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따로 있는 것 같다.

중요한 소식부터! 2017 인생 자평의 가장 직접적인 결론은 하루 2시간 걸리는 통근을 줄이자였는데, 그것을 줄일 수 있는 결정을 즉각 내렸다. 다음달에 이사간다.

집 계약을 한 당일 심지어 머리를 자르고 안경을 바꿨다. 이렇게 평소에는 생각만 하던 일들을 두세 개씩 해치우는 그런 날들이 또 따로 있는 것 같다. 머리는 가르마를 탈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짧게 치고 싶었고 안경은 반투명한 겨자색 뿔테를 갖고 싶었다. 집에 가는 길에 쉽게 들를 수 있는 남대문 단골 안경집에는 그런 테가 없었기 때문에 합정에 작년에 생긴 언커먼 아이웨어에 들러 딱 마음에 드는 것을 사서 그 자리에서 맞춰 나왔다. 언커먼 아이웨어는 모든 모델에 도수 있는 견본들을 또 따로 갖추고 있어 나처럼 저시력 상태에서 시착한 거울 속 내 모습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크게 배려한 것이 좋았다. 요즘 생애 처음으로 선글라스를 살까 하는데 그것도 여기서 할까 싶다.


추운 날이 좀 지나가서 정말이지 오랜만에 약속과 약속 사이 빈 시간에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녔다. 얼음이 뜬 강가에 앉아서 오리를 보면서 옛날 음악을 들었다. 이상하게 나의 20대에 관해 곰곰히 생각하면 30대 초반에는 그 때보다 더 어린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똑바로 먹는 나이가 있고 거꾸로 먹는 나이가 또 따로 있는 것 같다.



2017 인생 자평

12월 32일을 맞아 지난 한 해를 돌아보겠다. 블로깅 초창기에 했던 것처럼 몇 가지 주제를 정해 한 해를 주제별로 돌아보는 작업인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블로그에 공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 스스로를 위한 가감없는 〈2017 인생 자평〉을 먼저 길게 쓰고 나서, 축약과 검열 그리고 번역을 통해 아래와 같은 형태로 가공하는 과정을 거쳤다. 내가 사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남기는 기록과 공개하는 기록 사이의 관계를 조금 더 분명하게 하고 싶은 뜻이다.

0. 총평

2017년은 내가 스스로에 대해 크게 배우고 인생과 세상에 대해 여러 모로 변화된 시각을 갖게 된 한 해였다. 2016년 후반이 나를 둘러싼 크고 작은 현실들을 지탱하던 원리들이 크게 흔들리는 사건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내리게 되었던 결정들의 결과를 살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따라서 연초부터 미래에 대한 강력하지만 동시에 흐릿한 불안감과 함께였는데, 가을과 겨울 동안 그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앞을 똑바로 보기 위한 단서들이 내 밖이 아니라 안에 있지 않았는가 하는 깨달음이 몇 번의 파도처럼 오고 갔다.

2017년의 결과로 나는 조금 더 겸손하고 솔직해졌다.


1. 건강

하루 7시간 이상 규칙적으로 잤다. 일주일에 한 번 체육관에 가는 것이 목표였지만 평균적으로 한 주 걸러 갔다. 대신 처음으로 체육관에 가면 하는 ‘내 운동’이라는 개념이 흐릿하게 생기기 시작했다. 체중은 작년에 비해 3kg 늘었다. 연중에 약 3달 가량 식단을 기록하는 앱을 사용했다. 술은 한 달에 2~3번 정도로 가볍게 마셨고 커피는 하루 2~3잔 꾸준히 마셨다. 질병이나 부상은 거의 없었지만 연초와 연말에 한 번씩 가벼운 감기를 앓았다. 연말에 처음으로 직장을 통한 건강검진을 받았다.

스트레스를 관리함에 있어 분출하는 것의 중요성을 똑똑히 깨닫게 된 해였다. 전에는 타인에게 내는 ‘화’라는 카테고리가 없다시피해 늘상 다른 방식으로 처리했는데 이것이 장기적으로 독이 된다고 느껴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운동, 식습관, 자세, 정신적·성적 건강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때 새해에 가장 먼저 바꾸고 싶은 것은 하루 2시간 이상의 통근시간이다.


