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2016년 말 트위터 타임라인 분위기를 요즘 전국 공중파 버전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과연 2018년은 한국의 소위 ‘주류’ 정치·사회·문화가 젠더라는 현실의 축을 더는 외면하지 못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건 사실 예측이라기보다는 염원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금방 그렇게 되었고, 그것은 몹시 충격적·압축적인 (혹은 ‘한국적인’) 길로 가고 있다.

2016년에 내가 잘 아는 사람들 중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왔을 때, 나는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보탬이 될 지는 거의 확신히 없는 채로 피해자를 지지하고 가해자를 지목해 절연하는 행동을 했다. 내가 사실 해당 분야에서 거의 발언권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게 내 스스로 비교적 옳은 일을 한다는 정당화 말고는 별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가슴을 쓸어내렸던 것은 내가 그런 말과 행동을 했을 때 실제로 누군가에게 즉각적인 도움이 되어서가 아니고, (다행히 아주 약간의 도움은 되었던 것 같지만) 내가 가해자와 잘 아는 사이일 것이라는 짐작, 또 내가 이런 문제에 대해 행동할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 때문에 나에게 자신의 피해를 말 못했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점을 서서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평생 자신한테 커밍아웃한 성소수자가 없다면 아마도 자신이 커밍아웃할만한 사람이 아닌지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처럼, 그 누구의 #me_too도 모르고 살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주변이 괜찮은 주변이어서가 아니고, 내가 그런 사례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으로 살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특권은 삶을 편하게 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하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된다.

나는 용산구민이 되었다.

오늘부로 서울시민하고도 용산구민이 되었다. 올림픽이 열리던 해 서울에서 태어나 다른 곳에서 삼십년을 살고 다시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다시 서울에 살게 되었다.

올 초 발행한 2017 인생 자평의 가장 큰 결론이 직장에서 가까운 나 혼자의 방을 갖는다였다. 식습관, 운동습관, 여행, 인간관계 등 여러 차원에서 보아 다시 자취할 때임을 다각도로 깨닫게 되자 몸은 빠르게 움직였다. 윌로비 주인장 J와 최근 미 서부 생활을 접고 뉴욕으로 돌아온 Jenny가 조언을 주고 등도 적당히 떠밀어줬다. 무가식은 내 계획의 어떤 부분들이 경제적으로 미친 짓인지 일침을 놓아 주었다. (큰 도움이 되었으나 계획은 오히려 더 그가 경고한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친구들의 자극으로 불과 며칠만에 탐색부터 계약까지 썰매경기처럼 질주해 냈다.

동네는 직장이 있는 을지로와 평촌의 본가를 오가던 기존의 동선상에 있는 곳 중에 골랐는데 진작부터 거기가 신용산이나 삼각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기 때문에 막연한 고민은 아니었다. 침대를 조립하다가 아무래도 옛날처럼 전동공구 없이 하는 건 30대 김괜저로서 섭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 일단 손놓고 창가에 붙인 매트리스 위에서 폰으로 이 글 쓰고 잠 청한다. 봄이 온다.

나는 복잡한 것을 이해하는 길이 단순한 것들의 합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아님을 알아가고 있다.

올해의 출발은 확실히 작년과는 다르다. 작년은 얻어맞은 듯 얼떨떨해져서 출발했고 그렇지 않은 척하는 말과 행동이 앞서기도 했었다. 올해는 시작다운 시작의 기운이 있다. 스텝이 엉킬지언정 가려는 방향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평창이 ‘평창’이 되기 이 주 전 주말을 이용해 가족들과 강원도에 다녀왔다. 금요일에 부산 당일치기 출장을 하고 새벽에 돌아와 다음날 아침에 수원에 들러 삼겹살 구워 밥 먹고 곧장 속초로 향하는 강행군이었다. 울산바위 앞 익숙한 숙소에서 시장 닭강정 먹고 스크린 골프를 치며 놀았다. 여서일곱 종류 물고기를 다양하게 구워서 먹는 해변의 구이집에서 점심. 곤드레나물 밥에 육고기 굽는 저녁. 우리 가족은 먹어본 적 없는 걸 찾아다니거나 식당을 맛집이라 부르는 일은 한사코 없지만 적당히 친숙하니 맛있는 것이 있는 곳이면 다 제쳐두고 찾아가는 편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한 직장에서 삼 년째를 맞아본다. 난 분명 많이 성숙해지고 성장했는데 회사가 크는 속도와 내야 하는 속력은 그를 훨씬 능가한다. 그렇다는 사실을 동료들의 도움으로 진단하고 받아들이고 대책을 세우거나 세워진 대책에 따르는 일에 묘한 쾌감이 있다. 그리고 잘 이끌려면 잘 따르는 게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자주 느낀다. 우리 대표는 대단한 사업가고 그가 마크해준다는 점이 나에게 굉장한 힘이 된다.

