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저렇게는 김괜저의 블로그이오니 잘 읽으세요.

나는 사이트를 복구했다.

지난 5일 가량 접속이 원활하지 않았다. 도메인 제공자를 바꾸는 과정에서 설정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데 시간이 걸렸다. 몇 년 전에 비해 방문자가 줄었기 때문에 다들 모르실 줄 알았는데 몇 분이 친절하게 알려 주셨다. 감사하다.

전보다 글 수가 줄었던 이유 중 하나는 회사 생활과 연애(얼마 전 끝난) 등이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함에 따라 내가 자유롭게 말하기 어려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올리기 곤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게 실제로 할 수 있는 말이 제한돼 있어서라기보다는 생활의 어디까지를 말하고 느낀 점을 얼마나 ‘삭혀서’ 체화할지 등에 대해 내 입장이 미묘하게 바뀌고 있는 기간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퍽 진지했던 지난 1~2년 가량의 시간을 졸업하고 다시 유머로 나를 대하는 시기가 오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큰 그림을 걸고 싶다.

폭이 1.5미터는 족히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찍은 사진들은 대부분 2:1 또는 1:1 비율이니까, 2:1인 것들 중에서 골라서 대형 인화를 맡길까 한다. 물론 요즘에 긴축이므로 월말은 되어 보아야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반딱이는 인화지에 유광으로 뽑고, 얇은 검정 액자를 맞추는 거다. 사방에 대지를 남길지 아니면 꽉 채워 뽑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사진을 아직 못 정했으니까. 탁 트이는 맛이 있는 풍경 사진 중에서 고르게 될 것 같다. 2:1은 원래 지평선을 위한 포맷이다.

새 집에 들어올 때부터 벽에 내 사진을 걸고 싶다는 생각이 자라기 시작했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 나는 사진 앞에서, 그리고 디자인 앞에서 작아진다. 내 사진이 뭐라고 걸기까지 할까요, 같은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매번 ‘저는 사진사는 아닙니다’ ‘저는 디자이너는 아닙니다’ 따위 말을 한다. 내가 사진사라서, 또는 디자이너라서 말을 걸었거나, 초청을 했거나, 심지어 고용을 한 사람들에게 저렇게 말하곤 했다. 한 마디로 말해 ‘임포스터 신드롬’ 이다. 하지만 이건 나 스스로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나에게 인정을 주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내가 가짜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데 가짜가 되어야 한다. 특히, 가짜에 가까운데 스스로 진짜라고 믿는 허풍선이들이 진짜의 자리들을 차지하도록 두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하여튼, 내 한계와 약점을 잘 안다고 해서 자신감을 잃으면 안 된다.

내게 주어진 일만 해도 나에게는 크다는 생각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더 큰 일을 주고,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연습을 행해야 한다. 큰 그림을 그리자. 큰 그림을 걸자. 임포스터 신드롬을 떨치자.

나는 재정비 중이다.

2018년 상반기는 참으로 오래 기억될 시기가 될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연애와 같은 친밀한 관계 앞에 서툰지, 내 감정들이 얼마나 다스리기 힘든 놈들이었는지, 내가 나에 대해 안다고 믿는 신념이 어떻게 내 눈을 가리는지 많이 배우고 알게 되었다. 연애 시작과 끝에 덜컹거릴 때 터놓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와 가족, 몰두할 수 있는 일, 떠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다. 결국 시간이 흐를 것임을 확실히 아는 나이는 먹은 것 같아서 또 다행이다. 모든 것이, 다행이다.

나는 술밤 2회 보고한다.

참 오랜만에 술밤 다운 술밤이 두 밤 있었기에 보고한다.

