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물 생겼다.

을지로의 프래그 스튜디오가 김서울 작가와 협업해서 황동으로 향꽂이와 받침을 만든다고 해서 뭔가에 홀린 듯이 가서 후원했다. 좀 오래 갖고 있을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자주 생각하는 요즘이다. 막상 요즘엔 향을 잘 안 피우기는 한다. 집이 좁고 환기가 도 아니면 강풍 이어서 세련된 정도만 피우는 게 잘 안 된다. 그래도 불 안 붙인 향이라도 앞으로는 늘 하나씩 꽂아 놓게 될 것 같다. 재작년에 마련한, 마찬가지로 황동으로 된 서울메탈의 <뒤로>를 위한 촞대 옆자리에 두었다. 사실 지금까지는 촞대를 향꽂이로 썼는데 제대로 된 초도 한 묶음 사야겠다. 용산에 일 년 더 살기로 했다.

나는 상해에서 다섯 끼 먹었다.

우리 가족은 먹는 것이 여행에 얼마나 중요한지 옛날부터 잘 알았다. 식사 때를 놓쳐 허기가 지거나, 아침에 차가운 커피를 못 마시거나 (엄마의 경우), 저녁 식사에 맥주나 와인 한 잔을 못 곁들이거나 (아빠의 경우), 긴 비행 동안 견과류나 초콜릿이 없거나 (나의 경우), 새로운 나라의 신기한 달달짭짤 과자를 못 사 먹거나 (동생의 경우) 모두 여행 점수가 확 깎이는 사태를 만든다.

따라서 주말에 겨우 하루 휴가를 더한 사흘간의 여행이 될 계획이었음에도, 상해에 가면 즐거울 것임에 자신이 있었다. 재작년 상해에서 먹었던 것 중 맛이 없었던 것이 하나도 없었을 뿐 아니라, 근래에 우리 가족들이 중식에 푹 빠져서 거의 대부분의 외식 장소가 중식당이 된 지 오래였으니까. 그러나 지난 번 상해행은 에어비앤비만 내가 잡았지 사실상 동행한 해리(홍콩인 경력 25년)가 모든 면을 주도해 줬기 때문에, 중국어 하는 사람 없이 얼마나 즐길 수 있을 것인지 구체적인 예측은 어려웠다. 사흘간 먹은 다섯 끼니를 소개한다.


1. 佳家汤包(쟈쟈탕바오)의 게살 노른자 샤오롱바오

다행히 떠나기 전날 만난 S가 인민광장 근처 샤오롱바오 맛집 하나를 인생 5대 식당이라며 추천했다. 우리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점심 때에 맞춰 거기로 향했다. 동네 분식집 수준으로 좁은 곳이었고 이미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배고픈 상태로 오래 기다리면 화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대기 시간 동안 길거리 부추전 같은 것들을 사서 나눠 먹었다. 그 날 준비된 재료가 떨어지면 벽에 붙은 빨간 샤오롱바오 이름들도 하나둘 거둬진다. 이미 몇 가지는 없는 상태여서 가장 기본인 돼지고기 샤오롱바오와 배로 비싼 게살 노른자 샤오롱바오를 두 판씩 시켰다. 입술을 본드처럼 짭짭 붙여버리는 게살 노른자 샤오롱바오는 기다려 먹어볼 만한 맛이다.


2. 新花城鲍鱼海鲜火锅의 훠궈

생각보다 추운 날씨와 미세먼지로 인한 첫날 피로를 씻으러 동네 훠궈집에. 다섯 끼니 중 가장 비싼 메뉴다. 소고기, 완자 등 있는 대로 다 넣고 데쳐서 푸짐하게 먹었다. 곁들이로 오징어 튀김을 시켜봤는데 반건조한 듯 꼬들꼬들하게 만든 것이 특이하고 맛났다.