A Crude Look at the Whole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작은 요소들을 지배하는 원리를 알면 그것이 모여 만든 복잡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원주의를 벗어나, 복잡한 것들은 복잡한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거칠고 일반적인 탐구의 방식이 따로 있다는 말을 한다. 조직과 조직이 만드는 서비스, 서비스가 만드는 커뮤니티의 일상을 돌보는 역할을 하면 할수록 무수한 작은 것들을 아는데 왜 아무리 합치고 조립하고 통계를 돌리고 냅킨에 그림을 그려도 큰 이치가 딱 하고 나오지 않는지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이 던져주는, 복잡한 것들을 이해하고자 할 때 쓰는 일반적인 도구들은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직 다 안 읽음) 비단 일 차원의 탐구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현실을 관찰할 때 해상도를 불문하고 단 하나의 이념만을 사용해 단정짓는 실책으로부터도 나를 보호해 줄 지식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나는 또 따로 있는 것 같다.

중요한 소식부터! 2017 인생 자평의 가장 직접적인 결론은 하루 2시간 걸리는 통근을 줄이자였는데, 그것을 줄일 수 있는 결정을 즉각 내렸다. 다음달에 이사간다.

집 계약을 한 당일 심지어 머리를 자르고 안경을 바꿨다. 이렇게 평소에는 생각만 하던 일들을 두세 개씩 해치우는 그런 날들이 또 따로 있는 것 같다. 머리는 가르마를 탈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짧게 치고 싶었고 안경은 반투명한 겨자색 뿔테를 갖고 싶었다. 집에 가는 길에 쉽게 들를 수 있는 남대문 단골 안경집에는 그런 테가 없었기 때문에 합정에 작년에 생긴 언커먼 아이웨어에 들러 딱 마음에 드는 것을 사서 그 자리에서 맞춰 나왔다. 언커먼 아이웨어는 모든 모델에 도수 있는 견본들을 또 따로 갖추고 있어 나처럼 저시력 상태에서 시착한 거울 속 내 모습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크게 배려한 것이 좋았다. 요즘 생애 처음으로 선글라스를 살까 하는데 그것도 여기서 할까 싶다.


추운 날이 좀 지나가서 정말이지 오랜만에 약속과 약속 사이 빈 시간에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녔다. 얼음이 뜬 강가에 앉아서 오리를 보면서 옛날 음악을 들었다. 이상하게 나의 20대에 관해 곰곰히 생각하면 30대 초반에는 그 때보다 더 어린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똑바로 먹는 나이가 있고 거꾸로 먹는 나이가 또 따로 있는 것 같다.



2017 인생 자평

12월 32일을 맞아 지난 한 해를 돌아보겠다. 블로깅 초창기에 했던 것처럼 몇 가지 주제를 정해 한 해를 주제별로 돌아보는 작업인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블로그에 공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 스스로를 위한 가감없는 〈2017 인생 자평〉을 먼저 길게 쓰고 나서, 축약과 검열 그리고 번역을 통해 아래와 같은 형태로 가공하는 과정을 거쳤다. 내가 사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남기는 기록과 공개하는 기록 사이의 관계를 조금 더 분명하게 하고 싶은 뜻이다.

