리에 힘 주면서 올라갔더니 꼭대기에서 탈진해 대자로 누워서 해를 받았다. 늦게 올라온 엄마가 가져온 양산으로 얼굴을 가려 주었고 우리는 이프로 부족할 때를 마셨다.

나는 어차피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Eastern sky around sunset from my room

나와는 전혀 다른, 심지어 나로서는 어떤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려운 방식으로 현실을 감지하는 사람 덕분에 최근에 나의 세상-겪기가 무척 새로웠다.

지금까지 나를 드러내고 나의 기준을 신경쓰는 사람들로 내 주변을 채워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맞지 않는 사람들은 자동으로 걸러지는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 왔다는 것. 특히 소셜 미디어 등에서 이름이 나고 나의 생각과 코드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주변이 만들어지면서부터는 더욱 그랬다. 나에게 맞지 않는 자리를 피하는 것은 현명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러라고 서로 권한다.

그러나 서로 별다른 취향이나 시각을 공유하지 않는 채 마주치고 만나게 되는 그런 사람들과의 인연, 그 무작위성이 얼마나 건강한 것인지에 대해 요즘 많이 생각한다. ‘세상은 어디어디 밖에 있다’는 빈정거림에 수긍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신념이 사람을 ‘거르는’ 강령이 되고 그러한 필터를 오랫동안 붙들고 있으면 결과적으로 사람-면역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다양하고, 내가 용납할 수 없는 기준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내 이웃이다. 나는 이러한 진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 모든 차이가 사실은 농담이라고 생각해야만 편안해지는 관계. 썩 나쁘지 않다. 농담 속에 산다는 것이 말이다.

나는 보스토크 매거진 10호 《Urban Space: 도시건축탐험》에 글을 보탰다.

보스토크 10호 Urban Space

보스토크 매거진 10호 《Urban Space: 도시건축탐험》에 보탠 글의 제목은 〈내 도시 공부법〉이다. 이제 삼 년째 살면서 알아가고 있는 서울을 바탕으로, 한 도시를 공부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공부법 다섯 가지를 나열한 가벼운 에세이다. 다섯 가지 공부법은 다음과 같다:

  1. 높은 곳에 올라간다
  2. 지칠 때까지 걷는다
  3. 어머니의 기억과 견준다
  4. 데이팅 앱을 켠다
  5. 머리를 자른다

편집부에서 보내주신 따끈따끈한 10호를 감사히 받았는데, 지금까지 나온 보스토크 매거진 이슈들에 비해 더욱 두껍고 풍성하다. 도시를 경험하는 감각에 대한 에세이, 도시와 건축, 사진에 관한 비평, 그리고 열여섯 사진작가의 화보로 구성되어 있다. 사적이고 가벼운 내 글이 이 특별한 기획의 맥락 내에서 읽힐 수 있어서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어제 밤부터 선풍기 앞에서 황도를 까 먹으면서 읽어 나가고 있다.

나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끝나고 앓아누웠다.

우리는 M을 찾고 있었다. 두 번째 트럭 뒤에 있다고 해서 열심히 걸어 여섯 번째 트럭부터 따라잡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호리호리한 실루엣의 M이 세상에서 제일 튀는 까만 시스루 드레스를 입었다고 해서 바로 찾을 줄 알았건만. 우리는 어쨌든 노래와 구호에 맞춰 어깨를 씰룩이며 걸었다. 행진이 종로에서 안국 방향으로 방향을 틀 때쯤, 갑자기 머리가 띵해졌다. 「너 얼굴 안 좋다」 해리가 말했다. 「그럴 줄 았았어. 더위 먹은 것 같은데」 우리는 행진 옆구리로 빠져나왔다. 더워도 너무 덥기는 했다. 편의점에 들어갔다. 내 앞에는 구릿빛 상체에 멜빵만 걸친 남자가 물휴지를 사고 있었다. 나는 포카리 스웨트를 샀다. 밖은 너무 덥고 편의점 안은 너무 더웠다. 「아무래도 난 집에 가야겠어」