3. The Dining Room의 캐주얼한 상해식

둘째날 가서 행복·마법·사랑의 시간 보내고 온 디즈니랜드에서 간단히 식사했는데 이미 검증된 흔한 점심 메뉴들 위주로 시켰더니 실망하지 않았다. 상해식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가장 익숙한 중식 메뉴들 위주로 파는 곳.


4. 望湘园의 후난식 매운 돼지갈비 구이와 생선머리 찜

여기는 유일하게 2년 전 갔다가 다시 방문한 곳이다. 난징루 몰 내에 있어 가족들이 많이 방문하는 인기 식당인데 후난성 매운맛이 그리워 다시 찾았다. 마라 없이 고추와 후추만으로 뜨거운 맛을 배인 자극적인 돼지갈비가 특히 맛있다.


5. 딘타이펑 신티엔디점의 송로버섯 샤오롱바오와 게내장 소스를 끼얹은 새우

마지막 날이 월요일인데 신티엔디에서 아점을 먹으려 하니 웬만한 곳들은 아직 개장 전이어서 동양 어디서도 만족을 보장하는 딘타이펑으로 갔다. 특히 평이 좋은 곳인데 송로버섯을 넣은 샤오롱바오가 향긋하니 좋았다.

2018 인생 자평

작년에 이어 같은 방법으로 한 해에 대한 평을 쓴다. 나 스스로를 위한 가감없는 〈2018 인생 자평〉을 먼저 길게 쓰고 나서, 검열과 가공을 거쳤다.

0. 총평

2018년은 내가 지난 10여 년 간 「어쩌면 나와는 관련없는 일일지 모른다」고 생각해 왔던 일반적인 인생의 측면들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나의 상을 발견하고 자세를 고쳐 나갔던 한 해였다. 나는 지금 내 생애를 살고 있는 나이지, 내가 주워들은 것들의 총합이 될 수 없고 내가 좋은 인상을 남겼던 사람들 기억 속의 나와도 무관하며 끝내 뇌내 서사 속의 나라는 주인공도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을 호들갑 떨며 깨닫게 된 해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2018년의 결과로 나는 조금 더 평범해졌고 더 이상 「내가 되어내야만 하는 내 이상 속의 나」를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1. 건강

드디어 운동하는 습관을 조금씩 들여가고 있다. 집 한쪽에 체육관용 매트를 깔고 최소한의 기구를 들여 주 2~3회 아침에 가볍게 운동한다. 남들 앞에서 못하는 운동 하기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내린 홈짐이란 처방은 얼추 들어맞고 있는 것 같다. 운동량이 많지 않지만 워낙 안 하던 과거의 나와 대비하면 조금씩 몸이 나아지고 있는 것을 체감한다. 또, 어깨와 목이 작년보다 펴진 것 같다.

신진대사량이 낮은 점을 운동으로 극복하지 않고 음식을 줄이던 습관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니 식사량도 늘었다. 먹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다. 몸무게는 작년에 비해 4kg 정도 더 늘었지만 만족한다. 전신 거울로 체형을 매일 보는 것이 몸을 긍정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내 몸의 장점과 단점을 알게 되고, 단점도 잘 알지만 장점을 이유로 내 몸을 좋아하게 됐다.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생각보다 큰 심리적 장벽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사랑니 1개를 뺐고, 어금니 충치 하나를 발견해 치료했다. 전반적으로 건강하다.


2. 살림

2년만에, 그리고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자취를 재개했다. 좁은 원룸 오피스텔이지만 기차역을 직각으로 굽어보는 탁 트인 시야가 대만족인 곳이다. 서울, 그것도 나의 활동 범위 중심인 용산에 일 년 가량 살다 보니 이 도시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고 있는 실감이 난다. 신용산역, 동부이촌동, 녹사평과 해방촌, 후암동 등 인접한 동네들에 정이 많이 들었다. 쉴 틈 있으면 무조건 나가 돌아다닐 수 있는 위치에 살고 있어 좋다.