0. 총평

2017년은 내가 스스로에 대해 크게 배우고 인생과 세상에 대해 여러 모로 변화된 시각을 갖게 된 한 해였다. 2016년 후반이 나를 둘러싼 크고 작은 현실들을 지탱하던 원리들이 크게 흔들리는 사건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내리게 되었던 결정들의 결과를 살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따라서 연초부터 미래에 대한 강력하지만 동시에 흐릿한 불안감과 함께였는데, 가을과 겨울 동안 그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앞을 똑바로 보기 위한 단서들이 내 밖이 아니라 안에 있지 않았는가 하는 깨달음이 몇 번의 파도처럼 오고 갔다.

2017년의 결과로 나는 조금 더 겸손하고 솔직해졌다.


1. 건강

하루 7시간 이상 규칙적으로 잤다. 일주일에 한 번 체육관에 가는 것이 목표였지만 평균적으로 한 주 걸러 갔다. 대신 처음으로 체육관에 가면 하는 ‘내 운동’이라는 개념이 흐릿하게 생기기 시작했다. 체중은 작년에 비해 3kg 늘었다. 연중에 약 3달 가량 식단을 기록하는 앱을 사용했다. 술은 한 달에 2~3번 정도로 가볍게 마셨고 커피는 하루 2~3잔 꾸준히 마셨다. 질병이나 부상은 거의 없었지만 연초와 연말에 한 번씩 가벼운 감기를 앓았다. 연말에 처음으로 직장을 통한 건강검진을 받았다.

스트레스를 관리함에 있어 분출하는 것의 중요성을 똑똑히 깨닫게 된 해였다. 전에는 타인에게 내는 ‘화’라는 카테고리가 없다시피해 늘상 다른 방식으로 처리했는데 이것이 장기적으로 독이 된다고 느껴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운동, 식습관, 자세, 정신적·성적 건강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때 새해에 가장 먼저 바꾸고 싶은 것은 하루 2시간 이상의 통근시간이다.


2. 사람들과의 연

2016년에 이어 온가족이 함께 살면서 아무런 탈 없이 화목했으니 대단한 운이다. 보드게임에 푹 빠져서 주말마다 모두 모여 두 판씩 한다. 단순히 잘 지내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가족 세 명 모두와의 관계가 더 깊어졌다.

새로운 친구를 많이 사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던 해였으나 몇몇 사람들과 예기치 못한 깊은 우정을 새롭게 나누게 되어 기쁘다. 일로 연결되었다가 친해진 친구도 있고, 친구의 친구와 불과 두세 번 같이 만나고 즉각 절친해진 적도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와 늘 그렇듯이 함께 상해 여행을 했던 것도 좋았고, 가을에 LA와 뉴욕에서 미국에 두고 온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속 깊은 얘기들을 꺼냈던 것도 좋았고, 그 중 서울을 찾은 친구들과 한 해의 끝을 함께할 수 있어서도 좋았다. 결혼한 친구들이 확 늘었는데 부부 중 한 명이 아니라 둘 다 내 친구인 경우가 그 중 꽤 있으니 다행이다.

연애의 경우 짤막하고 가벼운 만남들만 있었다 없었다 하던 한 해였다. 특히 연말 막판에 급속하게 가까워진 사람과는 한 달 정도 만난 뒤 일단락되었는데,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이어진 인연이어서인지 짧고 큰 일 없는 한 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느낀 점이 많았다. 2018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감정적 계기판을 막판에 점검하게 되었다.

작년 초부터 함께 해 온 직장 동료들, 특히 나보다 더 오래 일해온 동료들과의 신뢰가 수십 번의 시험과 단련을 통해 깊어졌다. 단순히 함께 일하는 시간과 강도로 인해 신뢰가 차곡차곡 쌓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신뢰를 주고 받는 법을 깨우친 것에 가깝다. 자주 싸우고, 화해하고, 돌아보고, 배웠다. 서로 싸우기를 두려워하는 상태가 얼마나 신뢰 부족의 상태인지 다들 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특히 이 과정을 통해 리더십이나 팀워크 같은 개념들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생각들을 갖게 되었다.