최근에 친해진 사람들과 해방촌 내리막길 술집 밥집 서너 군데를 들르며 내려오는 코스로 먹고 마셨다. 소세지와 사워크라웃 같은 걸 주는 동사무소 앞 집에서 멀로 한 병을 마시면서 세 명 모두의 힘 빠지는 하루를 고백했다. 해가 지자 경리단길 방향으로 좀 내려와 극장간판처럼 밝게 해 놓은 집에서 재료를 마구 넣은 칵테일을 한 잔씩 하면서 부산 말씨를 쓰는 교포 바텐더에 관해 수군거렸다. 그 다음에는 미국이나 호주에 넓은 집에 얹혀 사는 누군가의 지하 거실같은 바에서 호탕하지만 어딘가 어두운 사장님으로부터 주문한 것과 다른 샷을 한 샷씩 하고, 얘기해서 제대로 된 샷도 한 샷씩 했다. 마지막으로 앉았던 곳은 손님과 적당한 만큼만 얘기하기 위해 관심 분배를 열심히 하는 바텐더가 있고 포스트모던 쥬크박스 같은 것을 틀어놓은 바였는데 여기서는 각자 원하는 종류대로 두 잔씩을 더 시켜 마셨다. 난 불릿을 얼음 없이 마셨던 것 같다.

그보다 전 일요일 새벽엔 종로에 갔다. 자정 넘은 시각에 그냥 잘까 뭘 더 할까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급조된 자리. 역시 술자리는 갑자기 잡힐 때 더 좋다. 오랜 친구 둘이 오랜만에 만나 나누는 얘기들을 들으면서 오징어 튀김과 계란말이를 먹고, 날이 풀리니 새벽 5시까지 아무도 집에 안 가는 종로 포차 거리에 처음으로 그렇게 오래 앉아 있었다. 이런 밤은 20년, 30년 뒤에 어떻게 기억할까.

나는 단정짓기 싫다.

모르는데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상태다.

근거 1: 일단 지하철 좋은 글귀 액자에 그렇게 써 있다.

근거 2: 스님들도 수녀님들도 늘 이렇게 말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근거 3: 일하다 보면, 모르는데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때문에 일을 그르치거나 끝없이 더디게 하는 경험이 반복된다. 남이 그러는 것 한 번 보면, 내가 그랬던 적 한 번 발견한다. 누가 A를 말하면, 앞다투어 「내가 알기론 A는」 또는 「내 경험상 A를 하게 되면」 과 같은 말을 던진다. 이런 말보다는 차라리 「좋다」 「싫다」 같은 반응이 더 도움이 될 때가 많다. 또, 누군가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나서 그 결과가 펼쳐졌을 때, 「이럴 줄 알았다」는 말을 하기는 더 쉽다. 그런 게 모여서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11시에 걱정하고 13시에 훈수 두고 17시에 후회하는 조직이 만들어진다.

근거 4: 제프 베조스 같은 자가 어떻게 사업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한 비즈니스 인사이더 류의 글에도 무수히 반복된다. 데이터를 활용해 일을 처리하는 체계를 마련해 놓는다 할지라도, 실제 그 체계가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배우려 하지 않으면 체계 자체가 시키는 방향으로만 치우치게 된다. 맥락이 중요한데, 「지난 번엔 이랬지」 하면서 납작한 결론을 낸다. 모든 결정은 새로운 결정이고, 아무리 똑같아 보이는 경우라도 다른 구석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근거 5: 지금 읽고 있는 〈Thinking in Bets〉에는 이런 내용이 좀 더 적나라하게 나온다. 저자는 인생은 포커이지, 체스가 아니라고 말하며 ‘운’이 우리 삶에 개입하는 방식을 이해해야만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결정이 옳더라도, 결과는 안 좋을 수 있다. 좋은 결정권자는 그 간극을 책임져야 한다. 책임지려면 결과가 안 좋았으니 결정이 틀렸다고 단정짓는 99.99%의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또한 결정이란 과정 자체를 지나치게 낭만화하는 것도 안 된다. 물론 어려운 결정을 내리다 보면 「어려운 결정을 하는 나」를 미화하는 정치인 자서전 류의 서사에 손이 자꾸 가게 된다. 하지만 고뇌를 많이 한다고 반드시 결정의 품질이 높아지지는 않으며, 결정의 품질이 높아진다고 불운을 차단할 수는 없다. 과거를 복기할 때에는 서사를 만들어내려는 욕망을 적절히 차단해야 한다.