이틀 전에는 엄마가 카톡으로 주말 계획을 물었다. 「집에는 못 내려갈 것 같아. 나 홍콩 친구 있잖아, 걔가 오거든. 그리고 토요일엔… 토요일엔 시청 앞 광장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해. 거기 가려고」 엄마는 최근 사회복지에 관한 공부를 하더니 부쩍 ‘성소수자’나 ‘퀴어’ 같은 단어를 듣고 말하는 데 거리낌이 줄어든 것 같다. 아무래도 엄마가 예전까지는 교과서나 공영방송에서 잘 나오지 않는 단어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 같은 것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도 몇 년 전에는 「그런 주장을 너무 하면 곤란한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했지만 요즘에는 뉴스거리가 있으면 먼저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래서 작년에는 퀴어문화축제라는 것이 있어서 갔었다고 다녀온 다음에 밥상에서 슬쩍 얘기했었던 것을, 올해는 미리 말했다.

「엄마도 갈까?」

「오면 눈물나지」

엄마는 나와 해리보다 삼십 분이나 먼저 도착했다. 광장 잔디에 앉아서 댄스 공연을 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집회 때문에 못 갈 게 뻔한 버스를 타려고 허둥대다가 시간을 허비하고, 서울역부터 걷기 시작했다. 너무 더웠다. 엄마 정신없는 곳 잘 못 견디는데 더위 먹는 거 아닌가 싶었다. 남대문에서 시청 쪽으로 걷는데 드디어 사람들이 보였다.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무리였다. 서울에서도 봤고, 대구에서도 봤던 이들이지만 그 수가 지금까지 본 것 중 제일 많았다. 그들만으로도 충분히 어엿한 축제와 행진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가족들, 청년들이 줄지어 그런 팻말들을 들고 걷고 있었다. 엄마와 만나기로 한 8번 출구에 다다르자 나는 영 부글거리는 마음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너무 더워서 지하로 피신했다고 했다.

「엄마! 여기는 해리야. 내가 말한 홍콩 친구. 해리, 우리 엄마야」 나는 엄마가 해리를 만나는 자리를 여러 번 생각해 본 적 있다. 해리가 웃고 말하면 아주머니들이 다 넘어가는 걸 많이 봐 왔다. 엄마는 해리 팔을 꽉 잡더니 갖고 있던 손선풍기를 해리 얼굴에 갖다 댔다.

「너무 더워, 너무 더워. 앉아서 공연 보는데 너무 더워서 죽을 뻔했다. 그 네가 말한 성소수자 부모모임 거기서도 나와서 발표 하더라」

「응. 오는데 온통 저 반대 한다는 사람들밖에 안 보여. 심란하잖아」

「야, 신경 쓰지 마. 저 사람들 다 이게 이런 건가 보다 해서 나온 거잖아. 몰라서 그러는 거. 이게 다 바뀌려고 그러는 거야」

엄마를 지하철 태워 보내고 해리와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배가 고파져서, 김가네에서 콩국수와 스팸 김밥을 한 줄 먹었다. 너무 가까운 옆 테이블에서는 제법 퀴어해 보이는 청소년 셋이서 우리 콩국수를 부러워하며 콩국수의 고소함을 영어로 뭐라고 표현할까를 두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해리는 국물을 마시라고 나에게 사발을 건내주며 얘기했다. 「엄마 보고 울컥한 거지? 너 올해 힘들었잖아. 이제 다 지나간 거야. 이런 게 지나가고 나면 난 꼭 몸이 아프더라」

나는 친구들이 결혼했다.

캐롤과 잭슨이 대구에서 결혼을 했다. 지난 10년 동안 나와 행복한 추억들을 가장 많이 만든 친구 중 둘이 서로에게 시집 장가를 간 것이다. 작년 연말에 둘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개인적인 일로 풀 죽어 있던 나에게 결혼 소식으로 큰 기쁨을 안기고 갔다. 신도시에서 밤 늦게까지 춤추며 축하했다.