3. 배움

데이터시각화 석사 프로그램에는 가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이미 잘 한 결정이었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직장에서의 직무가 기술적인 일들에서 사람을 다루는 일로 많이 옮겨왔기 때문에 2016년과는 상당히 다른 지식을 익혔다. 여름에는 경영 결정의 일부를 돕는 역할을 처음으로 하려다 보니 재무 관련된 기초 지식을 습득해야 하기도 했는데 내가 이에 관해 얼마나 모르는지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아직도 재무 기초를 익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략적 결정에 소요되는 계획과 예측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생긴 것 같다. 연말에는 고객개발 파트로 또 한 번 중심을 옮겼는데, 영업이나 마케팅을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사람 관계,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따위의 느슨한 ‘센스’들의 집합으로 헤쳐나가던 내 원시적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그 뒤의 작동방식들과 원칙들을 습득하고자 노력했다. 이 모든 것이 2016년에 이미 알았더라면 많은 실수들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소중한 지식이다. 이를 계기로 경영대학원이라는 예전에는 끔찍하게 여겨지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나 싶어지기도 한다.

진지하고 치열한 관계들을 통해 2017년에 배운 가장 큰 교훈이라면 「똑똑해 보이는 사람 되기」를 경계하고, 상황을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려는 충동을 솔직하고 진실된 표현과 공감이 될 때까지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조급한 사람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루에도 네다섯 번씩 해야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은 시인하자. 내 단점을 나보다 남이 더 잘 본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해하지 말자.


4. 공적 자아

서울에서 독립적으로 또 자생적으로 재미있는 일을 꾸려나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망이 작년에 비해 넓고 깊어졌다. 예전에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사람들, 또 텀블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로만 아는 채 특정한 공간들에서 스치다 마침내 만난 사람들 등 경로는 다양하다. 이로 인해 서울이라는 거대도시 내 ‘재밌는 서울’ 이라는 주관적이지만 많은 이들과 공유되는 영역의 윤곽이 조금 더 뚜렷해 보이게 되었다. 2016년까지는 아무래도 이 서울에 대한 나의 포지션은 관찰자에 가까웠고 특정 프로젝트들에 참여한 것 또는 특정인과 연결된 점에 의해 대강 사람들의 머릿속 이곳 저곳에 놓여지는 입장이었으나, 201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나의 이런 저런 참여와 활동으로 말미암아 이름이 이해되는 입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세대’라는 불명확한 것과의 관계도 진일보했다. 아무래도 ‘윗 세대’라는 (마찬가지로 불명확한) 것이 자주 호명되고 그것과의 대척점이 요구되다보니 그렇다. 내가 가장 동시대성을 느끼는 서울 사람들은 80년대 중·후반생 중산층 또는 지식노동자 계층인데 이러한 동시대성을 더 강렬하게 곱씹어볼 수 있었던 기회가 연말에 있었으니 내가 인터뷰이로 참여했던 안은별 기자님의 책 〈IMF 키즈의 생애〉가 출간된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맥락 말고도, 하는 일을 통해 형성된 페르소나로도 새로운 계통들과 많이 연결되었던 해였다.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디자인 언저리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애매한 정체성을 수용하는 데에는 〈비핸스 포트폴리오 리뷰〉에서 발표하고 얼마 뒤  팟캐스트 〈디자인 테이블〉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 〈RE:Work 컨퍼런스〉등 나가서 텀블벅 얘기와 김괜저 얘기를 반반 섞어서 발표하는 계기가 몇 차례 더 생겼고 이를 통해 테크 섹터 디자이너들이나 소셜임팩트 쪽 사람들과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연말에 신뢰하는 이들과 함께〈프리랜서 네트워크〉라는 비영리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겹이 하나 더 생기게 되었다.