2. 사람들과의 연

2016년에 이어 온가족이 함께 살면서 아무런 탈 없이 화목했으니 대단한 운이다. 보드게임에 푹 빠져서 주말마다 모두 모여 두 판씩 한다. 단순히 잘 지내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가족 세 명 모두와의 관계가 더 깊어졌다.

새로운 친구를 많이 사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던 해였으나 몇몇 사람들과 예기치 못한 깊은 우정을 새롭게 나누게 되어 기쁘다. 일로 연결되었다가 친해진 친구도 있고, 친구의 친구와 불과 두세 번 같이 만나고 즉각 절친해진 적도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와 늘 그렇듯이 함께 상해 여행을 했던 것도 좋았고, 가을에 LA와 뉴욕에서 미국에 두고 온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속 깊은 얘기들을 꺼냈던 것도 좋았고, 그 중 서울을 찾은 친구들과 한 해의 끝을 함께할 수 있어서도 좋았다. 결혼한 친구들이 확 늘었는데 부부 중 한 명이 아니라 둘 다 내 친구인 경우가 그 중 꽤 있으니 다행이다.

연애의 경우 짤막하고 가벼운 만남들만 있었다 없었다 하던 한 해였다. 특히 연말 막판에 급속하게 가까워진 사람과는 한 달 정도 만난 뒤 일단락되었는데,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이어진 인연이어서인지 짧고 큰 일 없는 한 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느낀 점이 많았다. 2018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감정적 계기판을 막판에 점검하게 되었다.

작년 초부터 함께 해 온 직장 동료들, 특히 나보다 더 오래 일해온 동료들과의 신뢰가 수십 번의 시험과 단련을 통해 깊어졌다. 단순히 함께 일하는 시간과 강도로 인해 신뢰가 차곡차곡 쌓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신뢰를 주고 받는 법을 깨우친 것에 가깝다. 자주 싸우고, 화해하고, 돌아보고, 배웠다. 서로 싸우기를 두려워하는 상태가 얼마나 신뢰 부족의 상태인지 다들 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특히 이 과정을 통해 리더십이나 팀워크 같은 개념들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생각들을 갖게 되었다.


3. 배움

데이터시각화 석사 프로그램에는 가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이미 잘 한 결정이었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직장에서의 직무가 기술적인 일들에서 사람을 다루는 일로 많이 옮겨왔기 때문에 2016년과는 상당히 다른 지식을 익혔다. 여름에는 경영 결정의 일부를 돕는 역할을 처음으로 하려다 보니 재무 관련된 기초 지식을 습득해야 하기도 했는데 내가 이에 관해 얼마나 모르는지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아직도 재무 기초를 익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략적 결정에 소요되는 계획과 예측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생긴 것 같다. 연말에는 고객개발 파트로 또 한 번 중심을 옮겼는데, 영업이나 마케팅을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사람 관계,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따위의 느슨한 ‘센스’들의 집합으로 헤쳐나가던 내 원시적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그 뒤의 작동방식들과 원칙들을 습득하고자 노력했다. 이 모든 것이 2016년에 이미 알았더라면 많은 실수들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소중한 지식이다. 이를 계기로 경영대학원이라는 예전에는 끔찍하게 여겨지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나 싶어지기도 한다.

진지하고 치열한 관계들을 통해 2017년에 배운 가장 큰 교훈이라면 「똑똑해 보이는 사람 되기」를 경계하고, 상황을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려는 충동을 솔직하고 진실된 표현과 공감이 될 때까지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조급한 사람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루에도 네다섯 번씩 해야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은 시인하자. 내 단점을 나보다 남이 더 잘 본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해하지 말자.


