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볼 때 많이 사는 것들을 나열한다.

뉴욕 살림 5년 했기 때문에 서울 살림도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나 하나 간수하면 되는 원룸 자취라 실제로도 크게 어려운 일은 없었지만, 서울에서 식단을 꾸리고 장을 보고 요리하는 건 처음이라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내 식성에 유별난 점들을 이제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구하기 쉽고, 만들기 쉽고, 싸고, 입맛에 맞는 식사들의 종류를 확보하는 데 가장 재조정이 필요했다. 장보는 곳들이 특별할 건 없다. 신선제품은 이마트와 하나로마트에서, 기타 식료품은 주로 쿠팡을 통해 사고, 치즈나 가공육, 수입 식품, 빵류 등은 한남동 일대의 스페셜티 가게들에서 가끔 산다.

가장 많이 사는 식재료들을 나열해 본다.

  1. 이파리채소: 샐러드용. 로메인을 좋아하지만 긴축을 위해 양상추를 주로 산다. 간혹 엔다이브나 청경채 같은 것을 섞을 때도 있다. 구하기 쉽고 싸다면 루꼴라만 먹었을 것이다. 양배추도 종종 사서 반은 쪄 먹고 반은 채쳐 먹는데 늘 너무 너무 많아서 질린다.
  2. 돼지고기 또는 쇠고기: 돼지고기는 갈매기살을 가장 좋아한다. 팬에 구울 때 기름이 적고 쫄깃쫄깃하며 한식 양식 다 어울린다. 찌개에는 목살을 쓴다. 쇠고기는 미국산 스테이크용 등심을 키로 단위로 사서 얼려 놓았다가 한 끼에 한 덩이씩 녹여 쓴다. 돼지고기나 쇠고기나 단지 그냥 팬에 구울 뿐이다.
  3. 닭고기: 샐러드에는 냉동 닭가슴살을 쓴다. 예전에는 냉동 치킨 텐더를 오븐에 구워서 썼지만 냉동 치킨 텐더는 맛있으려면 소금과 기름이 많이 들어가고 샐러드의 맛을 너무 정해버린다. 탄수화물을 더 줄이고 싶기도 하고 1식 1팬에 익숙해지니 오븐을 켜기도 귀찮다. 가끔 그냥 길 건너 호프집에서 파는 치킨이나 퇴근길에 있는 KFC에서 오리지날을 사 먹는다. 계란은 한 판씩 사서 한 번에 서너 개씩 반숙으로 삶아놓는다.
  4. 유제품: 나는 유제품을 많이 먹는다. 매일우유 2팩씩 늘 비치한다. 습관처럼 늘 저지방 우유를 샀는데 뭐 하는 건가 싶어서 그만두었다. 기름에 절인 페타 치즈 병조림도 늘 있어야 한다. 샐러드에 넣는다. 여러 번 생 페타로 바꿔보려고 했지만 귀찮아서 실패했다. 그리고 스트링 치즈도 꽤 자주 산다. 자주 먹는 간식거리다. 마지막으로 파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간혹 사는데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그냥 마구 먹어버려서 (참치캔 이런 거랑 먹고 그런다) 정작 근사한 요리에 쓴 적은 별로 없다. 버터는 요즘 안 쓴다. 요거트를 한동안 자주 먹었는데 플레인에 든 당도 신경쓰여서 이제 줄이려고 한다.
  5. 견과류: 나는 견과류를 너무 많이 먹는다. 가장 싸게 구할 수 있는 아몬드-캐슈-피칸이나 호두의 조합이 있으면 큰 통으로 산다. 샐러드나 요거트에 넣는다. 해바라기씨와 호박씨도 샐러드에 꼭 넣는다. 좀 더 귀한 것들, 예컨대 피스타치오나 백잣 같은 것은 저녁에 배고플 때 집어먹는다. 견과류 이렇게 많이 먹으면 아마 안 될 거다.
  6. 밥과 빵: 쿠팡에서 현미밥을 즉석밥 박스채 사서 쟁여 두고 먹는다. 보통 한 끼에 반 쪽씩 먹으면 된다. 빵은 잘 하는 집을 굳이 지나갈 일이 있을 때에만 호밀빵이나 깡빠뉴 같은 것으로 산다. 속이 엉기성기 가벼운 것이 내 식성에 맞는다. 반 밀가루 반 옥수수가루인 또르띠야를 마트에서 팔길래 그것도 자주 사 놓고 타코를 해 먹는다. 후추가 많이 들어간 샐러드 드레싱 류를 양배추와 양파 채썬 것에 뿌리고 고기를 한 덩이 구워서 말아먹으면 훌륭하다.