물론 빌트인이어서 양껏 세간을 만들며 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앞서 썼듯 창문 쪽을 홈짐 겸 다용도-구석으로 꾸미고, 화분 일곱 개를 들여 식물원처럼 해 놓고 사는 데 퍽 만족한다. 부엌도 손바닥만하지만 전자레인지 겸 오븐을 두어서 원하는 요리는 대부분 할 수 있다. 하루 두 끼를 요리해 먹는 건 유학 시절에도 좀처럼 없던 일인데 요즘엔 흔하다.


3. 인연

2018년 상반기는 내가 감히 「본격적인 연애」라고 할 만한 연애를 하며 보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반 년 동안, 서로 너무 다르지만 가끔은 반대이다 못해 비슷한 그런 동년배 남자 둘이 사랑과 상처를 주고 또 받으며 참 기억에 오래 남을 연애를 한 것 같다. 매일 만나거나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데도 만나는 동안 생활의 큰 부분을 연애가 차지했던 까닭에 상반기에는 거의 연애하거나 일한 기억밖에 없다. 끝나고 난 뒤에 약간의 휴유증이 있었지만 이 일을 통해 나는 내가 얼마나 사사로운 감정과 자존심 그리고 호르몬 앞에 무력한 한낱 인간, 애정을 필요로 하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결과 이제 좀 인간처럼 울고 웃는 것 같다는 주변인들의 칭찬도 듣고 산다.

새로운 친구가 생기거나 있던 친구가 없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름에 한국까지 와서 결혼한 캐롤과 잭슨, 그리고 이들이 데려온 하객 무리들과 보낸 시간을 올해의 하이라이트 1번으로, 그리고 오랜만에 서울에 놀러온 해리와 함께 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엄마까지 만났던 시간을 2번으로 꼽고 싶다.

가족들과는 여전히 좋다. 거의 매 주말마다 하룻밤은 본가에 가서 자고, 일어나 아침 먹고 나서 보드게임 한 판 하고 올라오는 정겨운 레파토리가 있다. 친척들까지 확장하면 이런 저런 변화가 많았던 해였다. 내가 합창단 공연을 보는 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4. 생산

직장인 텀블벅에서는 만 3년째 근속 중이다. 조직에 필요했던 경력자들이 합류하면서 하는 일에 조금 더 확신이 생겼다. 물론 모든 좋은 성장이 그러하듯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나, 불편하지만 필요한 결정들을 함께 내리고 따르는 데 필요한 자세가 조금 더 좋아졌다. 가장 최근에 맡아 하고 있는 일은 비영리·소셜 섹터 크라우드펀딩을 활성화하는 것인데 새로 배우는 점이 많다.

글 쓰고 말하는 나로서는 큰 보람과 약간의 아쉬움이 함께한 해였다. 6월에는 ⟪글짜씨 17: 젠더와 타이포그래피⟫에 ⟨젠더, 창작, 그리고 돈: 페미니스트와 퀴어의 텀블벅 프로젝트⟩를 썼고, 7월에는 보스토크 매거진 10호 ⟪Urban Space: 도시건축탐험⟫에 ⟨내 도시 공부법⟩이라는 에세이를 썼다. 작년에 이어 11월에 ⟪리워크 컨퍼런스⟫에 참여했고, 월간 ⟪현대문학⟫ 11호에는 ⟨알아서 나온 책들⟩이라는 제목으로 확장하는 독립 출판의 세계에 관한 글도 썼다. 재미있는 글을 쓸 기회가 점점 늘어 행복한 고통 속에 보냈던 것과 동시에, 서울의 젊은 독립 창작자들을 인터뷰해 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연재하기 위해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절반 가량만 끝낸 채 중도 포기해야 했던 것은 송구스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2017년 말에 3인의 동료들과 함께 시작한 비영리 단체 ⟪프리랜서 네트워크⟫는 약 6개월 동안의 1기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매달 다양한 직종과 경력의 프리랜서들을 모아 ⟨프리랜서도 프리랜서가 궁금하다⟩라는 제목의 모임을 열고, 서울시와 함께 프리랜서 현황 파악 및 조례 신설을 위한 밑작업을 미미하게나마 시작했다. 프리랜서들에 관한 관심의 방향과 정도가 각기 다른 주체들이 모여 사안을 알아가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본 것에 대해 반의 반의 성공 정도로 자평하고 있다. 1기 마무리 후 나는 실무에서 물러났다.