4. 공적 자아

서울에서 독립적으로 또 자생적으로 재미있는 일을 꾸려나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망이 작년에 비해 넓고 깊어졌다. 예전에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사람들, 또 텀블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로만 아는 채 특정한 공간들에서 스치다 마침내 만난 사람들 등 경로는 다양하다. 이로 인해 서울이라는 거대도시 내 ‘재밌는 서울’ 이라는 주관적이지만 많은 이들과 공유되는 영역의 윤곽이 조금 더 뚜렷해 보이게 되었다. 2016년까지는 아무래도 이 서울에 대한 나의 포지션은 관찰자에 가까웠고 특정 프로젝트들에 참여한 것 또는 특정인과 연결된 점에 의해 대강 사람들의 머릿속 이곳 저곳에 놓여지는 입장이었으나, 201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나의 이런 저런 참여와 활동으로 말미암아 이름이 이해되는 입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세대’라는 불명확한 것과의 관계도 진일보했다. 아무래도 ‘윗 세대’라는 (마찬가지로 불명확한) 것이 자주 호명되고 그것과의 대척점이 요구되다보니 그렇다. 내가 가장 동시대성을 느끼는 서울 사람들은 80년대 중·후반생 중산층 또는 지식노동자 계층인데 이러한 동시대성을 더 강렬하게 곱씹어볼 수 있었던 기회가 연말에 있었으니 내가 인터뷰이로 참여했던 안은별 기자님의 책 〈IMF 키즈의 생애〉가 출간된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맥락 말고도, 하는 일을 통해 형성된 페르소나로도 새로운 계통들과 많이 연결되었던 해였다.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디자인 언저리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애매한 정체성을 수용하는 데에는 〈비핸스 포트폴리오 리뷰〉에서 발표하고 얼마 뒤  팟캐스트 〈디자인 테이블〉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 〈RE:Work 컨퍼런스〉등 나가서 텀블벅 얘기와 김괜저 얘기를 반반 섞어서 발표하는 계기가 몇 차례 더 생겼고 이를 통해 테크 섹터 디자이너들이나 소셜임팩트 쪽 사람들과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연말에 신뢰하는 이들과 함께〈프리랜서 네트워크〉라는 비영리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겹이 하나 더 생기게 되었다.


5. 생산

텀블벅에서의 두 번째 해는 1년차 이상으로 폭풍같은 배움의 연속이었다. 조직을 적당히 관리하는 것과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것이 얼마나 다르던지. 다행히 사업은 이런 우리의 노력을 알아주는 것 같다. 물론 한 뼘을 성장하면 새롭게 풀어야 할 문제가 한 꾸러미씩 던져지고, 이런 문제 꾸러미를 풀어야 할 사람이 나를 비롯한 단 몇 명의 동료들이라는 점이 무섭기는 하지만. 도전하면 늘 보답이 따른다는 경험치 덕분에 계속 간다.

텀블벅에 모든 역량을 쏟으면서 2016년까지는 간간히 해 오던 사이드 프로젝트들도 연중에 거의 다 끊었었다. 연초에 나온 〈뒤로〉 2호에 데이터시각화를 보탰고, 〈GQ〉 2월호에는 서울의 택시에 대한 글을 하나 쓴 정도다. 확실히 글쓰는 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블로그에 쓴 글도 불과 28개 뿐이다. 사진 역시 D750으로는 여행할 때를 제외하곤 별로 찍지 않았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일상의 말과 이미지가 ‘각 잡고’ 만드는 것들을 점점 대체한다. 그러나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나 사진은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과는 달리 즉각적인 피드백 엔돌핀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닌 만큼 꼭 꾸준히 습관을 유지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6. 문화

2016년만큼은 아니지만 괜찮은 여행을 몇 번 갔다. 봄에는 천안–군산을, 여름에는 상해를, 가을에는 삿포로와 LA–뉴욕을 다녀왔다. 특히 뉴욕 방문은 지난해부터 계획되었던 것으로 일종의 시즌 피날레 역할을 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기획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살면서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중 어느 정도가 ‘뉴욕 금단현상’인지 제대로 가려내어야 앞을 계획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과 재회하고 충분한 시간 동안 도시에 다시 푹 빠졌다 나오고 보니, 20대 초반에 뉴욕을 떠나면 일단 불안하던 시절과 지금이 얼마나 다른 상황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즉, 나는 이제 더 이상 뉴욕에 ‘당장 가야 하기 때문’에 초조하지는 않다. 그러나 언젠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한 계획을 오래 미뤄둘 수는 없다.

영화는 2017 영화 본 거에 따로 정리했다.

텔레비전은 VeepBojack Horseman 정도만 꾸준히 보고 있다. 이 두 쇼의 공통점은 비대한 자아를 가진 시끄러운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는 것인데 아무래도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에 이입하는 내 심리가 관련이 있지 않은가 싶다.

공연은 가족들과 뮤지컬 두 편을 본 것과 LA에서 스케치 코미디 쇼를 두 편 본 것 외에는 없었다.