캐롤은 뉴욕에서 나고 자란 교포지만 한가닥하는 대구 가문 출신이라 대구 결혼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전통혼례로 향교에서 치뤄진 결혼식에서 나는 두루마기에 갓까지 쓰고 기럭아범(나무 기러기를 신랑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과 통역을 겸했다. 벌써 두 번째 전통혼례 사회자 경력이니 레쥬메에도 반영하도록 한다. 신부 쪽 친지들도 많이 오셨지만, 영미권 여기저기서 한걸음에 달려온 친구들만 스무 명이 넘었다. 작년 추석을 이용해 뉴욕에 갔을 때에도 캐롤 생일 파티로 다 모였던 그 멤버들이 한 비행기 타고 왔다. 모건과 제니, 샬롯 등은 나처럼 신랑 신부 양쪽과 오랜 우정을 쌓은 친구들이다. 나와 제니, 그리고 제이는 바쁜 신부를 대신해 자연스럽게 서울과 대구에서 현지 가이드 역할도 했다.

한여름 대구였지만 태풍 두 개 사이에 꼭 낀 덕분에 산뜻한 고기압에 서늘할 정도의 바람이 불고, 애프터파티가 열린 수성구 옥상에서는 대리석 무늬로 지는 석양이 무척 아름다웠다.

나는 이동 중에 먹는다.

탈것 안에서 먹을 것을 고르는 일을 신중하게 접근한다. 비행기에서는 보통 짭잘한 토마토 주스를 짭짤한 견과류(캐슈가 좋다)랑 같이 먹은 다음, 녹차를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비행 중에 커피나 알콜은 잘 마시지 않는다. 쿠알라 룸프르에 가는 에어아시아 항공편은 워낙 저가여서 물도 따로 구매해야 했다. 몇 링깃 이상을 사야지만 신용카드 결제가 되었기 때문에 물 하나, 코코넛 워터 하나, 캐슈 하나, 또띠야 칩 하나, 그리고 햄 치즈 크로아상 샌드위치를 하나 사고 말았다. 크로아상은 마카롱이 그렇듯 일정 품질 이하로는 아예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음식 중 하나다. 식빵이었으면 수긍하고 먹었을 정도의, 만들고 냉장고에서 잊혀진 타입의 샌드위치였는데 빵이 크로아상을 흉내내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슬펐다.

지금은 회사 워크샵을 갔다가 기차로 돌아오는 길이다. 아침을 안 먹은 보상, 그리고 너무 오랜만에 민박집에서 요 깔고 자느라 몸이 뻣뻣해진 데에 대한 보상 심리로 짜릿한 죄책감을 선사하는 트리오로 이동 식단을 구성했다. 바빈스키 콜드브루 라떼, 다스 밀크 초콜릿, 그리고 뒷자리 동료가 빵틀이 남긴 격자대로 잘라 준 도넛 반 조각. 바빈스키와 다스를 고급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각각 커피 음료와 밀크 초콜릿이다 라고 넉넉히 불러줄 수 있는 최소한을 한다. 일상 속에서 ‘그것’과 ‘그 비스무리한 것’을 분별할 필요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유독 어떤 기호들에 관해서는 미련을 놓을 수가 없다. 백종원의 방식과 정용진의 방식을 비교 연구해 열화 구현의 하한선 설정 감각이라는 비즈니스 역량에 대한 책이 나오면 열심히 읽어보고 싶다.

나는 쿠알라 룸푸르에 다녀왔다.