5. 생산

텀블벅에서의 두 번째 해는 1년차 이상으로 폭풍같은 배움의 연속이었다. 조직을 적당히 관리하는 것과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것이 얼마나 다르던지. 다행히 사업은 이런 우리의 노력을 알아주는 것 같다. 물론 한 뼘을 성장하면 새롭게 풀어야 할 문제가 한 꾸러미씩 던져지고, 이런 문제 꾸러미를 풀어야 할 사람이 나를 비롯한 단 몇 명의 동료들이라는 점이 무섭기는 하지만. 도전하면 늘 보답이 따른다는 경험치 덕분에 계속 간다.

텀블벅에 모든 역량을 쏟으면서 2016년까지는 간간히 해 오던 사이드 프로젝트들도 연중에 거의 다 끊었었다. 연초에 나온 〈뒤로〉 2호에 데이터시각화를 보탰고, 〈GQ〉 2월호에는 서울의 택시에 대한 글을 하나 쓴 정도다. 확실히 글쓰는 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블로그에 쓴 글도 불과 28개 뿐이다. 사진 역시 D750으로는 여행할 때를 제외하곤 별로 찍지 않았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일상의 말과 이미지가 ‘각 잡고’ 만드는 것들을 점점 대체한다. 그러나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나 사진은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과는 달리 즉각적인 피드백 엔돌핀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닌 만큼 꼭 꾸준히 습관을 유지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6. 문화

2016년만큼은 아니지만 괜찮은 여행을 몇 번 갔다. 봄에는 천안–군산을, 여름에는 상해를, 가을에는 삿포로와 LA–뉴욕을 다녀왔다. 특히 뉴욕 방문은 지난해부터 계획되었던 것으로 일종의 시즌 피날레 역할을 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기획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살면서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중 어느 정도가 ‘뉴욕 금단현상’인지 제대로 가려내어야 앞을 계획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과 재회하고 충분한 시간 동안 도시에 다시 푹 빠졌다 나오고 보니, 20대 초반에 뉴욕을 떠나면 일단 불안하던 시절과 지금이 얼마나 다른 상황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즉, 나는 이제 더 이상 뉴욕에 ‘당장 가야 하기 때문’에 초조하지는 않다. 그러나 언젠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한 계획을 오래 미뤄둘 수는 없다.

영화는 2017 영화 본 거에 따로 정리했다.

텔레비전은 VeepBojack Horseman 정도만 꾸준히 보고 있다. 이 두 쇼의 공통점은 비대한 자아를 가진 시끄러운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는 것인데 아무래도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에 이입하는 내 심리가 관련이 있지 않은가 싶다.

공연은 가족들과 뮤지컬 두 편을 본 것과 LA에서 스케치 코미디 쇼를 두 편 본 것 외에는 없었다.

활자에 파묻혀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형태로는 거의 일과 관련된 논픽션만 읽으며 살았던 한 해가 아닌가 싶다. 2018년에는 문학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7. 살림

기본적인 개인 재무를 위한 세팅을 2017 연말에 이르러서야 겨우 만들었다. 이제 최소한 반 년 정도의 주기로는 돈이 들어오고 나가고 쌓이는 과정에 대한 계획과 실행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실제로 해 보아야 알 것 같다.
돈이 모인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유학 살림 모드에서 전환하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귀국 후 2년간의 본가 생활은 안락하고 걱정없는 좋은 시간이었지만 아무래도 일상에 대한 주도력 반경이 방 단위로 한정되고 도시로부터 멀다 보니 삶에 대한 태도 또한 정체되는 듯한 기분이 최근 자주 들어서 나올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내 손으로 내가 사는 공간과 그곳의 동작 원리를 구축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늘 분명했으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핑계로 행동에 옮기지 않았었던 2017년이었는데, 이제는 ‘불확실하니 행동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불확실하니 행동한다’로 기본 모드를 전환할 때가 된 것이다.

되던 게 안 되는 건

되던 게 안 되는 기분을 느껴보세요.
물 속에서 뜀박질을 하는 기분
나로 가득찬 달력이
나와 무관하게 천천히 넘어가는 기분을.
지난달 나를 안다고 말했던 나에게
분필이라도 집어 던지고 빨개진
얼굴을 셀카로 찍어 남겨요.
나는 왜 해마다 나를 안다며
눈 감고 아무데로나 뛰쳐나갈까요.
나는 왜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위기의
순간에
모든
버튼을
팔꿈치로 다 누르고 다
벗어버리고 뛰어내리려 들까요.
나란 놈을 내가 중성화시키고
목줄을 매고 배변을 가르쳤는데
이제는 나를 정면으로 보고 목을 갸우뚱
나에 의한 나의 독재에 금을 냅니다.
자존심이 삭아서
장맛이 납니다.