활자에 파묻혀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형태로는 거의 일과 관련된 논픽션만 읽으며 살았던 한 해가 아닌가 싶다. 2018년에는 문학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7. 살림

기본적인 개인 재무를 위한 세팅을 2017 연말에 이르러서야 겨우 만들었다. 이제 최소한 반 년 정도의 주기로는 돈이 들어오고 나가고 쌓이는 과정에 대한 계획과 실행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실제로 해 보아야 알 것 같다.
돈이 모인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유학 살림 모드에서 전환하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귀국 후 2년간의 본가 생활은 안락하고 걱정없는 좋은 시간이었지만 아무래도 일상에 대한 주도력 반경이 방 단위로 한정되고 도시로부터 멀다 보니 삶에 대한 태도 또한 정체되는 듯한 기분이 최근 자주 들어서 나올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내 손으로 내가 사는 공간과 그곳의 동작 원리를 구축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늘 분명했으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핑계로 행동에 옮기지 않았었던 2017년이었는데, 이제는 ‘불확실하니 행동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불확실하니 행동한다’로 기본 모드를 전환할 때가 된 것이다.

나는 요리보고 조리본다.

좋아하는 유명 요리 유투브 채널 몇 개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퇴근길과 자기 전 몇 분을 함께하는 분들이다. 복잡한 생각을 지우기에 잘 만든 요리 비디오만한 게 없다.

먼저 ChefSteps는 시애틀에 기반한 기술/요리 기업인데, 실험만을 위해 만들어진 완벽한 주방에서 격식없이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가며 매 주제를 보여주는 태도가 워낙 매력적이어서 몇 년 전부터 생각날 때마다 들어가서 본다. 요리법 콘텐츠 제공으로 시작해 지금은 자체 수비드 기계와 앱을 파는 테크기업이 됐다. 와플아이언에 다 때려넣고 구워버리는 영상을 보자.

다음은 꾸준의 또다른 이름, Martha Stewart 채널의 Kitchen Conundrum 되시겠다. 요리도 하고 베이킹도 하지만 약간 베이킹에 더 강한 Thomas Joseph가 매회 하나의 고민거리를 골라 세상 친절하게 해결해준다. 보고 있으면 그냥 마음이 편해진다. 그야말로 정석만 하고 장난치지 않는데 그렇다고 너무 진지해서 재미없지 않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교육용 영상. 언제나 아주 조금은 영혼이 없고 사무적으로 느껴져서 오히려 더 정이 간다.

마지막으로 말이 필요없는 Nigella Lawson인데, 너무 유명한 분을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작인 BBC At My Table의 프로덕션 퀄리티가 정말 미친 것 같기 때문이다. 말 한 마디, 카메라에 던지는 시선 하나까지 모두 각본 그대로임이 느껴지는 철저한 쇼인데, 왼손이 보이면 오른손이 배경으로 녹아 사라져버릴 정도로 낮은 심도의 카메라로 찍은 영상과 폴리로 입혔다고 해도 믿을 만큼 생생한 음향이, 보다보면 약간 정신이 나가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나는 누군가의 독촉으로 새 글을 쓴다.

블로그에 글을 잘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은 사실 글 세상에서 중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서다. 오해를 감수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점점 늘어난다. 그런 상황에서 계속 말하려면 하나, 제정신을 점점 더 자주 차려줘야 하고 둘, 기술이 점점 늘어줘야 하며 셋, 배짱이 점점 더 늘어줘야 한다. 불행하게도 셋 다 계속 말하지 않으면 반대 방향으로 가 버린다. 그래서 헛소리라도 지속적으로 해 줘야 한다.

관념적이거나 감상적이지 않고 그냥 일어난 일, 한 생각을 쭉 써놓는, 말하자면 담임선생님한테 혼나는 일기 같은 글쓰기가 그래서 참 중요하다. 오늘 것을 한 번 해 보겠다.

오늘은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났다. 밖이 흐려서 빛이 덜 들어오는 날일수록, 한 주의 후반부일수록 더 잘 발생하는 일이다. 요즘은 꼭 샤워하고 머리를 말린 다음 아침을 먹으려고 한다. 경험상 그 순서가 가장 버리는 시간이 적고 동선도 세련되다. 아침은 통통한 새끼 조기를 구운 것과 육개장이었다.

요즘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주고받는 사람이 하나 생겼다. 봐, 일기 같은 글쓰기를 하려니까 이런 얘기도 나오잖어. 그 사람은 지난 몇 주 동안 토요일에만 만났다.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 서로의 자서전을 두세 번씩 읽은 듯하다. 재미있고 갑작스럽다.