  7. 그 밖의 채소: 당근이나 셀러리는 땅콩버터 운반용으로 자주 산다. 브로콜리, 가지, 애호박, 버섯은 시간 여유가 좀 있을 때 오븐에 구워서 식혀 놓았다가 이것 저것에 곁들여 먹는다. 향신채 류는 양파, 마늘, 쪽파를 늘 비치한다. 쪽파는 무엇에나 넣는데 한 단을 사면 모두 썰어 반은 얼리고 반은 냉장고에 두었다가 쓴다.
  8. 과일: 연중 제일 많이 사는 아보카도와 바나나는 상태와 타이밍이 특히 중요하므로 집 앞 청과에서 따로 산다. 자몽은 세일할 때 여러 개 사서 잘라서 견과류, 치즈와 버무린 샐러드로 먹는다. 토마토도 비슷하다. 최근에는 당도 높은 과일을 줄이기로 해서 자주 먹던 복숭아나 수박 등은 잘 사지 않는다.
  9. 레토르트: 요즘 자주 사 먹는 조제 식품을 들자면 무인양품 그린 커리, 오뚜기 비지찌개, 피코크 애호박 된장찌개, 피코크 미역국 이렇게다. 모두 하려면 손이 많이 가는 국물요리들이다.
  10. 가공육: 편리하고 저렴하게 단백질을 늘릴 생각을 하다 보니 예전보다 가공육을 분명 더 많이 먹게 된다. 훈제오리, 프랑크 소시지, 어묵, 미트볼 정도다. 어묵의 경우 용산역에 부산미도어묵 집이 있어서 거기서 산다. 생선살 비율도 중요하지만 어떤 고급 어묵은 너무 탱글탱글함을 강조해서 도토리묵 같아져 버린다. 미트볼은 이케아에 갈 때 서너 봉지씩 사 온다. 떡갈비나 너비아니, 산적류 등의 냉동식품은 하나같이 너무 달고 맛에 맥아리가 없다.
  11. 반찬류: 자취 식단에서 아보카도와 함께 돈을 아끼지 않기로 마음먹은 특혜 품목이 바로 명란젓이다. 요즘 이마트에도 팔고 유명한 장석준명란은 덜 짜고 색이 자연스러워 거의 이것으로만 산다. 파를 썰어 넣고 약간의 물과 함께 끓일 때도 있고, 육류나 계란을 구우면서 쓰는 기름에 같이 튀기듯 구울 때도 있다. 밥에 얹고 파를 뿌리면 상황 종료. 김치는 맛김치를 기본으로 파김치와 열무김치 중 하나를 두고, 명이나물 또는 깻잎절임, 삶기만 한 나물류를 사서 덮밥류에 섞어 넣을 때가 종종 있다.
  12. 통조림, 병조림: 어려서부터 형성된 오랜 습관으로 인해 스팸이 찬장에 없으면 불안하다. 참치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올리브나 스위트콘, 케이퍼도 있으면 좋다. 간식용으로 골뱅이를 가끔 사지만 맛있는 건 너무 비싸다. 가장 좋아하는 통조림은 구운 피망인데 한국 마트에는 잘 없다. 쿠팡 직구를 이용해서 주문하려고 넣어 놓은 상태다. 이건 샌드위치에 넣으면 무조건 맛있다.

나는 남들이 궁금하다.

남들이 궁금하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남들은 일상 속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일로 화가 날 때 어떻게 다스리는지. ‘내가 더 좋은 사람 되면 되지’ 같은 최면이 먹히지 않을 때에 어떻게 생각을 낭떠러지 끝에서 돌려세우는지. 고민 덩어리가 부풀거나 썪지 않게 하려면 어디에 보관하는지. 해소법이 궁금하다.

원래 난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큰 관심이 없었다. 특히 남들이 마음을 어떻게 운용하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배울 점이 없다고 자만해 온 것 같다. 나는 나 스스로를 공부해야만 배움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최근에 내 사용설명서는 생각보다 범용적인 ‘인간 사용설명서’로 충분했다는 것을 여러 모로 배우고 있다.