근거 5를 써 놓고 나서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 1번이 누군가 하니 당연히 본인인데, 과거를 복기하면서 서사로 만들어내려는 욕망은 곧 내 미들 네임이기 때문. 내 모든 글이 그렇고 내 트윗 하나 하나가 그렇고 특히나 2쇄에 들어갔다고 하는 〈IMF 키즈의 생애〉(축하합니다!) 에 실린 내 인터뷰가 그렇다. 은별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인터뷰 녹취록에 이미 서사가 강력하게 부여되어 있어서 가공이나 해석이 가장 적었다고. 그런 내 욕망이 책을 재미있게 할 수는 있었을 것 같아서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이라는 영역에서는 뿌듯함을 주지만, 내가 실시간으로 삶을 삶과 동시에 서사로 끼워맞춰서 정리하는 습관이 내 판단력을 어느 정도 이상으로 좋게 만들지는 못한다. 서사란 본질적으로 허구다. 따라서 이렇게 특정 변곡점에서 정리가 될 때마다 (‘변곡점’도 물론 허구인데)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맥락 위에 놓인 내게 주어진 결정들을 새 눈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원래 쓰려던 형식을 중간에서 내던지고 아무렇게나 끝맺도록 하겠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2016년 말 트위터 타임라인 분위기를 요즘 전국 공중파 버전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과연 2018년은 한국의 소위 ‘주류’ 정치·사회·문화가 젠더라는 현실의 축을 더는 외면하지 못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건 사실 예측이라기보다는 염원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금방 그렇게 되었고, 그것은 몹시 충격적·압축적인 (혹은 ‘한국적인’) 길로 가고 있다.

2016년에 내가 잘 아는 사람들 중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왔을 때, 나는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보탬이 될 지는 거의 확신히 없는 채로 피해자를 지지하고 가해자를 지목해 절연하는 행동을 했다. 내가 사실 해당 분야에서 거의 발언권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게 내 스스로 비교적 옳은 일을 한다는 정당화 말고는 별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가슴을 쓸어내렸던 것은 내가 그런 말과 행동을 했을 때 실제로 누군가에게 즉각적인 도움이 되어서가 아니고, (다행히 아주 약간의 도움은 되었던 것 같지만) 내가 가해자와 잘 아는 사이일 것이라는 짐작, 또 내가 이런 문제에 대해 행동할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 때문에 나에게 자신의 피해를 말 못했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점을 서서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평생 자신한테 커밍아웃한 성소수자가 없다면 아마도 자신이 커밍아웃할만한 사람이 아닌지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처럼, 그 누구의 #me_too도 모르고 살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주변이 괜찮은 주변이어서가 아니고, 내가 그런 사례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으로 살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특권은 삶을 편하게 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하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된다.

나는 용산구민이 되었다.

오늘부로 서울시민하고도 용산구민이 되었다. 올림픽이 열리던 해 서울에서 태어나 다른 곳에서 삼십년을 살고 다시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다시 서울에 살게 되었다.

올 초 발행한 2017 인생 자평의 가장 큰 결론이 직장에서 가까운 나 혼자의 방을 갖는다였다. 식습관, 운동습관, 여행, 인간관계 등 여러 차원에서 보아 다시 자취할 때임을 다각도로 깨닫게 되자 몸은 빠르게 움직였다. 윌로비 주인장 J와 최근 미 서부 생활을 접고 뉴욕으로 돌아온 Jenny가 조언을 주고 등도 적당히 떠밀어줬다. 무가식은 내 계획의 어떤 부분들이 경제적으로 미친 짓인지 일침을 놓아 주었다. (큰 도움이 되었으나 계획은 오히려 더 그가 경고한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친구들의 자극으로 불과 며칠만에 탐색부터 계약까지 썰매경기처럼 질주해 냈다.

동네는 직장이 있는 을지로와 평촌의 본가를 오가던 기존의 동선상에 있는 곳 중에 골랐는데 진작부터 거기가 신용산이나 삼각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기 때문에 막연한 고민은 아니었다. 침대를 조립하다가 아무래도 옛날처럼 전동공구 없이 하는 건 30대 김괜저로서 섭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 일단 손놓고 창가에 붙인 매트리스 위에서 폰으로 이 글 쓰고 잠 청한다. 봄이 온다.

나는 복잡한 것을 이해하는 길이 단순한 것들의 합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아님을 알아가고 있다.