자서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 쓰는 분 중 한 분인 안은별 작가가 나를 인터뷰한 내용이 포함된 신간을 낸다. 내가 인터뷰된 이유는 그 책이 외환위기 때 유년기를 보냈던 한국인 밀레니얼 몇 명의 생애 초반부를 프로파일링하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작년 겨울에 홍대 사무실 유리벽 회의실에 앉아 몇 시간이고 내 얘기를 했는데 내가 나를 알게 되는 그 끝없는 일에 꽤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고마운 경험이다.

연말이기도 하고, 요즘 회사에서 고객개발 쪽으로 내 무게추를 옮겨 놓은 상태이다 보니 한창 사람 만날 일이 많다. 많게는 하루에 행사 한두 개와 미팅 서너 개를 소화할 때도 있다. 나는 늘 사람과 말할 일 많은 일을 주로 해 오긴 했지만, 거기에 요즘처럼 새로 만나는 사람 비중이 높아진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마지막으로 이랬던 것은 뉴브런즈윅 에이전시 재직시 대학 상대로 영업과 아이티 서포트를 뛰면서 동시에 브루클린에서는 NY30NY로 인터뷰를 다녔던 시절인 것 같다.

최근 행사 중 가장 큰 것은 Re:Work라는 컨퍼런스였다. 일의 미래라는 느슨한 주제로 묶인 주말 양일짜리 포럼이었는데 나는 텀블벅 얘기하는 세션 하나에 더해 플랫폼 사업 실무자들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제안하는 발제까지 두 꼭지로 참여하다 보니 여느 행사에 비해 깊게 함께하는 태도로 임했다. 일과 사람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날 소개했는데, 사실이기는 하지만 또 언제 보면 아무 뜻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문장이다.

내게 글을 독촉한 분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다시 실없는 문자를 하러 가야겠다. 오늘의 일기 끝.

나는 일에 의도가 있게 한다.

운좋게 성숙하는 조직에서 일하면서 전에 없었거나 체계 없이 굴러가던 일들의 기틀을 잡는 일을 번번히 맡게 되는데 할 때마다 어렵지만 즐겁다. 일을 ‘생각하며’ 할 수 있는 여유 확보, 일을 ‘하나씩’ 할 수 있는 순위 설정, 일을 ‘각 잡고’ 할 수 있는 규율 부여 같은 것에 중점을 두고 일을 다시 본다. 그리고 내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나 ‘자격’이 부여되어 있는지보다 내가 일을 어떤 목적과 방법으로 전진시키는지 그 현실적인 효과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얼마나 잘 돌아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나 스스로에게 되물을 때 쓰는 기준으로 똑같이 외부와도 투명하게 소통한다. 어려운 일이다.

천적과 한강진 샐러드집에서 주말 점심을 괜히 한 끼 같이 먹으면서 사람들 대부분이 서로와 함께 일을 벌이며 생활하는 면면이 얼마나 단순 물리적, 생리적인 원칙들에 의해 지배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강형욱씨가 동물을 다룰 때에 얼마나 의도를 정확히 상대에게 전달하고 그 효과를 확인하는 단순한 원리를 중시하는지. 사람끼리의 사회적 관계들이라는 것도 얼마나 우리가 젠체하는 겉모습에 비해 단순한 힘과 선형성에 의해 진행되는지. 단순한 원리들을 깨닫고 그를 실제 관계에 실천하는 사람들이란 얼마나 성숙하고 귀한지.

동물뿐 아니라 기계와 인간을 비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인간이 기계다울 수 있을까 기계가 인간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의문’의 형태로 오랫동안 끌고 가면서 재밌어하는 사람들은 재미 없는 사람들이다. 재미있는 사람들은 기계답기로 마음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의도를 가진 행동의 비율(의도가 없는 행동과의)을 높이고 정확한 인풋과 아웃풋 프로토콜을 갖추는 일. 혼돈을 도입할 때 역시 혼돈을 정확한 의도로 정확한 양 만큼 자로 잰듯 도입하는 일. 정시에 예측을 출력하고 한 사이클 뒤 예측과 실측을 비교해 다음 사이클에 반영하는 일. 그런 사람은 좋은 기계일까? 아니, 좋은 사람이다.

나는 퇴근길 소공동에서 파니니 먹으면서 포케몬 하니까 행복하다.