옛날 포켓몬 게임을 다시 하면서 머리를 식히고 자야겠다. 내가 쓰지도 않을 테크 기어를 리뷰하는 아시안 캐나다인 유투브를 옆에 틀어놔야지.

나는 부동산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어졌다.

용산에 6개월 살면서 부동산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단지가 ‘용산 미친 집값’ 뉴스에 나오더라. 박원순 시장이 싱가폴에서 용산을 이렇게, 여의도를 이렇게 말하니 빨간 선이 즉각 움직이더라. 왜 약국도 없는 단지에 공인중개사는 세 군데씩 있는지 이제 알겠다.

씨니컬한 관심만 생긴 것은 아니다. 월세를 내기 위해 월 단위로 돈을 관리하며 사는 데 워낙 익숙하다 보니 다른 형태의 주거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참 없었구나 싶었다. 집을 산다는 그 말도 안 되게 들리는 행위는 어떤 경로로 가 닿게 되는 것이었나? 책 두 권을 읽었다. 하나는 30대에 집 사는 법에 대한 책이었고 하나는 ‘그래서 왜 결국 서울인지’를 고려 시대 역사부터 거슬러 올라가 설명해 주는 책이었다. 부동산 책들은 독자의 욕망에 너무나 충실하기 때문에 읽을 때 어딘가 산뜻한 구석마저 있다. 작년에 지인이 디딤돌 대출과 버팀목 대출에 대해 길게 설명해 주던 걸 대충 알아들었다 생각하고 끄덕이기만 했던 것이 기억났다. 디딤돌 대출의 조건을 알아보고 ‘계산기’도 돌려 보았다. 가상으로 계산만 해 보는 거라면 참 재미있다.

예전에 지도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을 때 제일 재미없는 것이 집값 데이터였다. 범죄율, 소득, 인종 같은 데이터는 너무 재미있는데 집값을 갖고 뭘 이해할 수 있는지는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지도 곳곳에 가격표가 붙어 있는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점점 늘고 있다. 여기는 왜 이런가. 이 동네 놀러가면 너무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곳인데 대체 왜 이런가. 호갱노노(이름 노노)도 보고 직방 다방도 보고 다음부동산도 본다. 동시에 부동산 지도 UX에 대한 생각도 늘지만… 노노! UX 같은 데로 생각이 빠지면 안돼. 집값으로 돌아가자.

이 모든 것은 사실 개인 금융에 대한 태도 문제로 돌아간다. 돈이란 참 개인적인 것이라는 것을 올해 들어 무척 많이 느꼈다. 지금까지 내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경제 태도는 주로 소비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소비나 절약에 대한 것들. 특히 외국 생활하면서 내가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소비였다. 임금을 협상하거나 부업을 갖는 등의 자유가 없었고 신용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와 몇 년간 사회가 생각하는 경제-정상인으로 살아보니, 소득에 대한 내 태도를 갑자기 점검하게 되는 계기가 많았다. 더 최근에는, 그 전까지는 그냥 그런 건 없다손 치고 살았던, 부채라는 것에 대한 태도는 더 어린 시절에 형성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빚 뭘까. 돈 뭘까. 집 뭘까.

나는 순천만 전망대에서 누워 있었다.

여수에서 묵기는 했지만 순천만이 진정한 목적지였다. 여름이 분명히 갈 것 같은데 가지 않고 앉아서 끓고 있는 주말에 휴가 이틀을 붙였다. 사실 여행은 주말만 이용했지만 여행 뒤에도 쉴 날이 남아 있으니까 비로소 놀 힘이 났다. 최근에 피로가 누적되어 일터에서 작은 일에도 감정적으로 변하는 나를 보면서 쉬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다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제일 확실히 쉬는 방법이 가족과 쉬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요즘은 가족과 쉴 때 스트레스 레벨이 가장 낮다. 본가와 내 생활터를 분리하고 나니 본가에 돌아가면 사사로운 일들이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번 여행은 나는 용산에서, 엄마 아빠는 광명에서 출발해 기차 안에서 만나 찐계란 나눠 먹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순천만은 무진장 넓고, 곰보인 바닥 뻘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뻘건 게들이 기어나오는 것을 빽빽한 갈대가 머리칼처럼 덮어 숨기고 있다. 용산 전망대에서 만나기로 하고 앞장서 다리에 힘 주면서 올라갔더니 꼭대기에서 탈진해 대자로 누워서 해를 받았다. 늦게 올라온 엄마가 가져온 양산으로 얼굴을 가려 주었고 우리는 이프로 부족할 때를 마셨다.