나는 요리보고 조리본다.

좋아하는 유명 요리 유투브 채널 몇 개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퇴근길과 자기 전 몇 분을 함께하는 분들이다. 복잡한 생각을 지우기에 잘 만든 요리 비디오만한 게 없다.

먼저 ChefSteps는 시애틀에 기반한 기술/요리 기업인데, 실험만을 위해 만들어진 완벽한 주방에서 격식없이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가며 매 주제를 보여주는 태도가 워낙 매력적이어서 몇 년 전부터 생각날 때마다 들어가서 본다. 요리법 콘텐츠 제공으로 시작해 지금은 자체 수비드 기계와 앱을 파는 테크기업이 됐다. 와플아이언에 다 때려넣고 구워버리는 영상을 보자.

다음은 꾸준의 또다른 이름, Martha Stewart 채널의 Kitchen Conundrum 되시겠다. 요리도 하고 베이킹도 하지만 약간 베이킹에 더 강한 Thomas Joseph가 매회 하나의 고민거리를 골라 세상 친절하게 해결해준다. 보고 있으면 그냥 마음이 편해진다. 그야말로 정석만 하고 장난치지 않는데 그렇다고 너무 진지해서 재미없지 않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교육용 영상. 언제나 아주 조금은 영혼이 없고 사무적으로 느껴져서 오히려 더 정이 간다.

마지막으로 말이 필요없는 Nigella Lawson인데, 너무 유명한 분을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작인 BBC At My Table의 프로덕션 퀄리티가 정말 미친 것 같기 때문이다. 말 한 마디, 카메라에 던지는 시선 하나까지 모두 각본 그대로임이 느껴지는 철저한 쇼인데, 왼손이 보이면 오른손이 배경으로 녹아 사라져버릴 정도로 낮은 심도의 카메라로 찍은 영상과 폴리로 입혔다고 해도 믿을 만큼 생생한 음향이, 보다보면 약간 정신이 나가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나는 누군가의 독촉으로 새 글을 쓴다.

블로그에 글을 잘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은 사실 글 세상에서 중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서다. 오해를 감수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점점 늘어난다. 그런 상황에서 계속 말하려면 하나, 제정신을 점점 더 자주 차려줘야 하고 둘, 기술이 점점 늘어줘야 하며 셋, 배짱이 점점 더 늘어줘야 한다. 불행하게도 셋 다 계속 말하지 않으면 반대 방향으로 가 버린다. 그래서 헛소리라도 지속적으로 해 줘야 한다.

관념적이거나 감상적이지 않고 그냥 일어난 일, 한 생각을 쭉 써놓는, 말하자면 담임선생님한테 혼나는 일기 같은 글쓰기가 그래서 참 중요하다. 오늘 것을 한 번 해 보겠다.

오늘은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났다. 밖이 흐려서 빛이 덜 들어오는 날일수록, 한 주의 후반부일수록 더 잘 발생하는 일이다. 요즘은 꼭 샤워하고 머리를 말린 다음 아침을 먹으려고 한다. 경험상 그 순서가 가장 버리는 시간이 적고 동선도 세련되다. 아침은 통통한 새끼 조기를 구운 것과 육개장이었다.

요즘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주고받는 사람이 하나 생겼다. 봐, 일기 같은 글쓰기를 하려니까 이런 얘기도 나오잖어. 그 사람은 지난 몇 주 동안 토요일에만 만났다.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 서로의 자서전을 두세 번씩 읽은 듯하다. 재미있고 갑작스럽다.

