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끝나고 앓아누웠다.

우리는 M을 찾고 있었다. 두 번째 트럭 뒤에 있다고 해서 열심히 걸어 여섯 번째 트럭부터 따라잡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호리호리한 실루엣의 M이 세상에서 제일 튀는 까만 시스루 드레스를 입었다고 해서 바로 찾을 줄 알았건만. 우리는 어쨌든 노래와 구호에 맞춰 어깨를 씰룩이며 걸었다. 행진이 종로에서 안국 방향으로 방향을 틀 때쯤, 갑자기 머리가 띵해졌다. 「너 얼굴 안 좋다」 해리가 말했다. 「그럴 줄 았았어. 더위 먹은 것 같은데」 우리는 행진 옆구리로 빠져나왔다. 더워도 너무 덥기는 했다. 편의점에 들어갔다. 내 앞에는 구릿빛 상체에 멜빵만 걸친 남자가 물휴지를 사고 있었다. 나는 포카리 스웨트를 샀다. 밖은 너무 덥고 편의점 안은 너무 더웠다. 「아무래도 난 집에 가야겠어」

이틀 전에는 엄마가 카톡으로 주말 계획을 물었다. 「집에는 못 내려갈 것 같아. 나 홍콩 친구 있잖아, 걔가 오거든. 그리고 토요일엔… 토요일엔 시청 앞 광장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해. 거기 가려고」 엄마는 최근 사회복지에 관한 공부를 하더니 부쩍 ‘성소수자’나 ‘퀴어’ 같은 단어를 듣고 말하는 데 거리낌이 줄어든 것 같다. 아무래도 엄마가 예전까지는 교과서나 공영방송에서 잘 나오지 않는 단어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 같은 것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도 몇 년 전에는 「그런 주장을 너무 하면 곤란한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했지만 요즘에는 뉴스거리가 있으면 먼저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래서 작년에는 퀴어문화축제라는 것이 있어서 갔었다고 다녀온 다음에 밥상에서 슬쩍 얘기했었던 것을, 올해는 미리 말했다.

「엄마도 갈까?」

「오면 눈물나지」

엄마는 나와 해리보다 삼십 분이나 먼저 도착했다. 광장 잔디에 앉아서 댄스 공연을 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집회 때문에 못 갈 게 뻔한 버스를 타려고 허둥대다가 시간을 허비하고, 서울역부터 걷기 시작했다. 너무 더웠다. 엄마 정신없는 곳 잘 못 견디는데 더위 먹는 거 아닌가 싶었다. 남대문에서 시청 쪽으로 걷는데 드디어 사람들이 보였다.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무리였다. 서울에서도 봤고, 대구에서도 봤던 이들이지만 그 수가 지금까지 본 것 중 제일 많았다. 그들만으로도 충분히 어엿한 축제와 행진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가족들, 청년들이 줄지어 그런 팻말들을 들고 걷고 있었다. 엄마와 만나기로 한 8번 출구에 다다르자 나는 영 부글거리는 마음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너무 더워서 지하로 피신했다고 했다.

「엄마! 여기는 해리야. 내가 말한 홍콩 친구. 해리, 우리 엄마야」 나는 엄마가 해리를 만나는 자리를 여러 번 생각해 본 적 있다. 해리가 웃고 말하면 아주머니들이 다 넘어가는 걸 많이 봐 왔다. 엄마는 해리 팔을 꽉 잡더니 갖고 있던 손선풍기를 해리 얼굴에 갖다 댔다.

「너무 더워, 너무 더워. 앉아서 공연 보는데 너무 더워서 죽을 뻔했다. 그 네가 말한 성소수자 부모모임 거기서도 나와서 발표 하더라」

「응. 오는데 온통 저 반대 한다는 사람들밖에 안 보여. 심란하잖아」

「야, 신경 쓰지 마. 저 사람들 다 이게 이런 건가 보다 해서 나온 거잖아. 몰라서 그러는 거. 이게 다 바뀌려고 그러는 거야」

엄마를 지하철 태워 보내고 해리와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배가 고파져서, 김가네에서 콩국수와 스팸 김밥을 한 줄 먹었다. 너무 가까운 옆 테이블에서는 제법 퀴어해 보이는 청소년 셋이서 우리 콩국수를 부러워하며 콩국수의 고소함을 영어로 뭐라고 표현할까를 두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해리는 국물을 마시라고 나에게 사발을 건내주며 얘기했다. 「엄마 보고 울컥한 거지? 너 올해 힘들었잖아. 이제 다 지나간 거야. 이런 게 지나가고 나면 난 꼭 몸이 아프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