즐거운 퇴근길을 만들면 쾌감이 너무 크다. 퇴근길에 친구와 연락할 때 기분 좋은 상태. 최근에 프리랜서 관련한 행사에도 참여하고, ‘직장 없는 미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의견들을 갖고 있지만, 출근과 퇴근이라는 이 단순한 의식이 주는 리듬을 대체할 모델들이 충분히 나와주고 사람들에 체화되기까지 많이 좀 헤맬 것 같다.

나는 거기가 거기임에 안도한다.

아 물론 뉴욕과 엘에이와 서울이 거기가 거기는 아니다. 하지만 제대하고 나서 뉴욕에 돌아갔던 25세 김괜저가 두 뺨에 눈물줄을 그리고 뉴욕 거리를 달렸던 것에 비하면 이번 복귀는 몹시 안정적이었다. 첫날 밤, 엘에이 야라네 거실에서 절친들과 사는 얘기 나누니 이미 몸은 멀어도 이심전심, 살면서 드는 생각 하는 말들 다 비슷하다는 것 확인하고 안도했다. 세상 정치 얘기. 일과 연애 얘기. 가족과 건강 얘기. 다 그 인생이 그 인생이다.






지난 2년간 팟캐스트를 많이 들었다. 즉흥(improv) 코미디언들이 나와 노가리 까다가 상황극 하는 그런 쇼들을 많이 들었다. Comedy Bang Bang이나 Spontaneanation 같은 쇼들. 단순히 교육받은 도시 미국인들이 마냥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 듣기 시작한 것들인데 정이 들었다. 잘 만든 미국식 즉흥 코미디를 듣고 있다 보면 정말이지 두뇌회전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심지어 Off Book처럼 즉흥으로 뮤지컬을 공연하는 쇼도 있다. 물론 대강의 전형적인 코드 전개들을 갖고 좌충우돌하며 펼쳐놓는 형태지만 3~4인이 서로의 재치를 곱해 스토리를 땋아가는 솜씨가 대단하다. 나는 물론 여기서도 본업에 필요한 교훈을 챙기게 되는데 (병이다) 그건 바로 즉흥연기의 불문율인 ‘Yes and.’ 상대의 상황극은 아무리 해괴해도 일단 받는 그 정신이 쇼를 만든다. 아무리 내가 더 좋은 전개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에서 공이 저쪽에 있었으면 그 사람의 토스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 말이다.

말이 딴 데로 샜는데 나뿐 아니라 야라나 모건 등 다들 이런 팟캐스트들에 각자 빠져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헐리우드는 이런 코미디의 수도이니만큼, UCB에서 Off Book 공연을 보고 Largo at the Coronet에서 Thomas MiddleditchBen Schwartz의 즉흥 쇼를 보는 것도 간단했다. 브렛은 차가 밀려서 쇼가 다 끝나고야 도착했다. 엘에이 아닌가.









나는 나성에 갔다.

작년에 상해 여행을 떠나려고 김포공항에 가서야 중국 비자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본인은 이번에는 LA–NY 여행을 떠나려고 김포공항에 가서야 무비자 입국을 위한 ESTA 신청을 안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공항 벤치에 앉아 그 자리에서 모바일로 신청하니 1시간 내로 승인이 났다. (72시간까지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나란 사람 너무 재밌고 시트콤 얼른 제작돼야 한다.

LA에는 북미에서 나와 가장 애틋한 친구 야라가 그의 연인 브렛과 함께 산다. 부쉬윅에서 나와 한 집을 썼던 야라. 내가 서울로 떠날 때쯤 LA로 떠났다. 내 학교 친구들 중에는 영화인들이 많다 보니 LA에 이들 둘 뿐 아니라 이들보다 더 일찍 이사간 케일라도 있다. 게다가 내가 오는 때에 맞춰 샌프란시스코에서 모건도 놀러와주었다. 50cm는 되는 식전빵을 그보다 더 긴 도마에 올려주는 비스트로에서 만나자 그린포인트에 있던 케일라네 집에서 저질 와인을 마시고 다같이 속썪었던 4년 전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상단 사진의 벽난로에 보시면 왼쪽 액자의 45도 얼짱 각도 강아지분이 올해 초 세상을 떠난 고 찰리 강아지분이 되겠다. 야라가 그윽한 표정으로 찰리를 안고 있는 모습을 성모의 형상으로 그린 그림도 있는데, 그건 벽난로보다 화장실에서 똥 누고 나올 때 바로 볼 수 있게끔 화장실 문앞에 걸려 있다.

