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산에 갈 사정이 있었다.

백석역 터미널 건너편에는 ‘4050을 위한 새로운 놀이터’가 곧 개장한다는 대형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4050이라면 실제로는 50이 대세인 놀이터일 것으로, 또 일산 신도시 분양 초기에 입주했던 세대가 딱 그 나이대일 것으로 짐작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일산에 가끔 가게 되는 이유도 그 연령대인 우리 삼촌네 집이 있어서다. 신도시에 중장년 놀이터(뭔지 다 알 수는 없으나)가 있는 모습이 생경했다. 평소 일산은 내가 자란 평촌의 거울상일 것으로 익숙해할 준비를 하고 가는 곳인데 이런 건 다르구나. 하긴, (판교나 강남 출근이 수월한 평촌과는 달리) 일산의 내 또래들은 아마 집을 더 일찍, 더 많이 나설 것 같다. 부모 세대 비율이 일산이 더 높은 것일까. 뭐 지금 자세히 알아볼 일까지는 아니다.

그것 말고는 대체로 익숙한 요소들이 이루고 있는 일산 백석역 부근에 갈 일이 있었다. 편찮아 쇠약해진 모습을 몇 주 전에 보았지만 이렇게 빨리 가실 줄 몰랐던 할머니. 밤새 결정될 것들이 결정되고 나서 아침에 곧장 갔는데 왜인지 빈소를 옮기느라고 다같이 몇 시간 기다려야 했다. 병원은 무척 한산했다. 지하 식당에서 먹는데 너무 더운 스웨터 때문에 목이 까끌까끌했다. 흑색 정장 공백 상태를 얼른 탈출해야 한다.

나는 조문을 못한 채로 잠깐 밖에 나와야 했다. 쓰고 있는 글을 위해 어렵게 잡아 놓은 전화 인터뷰가 있었다. 녹취를 하면서 컴퓨터도 쓰려면 조용한 곳이 꼭 필요한데. 카페 한 곳을 갔지만 인근 교회 퇴소 시간이라 내 침 삼키는 소리도 안 들렸다. 별 수 없이 모텔을 대실했다. 밖은 시끄럽고 지나치게 밝은데 모텔 안은 캄캄하고 습했다. 엘리베이터는 아예 버튼밖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창문이 오 센티만 열리는 방에서 충전 케이블들과 의자를 이리 저리 옮기고 나서 전화를 걸었다. 갑자기 아침부터 강아지가 아파서 급히 병원에 와 있어요, 인터뷰 상대도 내게 그 날의 사정을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