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저렇게는 김괜저의 블로그이오니 잘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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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이유로 마음이 그랬다.

엄청 오래된 글입니다. 역사적 기록으로 다뤄주세요.

프랑스어 수업(2시~3시 15분)과 문예창작(4시 55분~6시 10분) 사이에 틀림없이 출출하므로 대개 약간의 뭘 먹는데, 오늘은 창작의 열정이 쉬이 식을 줄 몰라 안 먹었다. 결과는 6시 10분쯤 이미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진 허기. 이것을 무엇으로 채울까 잠깐 머리를 굴려서, 올 학기 들어 시도때도 없이 갔던 Maoz (채식주의 전문 falafel 샌드위치/샐러드 가게) 또는 한 번도 안 가 본 근처의 한국 분식점 <와> 이렇게 둘 중 한 곳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둘 다 대등한 정도로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갈등의 순간에서 내가 으레 택하는 방식인 <일단 걷다가 끌리는 대로 하기>를 수행했다.
아주 가까운 위치인 두 상점을 동시에 향해 걸으며 생각하기에, 둘 중 먼저 마주치게 될 <와>에 다다르면, 뭔가 내게 영향을 끼칠 만한 요소가 불현듯 나타나 내 발길을 돌리던지 두던지 할 것이 분명했다. 걷는 오 분 정도동안 내가 둘 중 어느 곳에 들어가게 될까보다도 더 궁금했던 것은 과연 어떤 이유로 내가 둘 중 한 곳으로 들어가게 될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머리속에 많은 생각이 돌아다녔다. <와> 앞에서 비둘기가 날아와 발걸음이 엉킬 수도 있고, <와>의 식탁들에 햇볓이 너무 쨍쨍해서 안 갈 수도 있었다. 또는 그곳에서 15m 정도 떨어진 Maoz가 돌연 가혹하게 멀어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고 아니면 <와>에 마침 들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싶지 않아 다음을 기약하자 할 수도 있었다. 이유가 타당하건 병신같건 그 논리력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었고 나를 설득하는 것은 작건 크건간에 얼마나 정확한 시각에 긍정·부정적인 이유가 떠올라 들어갈까 말까 정하는 내 찰나의 결단력을 돌려놓거나 쐐기를 박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세 블럭 앞으로 <와>가 다가왔을 때 그래서 나는 그 창 앞을 지날 때 옆을 볼까 위를 볼까 아래를 볼까 하는 것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 역시 어떻게 결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창 안을 보았다. 그리고 0.1초 정도 후 ‘들어갈까 말까’에 대한 결정이 작동했는데, 내 시각기관으로 입력된 정보가 아주 새로운 강력함으로 들어가지 말 것을 명령 내렸다. 그것은 창 안으로 죽 앉아 있는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었다. 한국 소년들이었고 나와 잘 모르는 학생들이긴 한데 그 중 두 명은 작년의 남량특집 신입생 환영회 때 불그죽죽한 얼굴로 ‘다신 보고 싶지 않으니 오늘 친하게 지냅시다’ 정도의 안면을 튼 이들이라서 그들 다섯 명 옆에서 혼자 의식하며 순두부를 먹고 있고 싶지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놀란 이유는 「옆 자리에 신경 쓰이는 사람들이 앉을까 봐」라는 이 찰나의 이유가 찰나의 변덕스런 이유치곤 너무 진짜였기 때문이다. 너무 사회적이었고 너무 마음에서 우러나왔고 변덕이라기에 너무 번복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 나는 이런 이유로 falafel 샌드위치에 브로컬리를 올리는 동안 계속 마음이 울퉁불퉁했다.
  1. Jean.

    MINI MINI 잘지내고 있어? 제법 날씨가 써늘해지고 있어 맨하탄은 어때,

  2. 김괜저

    여기도 그렇다 : )
    편지를 받았어요. 고마워서 기절할 뻔 했어ㅜㅜ

  3. 김돌돌

    내가 먹은 falafel은 어째 chick pea에 대한 나의 모든 사랑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것들 뿐이었을까… 역시 세계의 수도 falafel의 고장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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