5. 여행·문화

자취와 함께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한 욕구가 해소되다 보니, 2017년에 비해 여행은 줄였다. 해외에는 한 번 나갔는데, 연애 직후 심심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간 쿠알라 룸푸르는 여행지에서도 일 생각하는 나쁜 버릇을 없애기 위한 시도가 제법 성공적이었던 곳이었다. 직장 역사상 처음이었던 춘천으로의 1박 2일 워크샵도 재미있었다. 8월에는 부모님과 함께 여수와 순천만에서 행복하게 종일 걷다 왔고, 11월에는 네 번째 부산 여행을 완수했다.

겨우 20편의 영화를 그것도 막판에 스퍼트까지 동원해 극장에서 본 한 해였다. 지인들의 음악회나 발표회에 간 일은 꽤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공연이나 콘서트를 가서 본 적은 별로 없었다. 뉴욕에 살 때와 가장 다른 점이기도 하다. 어떤 공연을 가도, 심지어 라이브 재즈가 있는 어떤 바에만 가도 만족했던 그런 도시가 아니라고 해서 불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세지 않았지만 문학과의 냉전 상태였던 2017년에 비해서는 그래도 소설과 시를 읽었다고 할 수 있는 정도다. 물론 이 중 많은 작품들은 문예지에 글을 써야 하는 난감함 속에서 냉전 해소를 위해 서점에서 단편집과 문예지를 쓸어담아 닥치는 대로 읽었던 가을 동안 소화한 것들이었다. 그래도 최근 주목받는 한국어 작가들의 작품들을 더 많이 접한 것이 기쁘다.


6. 배움

일단 운전면허를 필기까지만 따 놨다. 결국 실기는 2019의 몫으로.

사실 2018년의 가장 큰 배움 키워드는 돈이다. 얼마 전에도 썼지만 경제관념이란 워낙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혼자만의 의지로 개량할 기회가 많지 않다. 올해 몇 가지 계기가 되는 일들이 있었기에 개인 재무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사 읽고, 영상도 보고, 돈에 밝은 지인들을 괴롭혔다. 특히 도심 자취를 하다 보니 부동산에 대한 관심에 확 불이 붙어서 휴일에 카페가 아니라 시세를 보러 안 가본 동네들을 돌아다니는 짓을 반복하기도 했다. 현대인의 현실에 워낙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이라는 주제를 갖고 도시를 다시 보니 마치 매직아이에 성공한 것 같은 묘한 통찰을 느끼게 된다.


내가 태어난 지 30년이 되는 해를 보내며,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제 더 이상 머리속에 앉아서 자신-공부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이용해서 여기 저기 가 보지 않은 곳들을 여행하고 갈 데까지 나아가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새해를 연다. 이 블로그를 위한 아이디어도 예전과 다른 것들로 준비되어 있다. 2019년은 가만히 두어도 예전과 다르겠지만, 얼마나 충격적으로 유익하게 다를 것인지는 나의 결정과 실행에 따를 것이라고 한다.

나는 유튜버 얘기만 했다.

월간 《현대문학》에 또 한 번 글을 쓸 수 있는 운 좋은 기회가 생겼는데 주제가 ‘세상에 없는 책’이었다. 평소에 책은 안 읽고 유튜브만 보고 있었던 터라 딴에는 솔직하겠다고 유튜버들이 나오는 소설집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써냈다. 〈구독한 사랑〉이라는 제목을 붙인 그 글이 실린 1월호를 읽는 중이다.