올해의 출발은 확실히 작년과는 다르다. 작년은 얻어맞은 듯 얼떨떨해져서 출발했고 그렇지 않은 척하는 말과 행동이 앞서기도 했었다. 올해는 시작다운 시작의 기운이 있다. 스텝이 엉킬지언정 가려는 방향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평창이 ‘평창’이 되기 이 주 전 주말을 이용해 가족들과 강원도에 다녀왔다. 금요일에 부산 당일치기 출장을 하고 새벽에 돌아와 다음날 아침에 수원에 들러 삼겹살 구워 밥 먹고 곧장 속초로 향하는 강행군이었다. 울산바위 앞 익숙한 숙소에서 시장 닭강정 먹고 스크린 골프를 치며 놀았다. 여서일곱 종류 물고기를 다양하게 구워서 먹는 해변의 구이집에서 점심. 곤드레나물 밥에 육고기 굽는 저녁. 우리 가족은 먹어본 적 없는 걸 찾아다니거나 식당을 맛집이라 부르는 일은 한사코 없지만 적당히 친숙하니 맛있는 것이 있는 곳이면 다 제쳐두고 찾아가는 편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한 직장에서 삼 년째를 맞아본다. 난 분명 많이 성숙해지고 성장했는데 회사가 크는 속도와 내야 하는 속력은 그를 훨씬 능가한다. 그렇다는 사실을 동료들의 도움으로 진단하고 받아들이고 대책을 세우거나 세워진 대책에 따르는 일에 묘한 쾌감이 있다. 그리고 잘 이끌려면 잘 따르는 게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자주 느낀다. 우리 대표는 대단한 사업가고 그가 마크해준다는 점이 나에게 굉장한 힘이 된다.

A Crude Look at the Whole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작은 요소들을 지배하는 원리를 알면 그것이 모여 만든 복잡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원주의를 벗어나, 복잡한 것들은 복잡한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거칠고 일반적인 탐구의 방식이 따로 있다는 말을 한다. 조직과 조직이 만드는 서비스, 서비스가 만드는 커뮤니티의 일상을 돌보는 역할을 하면 할수록 무수한 작은 것들을 아는데 왜 아무리 합치고 조립하고 통계를 돌리고 냅킨에 그림을 그려도 큰 이치가 딱 하고 나오지 않는지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이 던져주는, 복잡한 것들을 이해하고자 할 때 쓰는 일반적인 도구들은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직 다 안 읽음) 비단 일 차원의 탐구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현실을 관찰할 때 해상도를 불문하고 단 하나의 이념만을 사용해 단정짓는 실책으로부터도 나를 보호해 줄 지식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나는 또 따로 있는 것 같다.

중요한 소식부터! 2017 인생 자평의 가장 직접적인 결론은 하루 2시간 걸리는 통근을 줄이자였는데, 그것을 줄일 수 있는 결정을 즉각 내렸다. 다음달에 이사간다.

집 계약을 한 당일 심지어 머리를 자르고 안경을 바꿨다. 이렇게 평소에는 생각만 하던 일들을 두세 개씩 해치우는 그런 날들이 또 따로 있는 것 같다. 머리는 가르마를 탈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짧게 치고 싶었고 안경은 반투명한 겨자색 뿔테를 갖고 싶었다. 집에 가는 길에 쉽게 들를 수 있는 남대문 단골 안경집에는 그런 테가 없었기 때문에 합정에 작년에 생긴 언커먼 아이웨어에 들러 딱 마음에 드는 것을 사서 그 자리에서 맞춰 나왔다. 언커먼 아이웨어는 모든 모델에 도수 있는 견본들을 또 따로 갖추고 있어 나처럼 저시력 상태에서 시착한 거울 속 내 모습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크게 배려한 것이 좋았다. 요즘 생애 처음으로 선글라스를 살까 하는데 그것도 여기서 할까 싶다.


추운 날이 좀 지나가서 정말이지 오랜만에 약속과 약속 사이 빈 시간에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녔다. 얼음이 뜬 강가에 앉아서 오리를 보면서 옛날 음악을 들었다. 이상하게 나의 20대에 관해 곰곰히 생각하면 30대 초반에는 그 때보다 더 어린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똑바로 먹는 나이가 있고 거꾸로 먹는 나이가 또 따로 있는 것 같다.