자서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 쓰는 분 중 한 분인 안은별 작가가 나를 인터뷰한 내용이 포함된 신간을 낸다. 내가 인터뷰된 이유는 그 책이 외환위기 때 유년기를 보냈던 한국인 밀레니얼 몇 명의 생애 초반부를 프로파일링하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작년 겨울에 홍대 사무실 유리벽 회의실에 앉아 몇 시간이고 내 얘기를 했는데 내가 나를 알게 되는 그 끝없는 일에 꽤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고마운 경험이다.

연말이기도 하고, 요즘 회사에서 고객개발 쪽으로 내 무게추를 옮겨 놓은 상태이다 보니 한창 사람 만날 일이 많다. 많게는 하루에 행사 한두 개와 미팅 서너 개를 소화할 때도 있다. 나는 늘 사람과 말할 일 많은 일을 주로 해 오긴 했지만, 거기에 요즘처럼 새로 만나는 사람 비중이 높아진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마지막으로 이랬던 것은 뉴브런즈윅 에이전시 재직시 대학 상대로 영업과 아이티 서포트를 뛰면서 동시에 브루클린에서는 NY30NY로 인터뷰를 다녔던 시절인 것 같다.

최근 행사 중 가장 큰 것은 Re:Work라는 컨퍼런스였다. 일의 미래라는 느슨한 주제로 묶인 주말 양일짜리 포럼이었는데 나는 텀블벅 얘기하는 세션 하나에 더해 플랫폼 사업 실무자들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제안하는 발제까지 두 꼭지로 참여하다 보니 여느 행사에 비해 깊게 함께하는 태도로 임했다. 일과 사람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날 소개했는데, 사실이기는 하지만 또 언제 보면 아무 뜻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문장이다.

내게 글을 독촉한 분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다시 실없는 문자를 하러 가야겠다. 오늘의 일기 끝.

나는 일에 의도가 있게 한다.

운좋게 성숙하는 조직에서 일하면서 전에 없었거나 체계 없이 굴러가던 일들의 기틀을 잡는 일을 번번히 맡게 되는데 할 때마다 어렵지만 즐겁다. 일을 ‘생각하며’ 할 수 있는 여유 확보, 일을 ‘하나씩’ 할 수 있는 순위 설정, 일을 ‘각 잡고’ 할 수 있는 규율 부여 같은 것에 중점을 두고 일을 다시 본다. 그리고 내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나 ‘자격’이 부여되어 있는지보다 내가 일을 어떤 목적과 방법으로 전진시키는지 그 현실적인 효과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얼마나 잘 돌아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나 스스로에게 되물을 때 쓰는 기준으로 똑같이 외부와도 투명하게 소통한다. 어려운 일이다.

천적과 한강진 샐러드집에서 주말 점심을 괜히 한 끼 같이 먹으면서 사람들 대부분이 서로와 함께 일을 벌이며 생활하는 면면이 얼마나 단순 물리적, 생리적인 원칙들에 의해 지배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강형욱씨가 동물을 다룰 때에 얼마나 의도를 정확히 상대에게 전달하고 그 효과를 확인하는 단순한 원리를 중시하는지. 사람끼리의 사회적 관계들이라는 것도 얼마나 우리가 젠체하는 겉모습에 비해 단순한 힘과 선형성에 의해 진행되는지. 단순한 원리들을 깨닫고 그를 실제 관계에 실천하는 사람들이란 얼마나 성숙하고 귀한지.

동물뿐 아니라 기계와 인간을 비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인간이 기계다울 수 있을까 기계가 인간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의문’의 형태로 오랫동안 끌고 가면서 재밌어하는 사람들은 재미 없는 사람들이다. 재미있는 사람들은 기계답기로 마음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의도를 가진 행동의 비율(의도가 없는 행동과의)을 높이고 정확한 인풋과 아웃풋 프로토콜을 갖추는 일. 혼돈을 도입할 때 역시 혼돈을 정확한 의도로 정확한 양 만큼 자로 잰듯 도입하는 일. 정시에 예측을 출력하고 한 사이클 뒤 예측과 실측을 비교해 다음 사이클에 반영하는 일. 그런 사람은 좋은 기계일까? 아니, 좋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