「(…) 나는 일단 최근 읽었던 책들을 생각해보는 데서 출발했다. 떠오르는 책들이 변변하지가 않았다. 사실 책다운 책을 별로 못 읽고 있어서인 것 같다. 요즘 내 여가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 건…… 유튜브가 틀림없다.」

나는 양배추 좀 구워 봤다.

화요일에 휴일 하루가 더 있으니 주말이 매우 여유로워서 이틀 내내 머리를 식히며 집안일만 했다. 특히 부엌을 유례없이 깨끗하게 딥청소(‘대청소’로는 전달이 안 됨)했더니 금방 그 부엌을 쓰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마트에 갔는데 아뿔사, 마트 쉬는 일요일이다. 원래는 고기와 야채를 사서 잔뜩 구워 먹으려고 했었는데. 집에 먹을 게 마땅히 없긴 해서 마트 옆 유기농 슈퍼마켓에라도 갔다. 그나마 유기농으로 종종 사 먹는 식재료는 채소다. 납작하게 잘 생긴 양배추 한 통을 보니까 저걸 구워서 집에 남아 있는 캔토마토 반 병과 같이 요리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인 가구가 양배추를 사면 그 주에는 무척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한다. 하루에 한 번씩 부지런히 요리하지 않는 한 어마어마한 양의 양배추를 제 때 다 먹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양배추를 삼등분해 한 덩이는 맨돌린에 채 썰어 놓고 (보통 구운 갈매기살, 아보카도와 함께 타코를 만들어 먹는다), 두 번째 덩이는 밥반찬으로 먹게 간단히 전자레인지 찜기로 쪄 놓고, 세 번째 덩이는 더 얇게 잘라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 간을 쳐서 오븐에 구웠다.

당근, 양파를 미세하게 썰어 많은 양의 버터(크림이 없었으므로), 마늘 약간과 함께 약불에서 오래 볶다가 지난 번 뭘 해 먹었는지도 기억이 남지 않지만 반 병 남아 있던 토마토를 넣고 끓이다가 우유 넣고 졸여서 구워 놓은 양배추, 간 치즈, 잣, 올리브유를 곁들여 빵 한 조각과 함께 먹는다. 천 원어치 양배추로 포근하게 저녁 해결.

나는 꿈에서 또 남을 실망시켰다.

또 말도 안 되는 꿈을 꾸었다. 지난 한 주 동안 세 번 이상 생생한, 실제 아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서울인 것 같은 곳을 배경으로 한, 내가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크게 실망시키고 마는 꿈을.

오늘 새벽녁에 깨어 머리맡의 가습기 (가벼운 코감기가 있어 최대치로 해 놓고 잤다) 때문에 축축해진 배게를 옆의 것으로 바꾸게 한 꿈은 어떤 지하 상가같은 곳에서 펼쳐졌다. 잡다한 공산품을 다 파는 메가 몰 같은 곳, 그렇다고 ‘삐에로 쇼핑’ 처럼 정신없는 곳은 아니고, 홈 디포치고 천정이 낮아 불안감을 주는 53번가 홈 디포 지하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얼마 전 홈 디포 주식을 샀는데 한없이 내려가고 있다.)

맥락 없는 부탁도 아니었다. 내가 분명히 그 넓은 상가 어딘가에서 신박한 물건을 발견했다고 먼저 말했었다. 아이폰 스크린에 부착하면 어떠한 스크래치도 나지 않고 지문도 절대 안 묻는 궁극의 보호 스크린이었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참으로 대단하지만 하찮은 품목이었다. 그런데 내가 안면이 있는 어떤 디자이너가 그것을 꼭 갖고 싶다고, 나더러 같이 거기 가서 찾아줄 수 있냐고 부탁했던 것이다.