나는 어차피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Eastern sky around sunset from my room

나와는 전혀 다른, 심지어 나로서는 어떤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려운 방식으로 현실을 감지하는 사람 덕분에 최근에 나의 세상-겪기가 무척 새로웠다.

지금까지 나를 드러내고 나의 기준을 신경쓰는 사람들로 내 주변을 채워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맞지 않는 사람들은 자동으로 걸러지는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 왔다는 것. 특히 소셜 미디어 등에서 이름이 나고 나의 생각과 코드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주변이 만들어지면서부터는 더욱 그랬다. 나에게 맞지 않는 자리를 피하는 것은 현명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러라고 서로 권한다.

그러나 서로 별다른 취향이나 시각을 공유하지 않는 채 마주치고 만나게 되는 그런 사람들과의 인연, 그 무작위성이 얼마나 건강한 것인지에 대해 요즘 많이 생각한다. ‘세상은 어디어디 밖에 있다’는 빈정거림에 수긍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신념이 사람을 ‘거르는’ 강령이 되고 그러한 필터를 오랫동안 붙들고 있으면 결과적으로 사람-면역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다양하고, 내가 용납할 수 없는 기준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내 이웃이다. 나는 이러한 진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 모든 차이가 사실은 농담이라고 생각해야만 편안해지는 관계. 썩 나쁘지 않다. 농담 속에 산다는 것이 말이다.

나는 보스토크 매거진 10호 《Urban Space: 도시건축탐험》에 글을 보탰다.

보스토크 10호 Urban Space

보스토크 매거진 10호 《Urban Space: 도시건축탐험》에 보탠 글의 제목은 〈내 도시 공부법〉이다. 이제 삼 년째 살면서 알아가고 있는 서울을 바탕으로, 한 도시를 공부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공부법 다섯 가지를 나열한 가벼운 에세이다. 다섯 가지 공부법은 다음과 같다:

  1. 높은 곳에 올라간다
  2. 지칠 때까지 걷는다
  3. 어머니의 기억과 견준다
  4. 데이팅 앱을 켠다
  5. 머리를 자른다

편집부에서 보내주신 따끈따끈한 10호를 감사히 받았는데, 지금까지 나온 보스토크 매거진 이슈들에 비해 더욱 두껍고 풍성하다. 도시를 경험하는 감각에 대한 에세이, 도시와 건축, 사진에 관한 비평, 그리고 열여섯 사진작가의 화보로 구성되어 있다. 사적이고 가벼운 내 글이 이 특별한 기획의 맥락 내에서 읽힐 수 있어서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어제 밤부터 선풍기 앞에서 황도를 까 먹으면서 읽어 나가고 있다.

나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끝나고 앓아누웠다.

우리는 M을 찾고 있었다. 두 번째 트럭 뒤에 있다고 해서 열심히 걸어 여섯 번째 트럭부터 따라잡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호리호리한 실루엣의 M이 세상에서 제일 튀는 까만 시스루 드레스를 입었다고 해서 바로 찾을 줄 알았건만. 우리는 어쨌든 노래와 구호에 맞춰 어깨를 씰룩이며 걸었다. 행진이 종로에서 안국 방향으로 방향을 틀 때쯤, 갑자기 머리가 띵해졌다. 「너 얼굴 안 좋다」 해리가 말했다. 「그럴 줄 았았어. 더위 먹은 것 같은데」 우리는 행진 옆구리로 빠져나왔다. 더워도 너무 덥기는 했다. 편의점에 들어갔다. 내 앞에는 구릿빛 상체에 멜빵만 걸친 남자가 물휴지를 사고 있었다. 나는 포카리 스웨트를 샀다. 밖은 너무 덥고 편의점 안은 너무 더웠다. 「아무래도 난 집에 가야겠어」

이틀 전에는 엄마가 카톡으로 주말 계획을 물었다. 「집에는 못 내려갈 것 같아. 나 홍콩 친구 있잖아, 걔가 오거든. 그리고 토요일엔… 토요일엔 시청 앞 광장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해. 거기 가려고」 엄마는 최근 사회복지에 관한 공부를 하더니 부쩍 ‘성소수자’나 ‘퀴어’ 같은 단어를 듣고 말하는 데 거리낌이 줄어든 것 같다. 아무래도 엄마가 예전까지는 교과서나 공영방송에서 잘 나오지 않는 단어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 같은 것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도 몇 년 전에는 「그런 주장을 너무 하면 곤란한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했지만 요즘에는 뉴스거리가 있으면 먼저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래서 작년에는 퀴어문화축제라는 것이 있어서 갔었다고 다녀온 다음에 밥상에서 슬쩍 얘기했었던 것을, 올해는 미리 말했다.