2017 인생 자평

12월 32일을 맞아 지난 한 해를 돌아보겠다. 블로깅 초창기에 했던 것처럼 몇 가지 주제를 정해 한 해를 주제별로 돌아보는 작업인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블로그에 공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 스스로를 위한 가감없는 〈2017 인생 자평〉을 먼저 길게 쓰고 나서, 축약과 검열 그리고 번역을 통해 아래와 같은 형태로 가공하는 과정을 거쳤다. 내가 사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남기는 기록과 공개하는 기록 사이의 관계를 조금 더 분명하게 하고 싶은 뜻이다.

0. 총평

2017년은 내가 스스로에 대해 크게 배우고 인생과 세상에 대해 여러 모로 변화된 시각을 갖게 된 한 해였다. 2016년 후반이 나를 둘러싼 크고 작은 현실들을 지탱하던 원리들이 크게 흔들리는 사건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내리게 되었던 결정들의 결과를 살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따라서 연초부터 미래에 대한 강력하지만 동시에 흐릿한 불안감과 함께였는데, 가을과 겨울 동안 그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앞을 똑바로 보기 위한 단서들이 내 밖이 아니라 안에 있지 않았는가 하는 깨달음이 몇 번의 파도처럼 오고 갔다.

2017년의 결과로 나는 조금 더 겸손하고 솔직해졌다.


1. 건강

하루 7시간 이상 규칙적으로 잤다. 일주일에 한 번 체육관에 가는 것이 목표였지만 평균적으로 한 주 걸러 갔다. 대신 처음으로 체육관에 가면 하는 ‘내 운동’이라는 개념이 흐릿하게 생기기 시작했다. 체중은 작년에 비해 3kg 늘었다. 연중에 약 3달 가량 식단을 기록하는 앱을 사용했다. 술은 한 달에 2~3번 정도로 가볍게 마셨고 커피는 하루 2~3잔 꾸준히 마셨다. 질병이나 부상은 거의 없었지만 연초와 연말에 한 번씩 가벼운 감기를 앓았다. 연말에 처음으로 직장을 통한 건강검진을 받았다.

스트레스를 관리함에 있어 분출하는 것의 중요성을 똑똑히 깨닫게 된 해였다. 전에는 타인에게 내는 ‘화’라는 카테고리가 없다시피해 늘상 다른 방식으로 처리했는데 이것이 장기적으로 독이 된다고 느껴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운동, 식습관, 자세, 정신적·성적 건강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때 새해에 가장 먼저 바꾸고 싶은 것은 하루 2시간 이상의 통근시간이다.


2. 사람들과의 연

2016년에 이어 온가족이 함께 살면서 아무런 탈 없이 화목했으니 대단한 운이다. 보드게임에 푹 빠져서 주말마다 모두 모여 두 판씩 한다. 단순히 잘 지내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가족 세 명 모두와의 관계가 더 깊어졌다.

새로운 친구를 많이 사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던 해였으나 몇몇 사람들과 예기치 못한 깊은 우정을 새롭게 나누게 되어 기쁘다. 일로 연결되었다가 친해진 친구도 있고, 친구의 친구와 불과 두세 번 같이 만나고 즉각 절친해진 적도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와 늘 그렇듯이 함께 상해 여행을 했던 것도 좋았고, 가을에 LA와 뉴욕에서 미국에 두고 온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속 깊은 얘기들을 꺼냈던 것도 좋았고, 그 중 서울을 찾은 친구들과 한 해의 끝을 함께할 수 있어서도 좋았다. 결혼한 친구들이 확 늘었는데 부부 중 한 명이 아니라 둘 다 내 친구인 경우가 그 중 꽤 있으니 다행이다.

연애의 경우 짤막하고 가벼운 만남들만 있었다 없었다 하던 한 해였다. 특히 연말 막판에 급속하게 가까워진 사람과는 한 달 정도 만난 뒤 일단락되었는데,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이어진 인연이어서인지 짧고 큰 일 없는 한 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느낀 점이 많았다. 2018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감정적 계기판을 막판에 점검하게 되었다.

