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써 편안하다.

모든 종류의 편안함은 인위적이다. 특정 정보를 (또는 특정 정보만 빼고) 차단하였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고, 특정 조치들을 미리 취해놓았기 때문에 몸이 편안하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기본적으로 불편하다. 현실은 불확실하고 불공정하며 그렇다는 사실을 많이 안다고 편안해지지 않는다. 내가 보는 세계가 복잡하다는 것을 미처 다 모를 때의 편안함과 그것을 더 알아갈 때마다 조금씩 공들여 조성한 양식으로서의 편안함은 급식을 먹고 얻는 배부름과 사냥하고 채집한 거리를 직접 피운 불에 익혀 먹고 얻는 배부름만큼 다르다.

뉴욕에는 나와 비슷한 관점과 생계-세팅을 공유하고 그런 토대 위에서 건배를 하고 춤을 추고 거리를 헤멜 친구들이 있었기에 무언의 협악에 따라 우리끼리 말초적이고 안전하고 익숙한 경험들을 배치해 편안함을 만들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그런 친구들이 적고, 흩어져 있고, 피로한고로 비슷한 처방을 할 수는 없었다. 대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그 역할을 한다. 오븐에 야채를 구워 먹는다. 에어컨을 켰다 껐다 한다. 보드게임을 한다. 친척들을 걱정한다. 사람 수를 한정하고 공간을 한정하고 할 수 있는 거리들을 한정해 얻는 가장 본능적인 편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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