「엄마도 갈까?」

「오면 눈물나지」

엄마는 나와 해리보다 삼십 분이나 먼저 도착했다. 광장 잔디에 앉아서 댄스 공연을 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집회 때문에 못 갈 게 뻔한 버스를 타려고 허둥대다가 시간을 허비하고, 서울역부터 걷기 시작했다. 너무 더웠다. 엄마 정신없는 곳 잘 못 견디는데 더위 먹는 거 아닌가 싶었다. 남대문에서 시청 쪽으로 걷는데 드디어 사람들이 보였다.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무리였다. 서울에서도 봤고, 대구에서도 봤던 이들이지만 그 수가 지금까지 본 것 중 제일 많았다. 그들만으로도 충분히 어엿한 축제와 행진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가족들, 청년들이 줄지어 그런 팻말들을 들고 걷고 있었다. 엄마와 만나기로 한 8번 출구에 다다르자 나는 영 부글거리는 마음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너무 더워서 지하로 피신했다고 했다.

「엄마! 여기는 해리야. 내가 말한 홍콩 친구. 해리, 우리 엄마야」 나는 엄마가 해리를 만나는 자리를 여러 번 생각해 본 적 있다. 해리가 웃고 말하면 아주머니들이 다 넘어가는 걸 많이 봐 왔다. 엄마는 해리 팔을 꽉 잡더니 갖고 있던 손선풍기를 해리 얼굴에 갖다 댔다.

「너무 더워, 너무 더워. 앉아서 공연 보는데 너무 더워서 죽을 뻔했다. 그 네가 말한 성소수자 부모모임 거기서도 나와서 발표 하더라」

「응. 오는데 온통 저 반대 한다는 사람들밖에 안 보여. 심란하잖아」

「야, 신경 쓰지 마. 저 사람들 다 이게 이런 건가 보다 해서 나온 거잖아. 몰라서 그러는 거. 이게 다 바뀌려고 그러는 거야」

엄마를 지하철 태워 보내고 해리와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배가 고파져서, 김가네에서 콩국수와 스팸 김밥을 한 줄 먹었다. 너무 가까운 옆 테이블에서는 제법 퀴어해 보이는 청소년 셋이서 우리 콩국수를 부러워하며 콩국수의 고소함을 영어로 뭐라고 표현할까를 두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해리는 국물을 마시라고 나에게 사발을 건내주며 얘기했다. 「엄마 보고 울컥한 거지? 너 올해 힘들었잖아. 이제 다 지나간 거야. 이런 게 지나가고 나면 난 꼭 몸이 아프더라」

나는 친구들이 결혼했다.

캐롤과 잭슨이 대구에서 결혼을 했다. 지난 10년 동안 나와 행복한 추억들을 가장 많이 만든 친구 중 둘이 서로에게 시집 장가를 간 것이다. 작년 연말에 둘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개인적인 일로 풀 죽어 있던 나에게 결혼 소식으로 큰 기쁨을 안기고 갔다. 신도시에서 밤 늦게까지 춤추며 축하했다.

캐롤은 뉴욕에서 나고 자란 교포지만 한가닥하는 대구 가문 출신이라 대구 결혼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전통혼례로 향교에서 치뤄진 결혼식에서 나는 두루마기에 갓까지 쓰고 기럭아범(나무 기러기를 신랑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과 통역을 겸했다. 벌써 두 번째 전통혼례 사회자 경력이니 레쥬메에도 반영하도록 한다. 신부 쪽 친지들도 많이 오셨지만, 영미권 여기저기서 한걸음에 달려온 친구들만 스무 명이 넘었다. 작년 추석을 이용해 뉴욕에 갔을 때에도 캐롤 생일 파티로 다 모였던 그 멤버들이 한 비행기 타고 왔다. 모건과 제니, 샬롯 등은 나처럼 신랑 신부 양쪽과 오랜 우정을 쌓은 친구들이다. 나와 제니, 그리고 제이는 바쁜 신부를 대신해 자연스럽게 서울과 대구에서 현지 가이드 역할도 했다.