작년 초부터 함께 해 온 직장 동료들, 특히 나보다 더 오래 일해온 동료들과의 신뢰가 수십 번의 시험과 단련을 통해 깊어졌다. 단순히 함께 일하는 시간과 강도로 인해 신뢰가 차곡차곡 쌓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신뢰를 주고 받는 법을 깨우친 것에 가깝다. 자주 싸우고, 화해하고, 돌아보고, 배웠다. 서로 싸우기를 두려워하는 상태가 얼마나 신뢰 부족의 상태인지 다들 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특히 이 과정을 통해 리더십이나 팀워크 같은 개념들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생각들을 갖게 되었다.


3. 배움

데이터시각화 석사 프로그램에는 가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이미 잘 한 결정이었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직장에서의 직무가 기술적인 일들에서 사람을 다루는 일로 많이 옮겨왔기 때문에 2016년과는 상당히 다른 지식을 익혔다. 여름에는 경영 결정의 일부를 돕는 역할을 처음으로 하려다 보니 재무 관련된 기초 지식을 습득해야 하기도 했는데 내가 이에 관해 얼마나 모르는지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아직도 재무 기초를 익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략적 결정에 소요되는 계획과 예측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생긴 것 같다. 연말에는 고객개발 파트로 또 한 번 중심을 옮겼는데, 영업이나 마케팅을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사람 관계,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따위의 느슨한 ‘센스’들의 집합으로 헤쳐나가던 내 원시적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그 뒤의 작동방식들과 원칙들을 습득하고자 노력했다. 이 모든 것이 2016년에 이미 알았더라면 많은 실수들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소중한 지식이다. 이를 계기로 경영대학원이라는 예전에는 끔찍하게 여겨지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나 싶어지기도 한다.

진지하고 치열한 관계들을 통해 2017년에 배운 가장 큰 교훈이라면 「똑똑해 보이는 사람 되기」를 경계하고, 상황을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려는 충동을 솔직하고 진실된 표현과 공감이 될 때까지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조급한 사람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루에도 네다섯 번씩 해야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은 시인하자. 내 단점을 나보다 남이 더 잘 본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해하지 말자.


4. 공적 자아

서울에서 독립적으로 또 자생적으로 재미있는 일을 꾸려나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망이 작년에 비해 넓고 깊어졌다. 예전에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사람들, 또 텀블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로만 아는 채 특정한 공간들에서 스치다 마침내 만난 사람들 등 경로는 다양하다. 이로 인해 서울이라는 거대도시 내 ‘재밌는 서울’ 이라는 주관적이지만 많은 이들과 공유되는 영역의 윤곽이 조금 더 뚜렷해 보이게 되었다. 2016년까지는 아무래도 이 서울에 대한 나의 포지션은 관찰자에 가까웠고 특정 프로젝트들에 참여한 것 또는 특정인과 연결된 점에 의해 대강 사람들의 머릿속 이곳 저곳에 놓여지는 입장이었으나, 201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나의 이런 저런 참여와 활동으로 말미암아 이름이 이해되는 입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세대’라는 불명확한 것과의 관계도 진일보했다. 아무래도 ‘윗 세대’라는 (마찬가지로 불명확한) 것이 자주 호명되고 그것과의 대척점이 요구되다보니 그렇다. 내가 가장 동시대성을 느끼는 서울 사람들은 80년대 중·후반생 중산층 또는 지식노동자 계층인데 이러한 동시대성을 더 강렬하게 곱씹어볼 수 있었던 기회가 연말에 있었으니 내가 인터뷰이로 참여했던 안은별 기자님의 책 〈IMF 키즈의 생애〉가 출간된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맥락 말고도, 하는 일을 통해 형성된 페르소나로도 새로운 계통들과 많이 연결되었던 해였다.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디자인 언저리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애매한 정체성을 수용하는 데에는 〈비핸스 포트폴리오 리뷰〉에서 발표하고 얼마 뒤  팟캐스트 〈디자인 테이블〉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 〈RE:Work 컨퍼런스〉등 나가서 텀블벅 얘기와 김괜저 얘기를 반반 섞어서 발표하는 계기가 몇 차례 더 생겼고 이를 통해 테크 섹터 디자이너들이나 소셜임팩트 쪽 사람들과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연말에 신뢰하는 이들과 함께〈프리랜서 네트워크〉라는 비영리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겹이 하나 더 생기게 되었다.