부탁에 응하는 것이야 별 일이 아니지만, 왜 나는 굳이 그와 만나기로 한 것보다 삼십 분이나 먼저 거기에 가서 미리 그걸 찾아두려고 애를 썼을까. 너무 넓어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도착하고 난 후에도 같이 다 뒤졌지만 없었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의 어떤 다른 물건들이 세로로 일렬 진열돼 있는 칸이었던 것 같다’는 기억에 의존해 계속 찾고 또 찾았으나 실패였다. 그는 실망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지하상가인데!) 떠났다.

요즘 이런 미련한 꿈을 계속 꾸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수많은 동료 모범생들과 준법시민들, ‘모델 마이너리티’들, ‘리버럴 엘리트들’(우웩)이 그렇겠지만 내가 좋아하거나 신뢰하는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일을 평생 두려워하며 살아왔는데, 최근 들어 그렇게 살아서는 평생 지하상가에만 있어야 할 것임을 깨닫고 탈피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주에도 연말이 되어 올해 초에 시작했던 여러 일들 중에 끝내 이룰 수 없었던 일들 몇 개의 전원을 끄는 작업을 했다. 그 일이 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몇 명을 실망시켜야 하는 일이여서 사실은 몇 주 전쯤에 했었어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긴 했지만, 침 꿀꺽 삼키고 실망시켰다.

The Nightmare — Henry Fuseli (1781)

나는 고양이들이 어렵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계신 묘지에는 관리인을 늘 쫓아다니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흑묘 백묘 하나씩 관리인의 다리 사이를 8자로 감아 엥기며 오는 모습을 보면 일종의 위성 같기도 하다. 관리인은 그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남자이지만 묘지 관리인이라는 역할에 고양이 두 마리를 늘 데리고 다니는 점 때문에 두 번밖에 본 적 없는데도 마치 만화 캐릭터처럼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알고 지냈던 고양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일단은 뉴욕에서 나와 두 번이나 룸메이트를 했던 엔젤라의 반려묘 Ziggy가 있다. 하얗고 통통한 Ziggy는 적당히 고고하고 적당히 게으른 전형적인 집고양이였다. 앤젤라가 워낙 잘 챙겨서 내가 도울 일은 거의 없었지만 간혹 밥을 주곤 해서인지 한 달에 한 번 정도 빼꼼 열린 방문을 비집고 들어와 내 침대맡에 앉아 작업하는 나를 뚫어지게 보곤 했다. 우리는 Ziggy를 집 밖으로 내보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어느 날 벼룩이 붙어 와 전원 패닉하게 만든 적도 있다. 알고 보니 아파트 기반에 난 틈새로 들락날락하는 깡마르고 새카만 고양이와 친해져 옮은 것이었다. 그 둘의 결말이 어땠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그 집은 고양이도 사람도 살기에는 좀 부실한 데가 많은 집이어서 매일매일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 투성이었다.

이와 반대로 아이 두셋을 키워도 벌써 완벽히 해낼 것 같은 제시카와 카일은 우리로부터 5분 거리에 있는 레일로드식 아파트에서 Lox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웠다. 사교적인 이들 내외를 닮아, 땡스기빙 팟럭 같은 것을 하면 소파에 앉은 손님들 목 뒤로, 무릎 사이로 헤집고 다니며 애정을 수집해 가곤 했다. 늘 장난기 많은 표정을 하고 있어서 나도 고양이와 산다면 이런 고양이와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요즘 회사 동료 중 두 명이나 아기 길고양이들을 입양해 가끔 사무실에도 데리고 오고 하다 보니 고양이와 함께 사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좀 더 자주 들기는 했다. 하지만 셋 셀 시간 정도만 생각하면 금방 사그라든다. 난 고양이들을 연예인 비슷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정도 거리에서 나와는 다른 그들의 모습과 능력을 관찰하고 가끔 그들에 관한 가십을 소비하는 정도로 지금처럼 잘 지내고 싶다. 직접 만나진 않고 인스타 좋아요만 누르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 고만고만한 요즘 인간관계와도 다를 게 별로 없긴 하다. 연애를 안(못) 하고 고양이를 떼로 키우는 것이 클리셰라고는 하지만 난 똑같은 문턱 때문에 둘 다 어렵다.