한여름 대구였지만 태풍 두 개 사이에 꼭 낀 덕분에 산뜻한 고기압에 서늘할 정도의 바람이 불고, 애프터파티가 열린 수성구 옥상에서는 대리석 무늬로 지는 석양이 무척 아름다웠다.

나는 이동 중에 먹는다.

탈것 안에서 먹을 것을 고르는 일을 신중하게 접근한다. 비행기에서는 보통 짭잘한 토마토 주스를 짭짤한 견과류(캐슈가 좋다)랑 같이 먹은 다음, 녹차를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비행 중에 커피나 알콜은 잘 마시지 않는다. 쿠알라 룸프르에 가는 에어아시아 항공편은 워낙 저가여서 물도 따로 구매해야 했다. 몇 링깃 이상을 사야지만 신용카드 결제가 되었기 때문에 물 하나, 코코넛 워터 하나, 캐슈 하나, 또띠야 칩 하나, 그리고 햄 치즈 크로아상 샌드위치를 하나 사고 말았다. 크로아상은 마카롱이 그렇듯 일정 품질 이하로는 아예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음식 중 하나다. 식빵이었으면 수긍하고 먹었을 정도의, 만들고 냉장고에서 잊혀진 타입의 샌드위치였는데 빵이 크로아상을 흉내내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슬펐다.

지금은 회사 워크샵을 갔다가 기차로 돌아오는 길이다. 아침을 안 먹은 보상, 그리고 너무 오랜만에 민박집에서 요 깔고 자느라 몸이 뻣뻣해진 데에 대한 보상 심리로 짜릿한 죄책감을 선사하는 트리오로 이동 식단을 구성했다. 바빈스키 콜드브루 라떼, 다스 밀크 초콜릿, 그리고 뒷자리 동료가 빵틀이 남긴 격자대로 잘라 준 도넛 반 조각. 바빈스키와 다스를 고급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각각 커피 음료와 밀크 초콜릿이다 라고 넉넉히 불러줄 수 있는 최소한을 한다. 일상 속에서 ‘그것’과 ‘그 비스무리한 것’을 분별할 필요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유독 어떤 기호들에 관해서는 미련을 놓을 수가 없다. 백종원의 방식과 정용진의 방식을 비교 연구해 열화 구현의 하한선 설정 감각이라는 비즈니스 역량에 대한 책이 나오면 열심히 읽어보고 싶다.

나는 쿠알라 룸푸르에 다녀왔다.

더위가 오기 전에 더위를 찾아서 더 더운 나라로 여행을 가는 것은 내 집안(1인 가구)의 오랜 풍습이다. 2016년에는 홍콩·대만, 2017년에는 상하이였다. 올해는 더 더운 곳을 찾은 끝에 쿠알라 룸푸르로 4박 5일 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이틀의 휴가만을 내고 연휴를 길게 쓰는 일정이었다. 말레이시아 물가 덕이기도 하고 운도 좋아서, 꽤 괜찮은 호텔에서 싼 값에 머무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내가 가 본 해외 여행 중 가장 다른 목적 없이 휴양에만 집중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나는 쉬러 가는 걸 참 못 하는 편이다. 새로운 도시에 가서 밤낮으로 돌아다닌다. 책방과 맛집을 찾아다니고, 도시의 일정 면적이 지도에서 눈에 익을 때까지 구석구석 밟고 온다. 게다가 평소에 해야지 말만 하고 못 하던 일들을 잔뜩 싸갖고 간다. (싸갖고 간다는 말이 이제는 어색하다. 어차피 인터넷만 연결하고 ‘프로젝트’ 폴더만 열면 된다.) 이건 혼자 여행할수록 심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극도로 여유가 부족했던 봄이 끝나니 휴양을 하고 싶어졌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하는 성격에 붙이는 이름이 뭔가 특별하고 예쁜 것이 아니라, 다름아닌 ‘불안’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쿠알라 룸푸르에서 꼭 가 봐야 할 어느 곳도 찾아보지 않았고, 사진기도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호텔 방에서 룸 서비스를 시켜 먹고, George Saunders의 소설을 읽고, 심지어 호텔 옥상에서 일광욕까지 했다. 내가 일광욕을 하다니! 남들 앞에서 벌거벗는 일과 뙤약볕 아래 아무런 생산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