남의 집에서 신세지는 걸 다들 나만큼 어려워하는지는 모르지만 난 정말 내가 어떤 꼴을 보여도 창피함이 우정을 이기지 못하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잘 못한다. 야라와 브렛은 그런 가까운 사람들이다. 나는 휴가였지만 야라와 브렛에게는 일하는 평일이었고 모건은 원격 근무중이었기 때문에 해가 떠 있는 동안 나는 LA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해 떨어지면 만나서 맛집을 찾아가고, 코미디 쇼를 보고, 술 한 잔 하고, 춤 추러 가는 식으로 지냈다. 근사한 시간이었다.

나는 아직 얻지 못한 답이 있다.

Ezra Klein이 힐러리 클린턴의 What Happened를 읽고 쓴 글을 읽었다. 클린턴이 2016년 대선 전에 미국의 천연자원 산업을 바탕으로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지만 아무리 계산을 해 봐도 그것을 제공할 재원이 현실적으로 마련되지 않아 공약하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클라인은 이것이 클린턴의 이런 점, 즉 체제 속에서 변화를 추구하며 인기를 잃을지언정 비현실적인 약속을 남발하지 않는 점이야말라고 그의 최고 가치라고 썼다. 좌우 양쪽의 파퓰리즘 기류에 편승하지 못해 졌다고 쓰인 것을 굴복하지 않았다고 읽으며 책임감이 구시대적 가치로 여겨지는 세태를 개탄하는, 요즘 흔히 들을 수 있는 목소리다. 그리고 나도 가장 쉽게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떡일 수 있는 평범하고 리버럴한 의견인 것이다.

정치 얘기는 여기까지다. 난 요즘 내가 어떤 사람이고 리더인지, 내가 아는 리더들이 어떤 리더인지에 관한 생각으로 얼른 사고의 도메인을 변경케 된다. 왜냐면 나는 지난 두 주 가량 동안 비전과 전략을 제시한다는 새로운 일 앞에 내가 하릴없이 쪼그라들고 내 스스로의 역량을 의심하는 나날을 보내고 나오는 참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략이 주어지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을 잘하고, 전략이 없을 때 나만의 기준들에 맞게 양상을 변화시키는 그런 (딱히 기업가적이라 할 수 없는) 일은 더 잘 한다. 다만 나뿐 아니라 나를 따르는 팀과 내가 따르는 스테이크홀더가 이해하고 납득하고 신뢰할 수 있는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물론 좋은 비전과 전략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그에 관한 잡학은 해 왔기 때문에 아는 것은 많다보니,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행격차를 극심히 겪게 되었던 것이다.

다행히 동료들은 이런 나를 기다려주었다. 때로는 인내로 때로는 갈등으로 그들은 이렇게 갑자기 있었던 리더십이 마비된 듯한 내 모습을 낯설어했다. 컨설팅을 했던 친구는 내게 무엇을 할 지 제시하는 일이야말로 제일 쉽고 별 거 아닌 일이라고 해 주었다. 나 역시 시간을 통해, 내가 가자고 제안하는 길과 그 길 끝에 있을 훌륭한 그림을 그려내고 사람들의 목표점을 일치시키는 일과 내 공약이 나를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 것 같은 두려움에 떠는 일을 간신히 분리해낼 수 있었다.

그 일을 마무리하며 (물론 아직 몇 고비가 남았다) 생각컨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는 태도만큼 이 단계에서 걸리적거리는 일도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되었다. 엉성한 습관들로 빚어진 조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희망이나 두려움 같은 화력있는 감정이다. 그런 생명력을 불어넣지 못하는 자는 정치공학의 틈새에서 당선될지언정 사람들을 한쪽 방향으로 의도를 갖고 움직일 수 없다. 사람들은 대체로 약속의 현실성을 검증하고 싶어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에 엄지 척을 해 줄 사람들을 원한다. 만약 책임있는 리더가 자신의 현실 감각을 활용해 체제 속에서 변화를 일으켜 적당한 진보를 이뤄낼 생각이라고 할 때, 그 실행력을 더 얻기 위해서 허풍을 치고 기꺼이 허풍쟁이가 되는 것, 그것은 되레 실용주의적인가? 아직 얻지 못한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