나는 돈 돈 한다.

어쩐지 주변에 돈 얘기 잘 안 하는 사람으로 인식돼 왔던 것 같다. 공부도 돈 버는 일과는 별 상관 없는 과목들로만 하기도 했고, 딱히 어떤 길로 가야 돈을 더 버는지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온 느낌이다. 실제 내 마음 속에도 돈이 차지하는 지분이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마주친 동창이 만나자마자 재테크 얘기를 하는 걸 보고 왜 저러나 싶어하기도 했고, 누군가 자기는 빨리 불로소득으로만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 걸 두고 두고 속으로 쯧쯧거리기도 했다. 당연히 자라온 환경과 집안 분위기 탓인데 친할아버지로부터 직계로 전해 오는 ‘돈보다 지식과 관직’이라는 인식이 큰 데다 친가건 외가건 사업가나 장사꾼 기질이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유복하다고까지 하기는 어려워도 평탄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적어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내 삶이 돈이란 것의 지배를 받고 있구나 하는 깊은 각인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 여기에 더해 학창 시절 자본주의 하에 노동을 수단화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들다 보니 노동의 결실이 아닌 소득이나 부에 대한 선입견이 컸다.

돈은 참 개인적인 문제다. 돈과 몸. 이 두 가지가 나의 ‘가장 개인적인 영역’의 핵심 주제어다.

그런 내가 요즘 들어 부쩍 친한 친구만 만나면 스스럼없이 돈 얘기를 한다. 작년 말쯤부터 내 개인 재무에 대한 통제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 단순히 내 생활비 계좌 잔고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어떻게 모으고 불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계획을 갖고 생활하게 된 것은 이 때부터다. 이런 습관의 형성 시기가 나보다 훨씬 빠른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은 보통 그런 습관이 조기에 필요해진 이유가 있더라. 나는 약간 늦었다는 생각으로 의식적으로 그런 습관을 만들려 노력했다. 그리고 올해 중반부터는 부동산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식 부동산 투자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상황은 아니지만 서울살이를 시작한 이후 주거와 결부지어 관심이 안 생길 수 없는 영역이었다. 부동산 책 대여섯 권을 읽고, 부동산 주제들에 관련해 시각이 완전히 다른 유튜브 채널들을 비교해 본다. 증권사에 일하는 친구가 나와 한두 달에 한번씩 만나 저녁을 먹을 때마다 너 진짜 돈에 관심이 있긴 있구나? 하고 놀라곤 했다. 하긴 예전에는 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내게 밥을 사 주면서 넌 돈보다는 재밌는 일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며 신기해한 적도 있었지.

사실 여전히 돈을 ‘악착같이’ 모으고 ‘깨알같이’ 불려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노동과 소득을 분리해야겠다는 마음은 생긴 상태다. 작은 자본도 자본이고 큰 급여도 결국 급여인데, 사실 자유로운 삶—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고 싶은 곳에 사는—을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작업이 이러한 전환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한 번도 소비적인 적이 없었고 모두 생산활동이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만이 나는 재미있었으므로) 생산이라면 반드시 급여를 받는 노동일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급여라는 방식이 아닌 생산에 더 관심이 가는 것 같다. 물론 이런 변화는 현실적으로 하루아침에 이루는 것이 아니라 몇 년, 몇십 년에 걸쳐 일어날 지도 모른다. 여하튼, 요즘은 그런 쪽으로 돈이라는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네 번째 부산 여행을 했다.

부산 참 여러 번 왔다. 올 초에 출장도 왔었고 그 밖에 잠깐씩 들른 적도 있었지만 이틀 이상 여행한 것만 해도 이번이 네 번째인 것 같다. 여행은 가고는 싶고 국내에는 머물고 싶고 도시에도 있고 싶고 하는 어정쩡한 마음일 때 가는 곳이다 보니 복잡한 마음을 질질 끌고 갔던 기억이 유독 많은 곳이다.