더위가 오기 전에 더위를 찾아서 더 더운 나라로 여행을 가는 것은 내 집안(1인 가구)의 오랜 풍습이다. 2016년에는 홍콩·대만, 2017년에는 상하이였다. 올해는 더 더운 곳을 찾은 끝에 쿠알라 룸푸르로 4박 5일 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이틀의 휴가만을 내고 연휴를 길게 쓰는 일정이었다. 말레이시아 물가 덕이기도 하고 운도 좋아서, 꽤 괜찮은 호텔에서 싼 값에 머무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내가 가 본 해외 여행 중 가장 다른 목적 없이 휴양에만 집중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나는 쉬러 가는 걸 참 못 하는 편이다. 새로운 도시에 가서 밤낮으로 돌아다닌다. 책방과 맛집을 찾아다니고, 도시의 일정 면적이 지도에서 눈에 익을 때까지 구석구석 밟고 온다. 게다가 평소에 해야지 말만 하고 못 하던 일들을 잔뜩 싸갖고 간다. (싸갖고 간다는 말이 이제는 어색하다. 어차피 인터넷만 연결하고 ‘프로젝트’ 폴더만 열면 된다.) 이건 혼자 여행할수록 심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극도로 여유가 부족했던 봄이 끝나니 휴양을 하고 싶어졌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하는 성격에 붙이는 이름이 뭔가 특별하고 예쁜 것이 아니라, 다름아닌 ‘불안’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쿠알라 룸푸르에서 꼭 가 봐야 할 어느 곳도 찾아보지 않았고, 사진기도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호텔 방에서 룸 서비스를 시켜 먹고, George Saunders의 소설을 읽고, 심지어 호텔 옥상에서 일광욕까지 했다. 내가 일광욕을 하다니! 남들 앞에서 벌거벗는 일과 뙤약볕 아래 아무런 생산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니!

나는 사이트를 복구했다.

지난 5일 가량 접속이 원활하지 않았다. 도메인 제공자를 바꾸는 과정에서 설정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데 시간이 걸렸다. 몇 년 전에 비해 방문자가 줄었기 때문에 다들 모르실 줄 알았는데 몇 분이 친절하게 알려 주셨다. 감사하다.

전보다 글 수가 줄었던 이유 중 하나는 회사 생활과 연애(얼마 전 끝난) 등이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함에 따라 내가 자유롭게 말하기 어려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올리기 곤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게 실제로 할 수 있는 말이 제한돼 있어서라기보다는 생활의 어디까지를 말하고 느낀 점을 얼마나 ‘삭혀서’ 체화할지 등에 대해 내 입장이 미묘하게 바뀌고 있는 기간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퍽 진지했던 지난 1~2년 가량의 시간을 졸업하고 다시 유머로 나를 대하는 시기가 오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큰 그림을 걸고 싶다.

폭이 1.5미터는 족히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찍은 사진들은 대부분 2:1 또는 1:1 비율이니까, 2:1인 것들 중에서 골라서 대형 인화를 맡길까 한다. 물론 요즘에 긴축이므로 월말은 되어 보아야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반딱이는 인화지에 유광으로 뽑고, 얇은 검정 액자를 맞추는 거다. 사방에 대지를 남길지 아니면 꽉 채워 뽑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사진을 아직 못 정했으니까. 탁 트이는 맛이 있는 풍경 사진 중에서 고르게 될 것 같다. 2:1은 원래 지평선을 위한 포맷이다.

새 집에 들어올 때부터 벽에 내 사진을 걸고 싶다는 생각이 자라기 시작했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 나는 사진 앞에서, 그리고 디자인 앞에서 작아진다. 내 사진이 뭐라고 걸기까지 할까요, 같은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매번 ‘저는 사진사는 아닙니다’ ‘저는 디자이너는 아닙니다’ 따위 말을 한다. 내가 사진사라서, 또는 디자이너라서 말을 걸었거나, 초청을 했거나, 심지어 고용을 한 사람들에게 저렇게 말하곤 했다. 한 마디로 말해 ‘임포스터 신드롬’ 이다. 하지만 이건 나 스스로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나에게 인정을 주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내가 가짜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데 가짜가 되어야 한다. 특히, 가짜에 가까운데 스스로 진짜라고 믿는 허풍선이들이 진짜의 자리들을 차지하도록 두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하여튼, 내 한계와 약점을 잘 안다고 해서 자신감을 잃으면 안 된다.

내게 주어진 일만 해도 나에게는 크다는 생각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더 큰 일을 주고,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연습을 행해야 한다. 큰 그림을 그리자. 큰 그림을 걸자. 임포스터 신드롬을 떨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