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예비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책이

여기에 예비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책이 한 권 보인다. 제목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영혼보다 soul이라는 단어가 싫다) 이 책은 내가 알아 두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너무 원론적이거나 이상적(미학에 참견하거나 도덕을 들먹이는)이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자세하고 단편적인, 기술과 경제와 실무를 재빨리 다룬 정보서 수준의 책들과는 다른 격을 유지하고 있다.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의 저자인 아드리안 쇼네시가 격려하면서도 동시에 걱정하고 있는 그런 신출내기 디자인 학생에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디자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을 하기 시작한 지 1000일이 채 안 되고 관련한 교육을 받아 본 적은 전무하지만 그동안 대기업체나 각종 기관과 같은 까탈스러운 클라이언트들 못지 않게 ambitious한 사람들의 프로젝트를 위해서 작업한 경험은 꽤 있다. 아마도 내 나이에 밤을 새면서 실제 출판, 광고, 그래픽 업계의 실무에 버금가는 까다롭고 대책없는 일들을 해 본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이제 디자인을 내 앞으로의 길의 큰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는 만큼 (그건 조금 더 일찍 확실히 해 두었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동아리 로고나 책 표지, 포스터 같은 것을 그냥 디자인해 달라는 부탁에서는 좀 멀어지려고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시점에서도 진행되는 그런 아마추어 작업이 두 개 있지만 적어도 좀 규모가 있고, 내 포트폴리오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것 같은 작업이다. 하지만 1~2년 전에는 상황이 달랐다. 동아리를 만들거나 출판물을 기획하거나, 뭔가 좋아보이는 팜플렛과 포스터와 로고가 필요한 주위의 사람들은 대부분 나한테 왔다. 그리고 내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곤란하다는 말을 꺼내면 꼭 이렇게 말한다: 완벽하게 안 해도 됩니다.

그건 마치 3,000원짜리 케익을 시키면서 맛없게 만들어도 되니까 500원에 주세요 하는것과 똑같은 것이잖아. 디자이너뿐 아니라 뭐든지 자기가 창조하는 것이 자신의 일부가 되는 성격의 사람에게 그런 부탁은 정말 맥이 풀리게 하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랑 예를 들어 식당 끝에 앉아서 이 사람의 동아리, 사업, 학생 선거전략 따위를 듣고 있으면 나는 이런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생각해도 되는, 대충 해 줘싶은 일이면 그냥 본인이 직접 하든지 하지 왜 누구한테 부탁하는 것일까.’ 나는 아직 예술 측면에서 완전 보잘것이 캐 없지만 만약 내가 만든 책 표지가 다른 친구가 만든 표지보다 보기 좋다면 그건 내가 그 표지에 더 많은 생각과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내가 ‘감각이 있어서’라는 말은 설명이 되지 못한다. 감각이 있어 보이는 디자인이 그저 나오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느낀 것은, 나를 몰라보게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그 동안 퍽이나 힘들게 했던 이런 내가 보기에 몰지각했던 주위의 생각들, 그런 외부적 요소로 인한 디자이너의 마음고생은 초짜든 유명하든, 한국이든 네덜란드든, 스튜디오이든 인하우스 디자인팀이든 항상 있다는 것이다. 현실과 어디서 만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먼저 깨우쳐 준다.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성공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 즉 창작이라는 undoubtedly spiritual activity에 대한 스스로의 신념과 디자인에 대한 원칙을 가지고 현실적인 많은 문제들에 대한 준비된 자세를 갖는 것이라는 점을 말해 준다. 그 점에서 이 책은 꽤 자세해진다. 회계나 법률 같은 분야들은 어떻게 매니지할 것인가, 클라이언트가 뭐라고 하면 대드는 게 좋을까 닥치고 디자인을 망치더라도 이 글씨는 크게 더 빨갛게, 저쪽 페이지는 유명한 저 홈페이지랑 똑같게 시키는 대로 만드는 것이 좋을까 하는 질문들에 대해 확답은 아니더라도 많은 고민의 결과들을 보여 준다.

정말이지 귀중한 메시지가 많았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다소 arbitrary하게 선정된 느낌이 있었지만 내용에서는 항상 얻을 점이 있었다. 괜찮은 책이었다.

  1. 금숲

    ;ㅅ; 500원 받고 3000원짜리 만들어 준 경험 많은 사람 여기도 있소

    나도 Soul보단 Spirit.

  2. 마멍

    난 무료로 음악을 만들어 하하

  3. 역시나그렇게

    금숲님 : 좋게 거절하는 것은 참 피곤해요

    마멍 : 하지만 여덟아홉번 베이스 라인을 수정해달라거나 하는 김에 인트로 한 곡만 더 써달라거나 하는 일은 없잖아

  4. 머슈룸걸

    “그건 마치 3,000원짜리 케익을 시키면서 맛없게 만들어도 되니까 500원에 주세요 하는것과 똑같은 것이잖아”

    – sorry

  5. 역시나그렇게

    머슈룸걸 : 에이 if you’re the mushroomgirl i think you are, you were a very respectable cli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