가장 처음에 갔던 게 8년 전. 절친 무가식과 왔었다. 군대 휴가였는지 몸은 마르고 머리가 빡빡이였다. 적잖이 허접한, 해운대 외국인 관광객들이 들락날락하는 바에서 칵테일 마시며 나름 야한 얘기로 노가리 까던 기억, 컨테이너 대충 쌓아올려 만든 부경대 부근의 편집숍에서 〈인벤토리〉를 보고 반가워했던 기억이 난다. 이게 8년 전 벚꽃 피는 계절에 찍었던 사진이다.

두 번째가 6년 전. 혼자 와서 당시 새로 생긴 부산역 토요코인에서 잤다. 부산항이 살짝 보였다. 양껏 돌아다녔다. 책방 골목 같은 곳들… 이 때 나 혼자 가만히 낯선 곳에서 밤을 보낸다는 느낌이 참 좋아서 비싼 빵과 치즈, 햄, 와인을 사서 방에서 영화를 보며 먹었다. 그러면서도 참 내가 웃기다고 생각했다. 만날 사람도 없었고, 별 볼 일 없는 짓들로 하루를 채우는 것이 즐거웠다. 그 때 밤에 광안리에서 찍었던 사진은 이거다.

세 번째는 해리랑 왔다. 그게 벌써 4년 전이구나. 처음 서로를 알게 돼 어쩔 수 없이 좋았던 그 때. 난 그에게 맛있는 걸 먹이려고 저번처럼 부산에서 가장 맛있는 빵집에서 바게트를 사서 비싼 치즈에 서양배와 프로슈토를 얹어서 먹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해리는 그런 걸 안 좋아하지. 지금 다시 같이 간다면 밀면이랑 커리 우동 같은 것들을 먹일 것 같다. 지금 너무 친한 친구가 된 해리지만 그 당시 사진을 보면 연애하던 때의 걷잡을 수 없는 벅찬 감정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해가 질 때까지 하염없이 둘이 걷다가 찍은 사진 하나 골랐다. 이 때도 꽃 피는 계절이었다.

이번에는 다시 혼자고, 겨울이다. 앱을 계속 켜 놓고 이 사람 저 사람과 실실거렸지만 아무도 만나지는 않았다. 쉴 작정이었기에 비교적 조용하다는 송정 바다가 그대로 들어오는 숙소를 잘 잡았다. 아침에 일어날 때 파도가 치고 있는 기분. 생각해 보니 그런 기분을 처음 느꼈던 것은 열 살 때 YMCA에서 국제 교류 캠핑 같은 프로그램 일환으로 일본으로 캠핑을 갔었을 때였다. 분명히 텅 빈 공터같은 곳에서 밤에 캠프파이어를 하고 처음 보는 일본 아이들과 뒤섞여 놀았는데, 아침이 되어 눈을 떠 보니 그게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였다는 것을 깨닫고 마치 절벽에서 눈 가리고 춤을 췄던 것처럼 서늘한 안도감을 느꼈었던 기억이다.

아무래도 이제는 허송세월을 하더라도 머리가 텅 빈 채 걸어다니는 것보다는 몸과 마음을 제대로 쉴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 물론 성격상 그러진 못했지만. 하루에 적어도 삼십 분 정도는 호텔 탁자에 가만히 앉아서 정신을 가만히 돌봤던 것 같다. 그 삼십 분을 내려고 두 시간짜리 케이티엑스를 타고 내려오고 한 시간 더 들어가야 하는 송정 같은 곳에 묵는다. 서울로 올라갈 때엔 KTX 사고로 기차 안에서 다섯 시간을 보냈다는 것도 적어 둔다. 이번에 찍은 바다 사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