5. 생산

텀블벅에서의 두 번째 해는 1년차 이상으로 폭풍같은 배움의 연속이었다. 조직을 적당히 관리하는 것과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것이 얼마나 다르던지. 다행히 사업은 이런 우리의 노력을 알아주는 것 같다. 물론 한 뼘을 성장하면 새롭게 풀어야 할 문제가 한 꾸러미씩 던져지고, 이런 문제 꾸러미를 풀어야 할 사람이 나를 비롯한 단 몇 명의 동료들이라는 점이 무섭기는 하지만. 도전하면 늘 보답이 따른다는 경험치 덕분에 계속 간다.

텀블벅에 모든 역량을 쏟으면서 2016년까지는 간간히 해 오던 사이드 프로젝트들도 연중에 거의 다 끊었었다. 연초에 나온 〈뒤로〉 2호에 데이터시각화를 보탰고, 〈GQ〉 2월호에는 서울의 택시에 대한 글을 하나 쓴 정도다. 확실히 글쓰는 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블로그에 쓴 글도 불과 28개 뿐이다. 사진 역시 D750으로는 여행할 때를 제외하곤 별로 찍지 않았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일상의 말과 이미지가 ‘각 잡고’ 만드는 것들을 점점 대체한다. 그러나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나 사진은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과는 달리 즉각적인 피드백 엔돌핀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닌 만큼 꼭 꾸준히 습관을 유지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6. 문화

2016년만큼은 아니지만 괜찮은 여행을 몇 번 갔다. 봄에는 천안–군산을, 여름에는 상해를, 가을에는 삿포로와 LA–뉴욕을 다녀왔다. 특히 뉴욕 방문은 지난해부터 계획되었던 것으로 일종의 시즌 피날레 역할을 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기획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살면서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중 어느 정도가 ‘뉴욕 금단현상’인지 제대로 가려내어야 앞을 계획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과 재회하고 충분한 시간 동안 도시에 다시 푹 빠졌다 나오고 보니, 20대 초반에 뉴욕을 떠나면 일단 불안하던 시절과 지금이 얼마나 다른 상황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즉, 나는 이제 더 이상 뉴욕에 ‘당장 가야 하기 때문’에 초조하지는 않다. 그러나 언젠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한 계획을 오래 미뤄둘 수는 없다.

영화는 2017 영화 본 거에 따로 정리했다.

텔레비전은 VeepBojack Horseman 정도만 꾸준히 보고 있다. 이 두 쇼의 공통점은 비대한 자아를 가진 시끄러운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는 것인데 아무래도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에 이입하는 내 심리가 관련이 있지 않은가 싶다.

공연은 가족들과 뮤지컬 두 편을 본 것과 LA에서 스케치 코미디 쇼를 두 편 본 것 외에는 없었다.

활자에 파묻혀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형태로는 거의 일과 관련된 논픽션만 읽으며 살았던 한 해가 아닌가 싶다. 2018년에는 문학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7. 살림

기본적인 개인 재무를 위한 세팅을 2017 연말에 이르러서야 겨우 만들었다. 이제 최소한 반 년 정도의 주기로는 돈이 들어오고 나가고 쌓이는 과정에 대한 계획과 실행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실제로 해 보아야 알 것 같다.
돈이 모인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유학 살림 모드에서 전환하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귀국 후 2년간의 본가 생활은 안락하고 걱정없는 좋은 시간이었지만 아무래도 일상에 대한 주도력 반경이 방 단위로 한정되고 도시로부터 멀다 보니 삶에 대한 태도 또한 정체되는 듯한 기분이 최근 자주 들어서 나올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내 손으로 내가 사는 공간과 그곳의 동작 원리를 구축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늘 분명했으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핑계로 행동에 옮기지 않았었던 2017년이었는데, 이제는 ‘불확실하니 행동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불확실하니 행동한다’로 기본 모드를 전환할 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