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쿠알라 룸푸르에 다녀왔다.

더위가 오기 전에 더위를 찾아서 더 더운 나라로 여행을 가는 것은 내 집안(1인 가구)의 오랜 풍습이다. 2016년에는 홍콩·대만, 2017년에는 상하이였다. 올해는 더 더운 곳을 찾은 끝에 쿠알라 룸푸르로 4박 5일 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이틀의 휴가만을 내고 연휴를 길게 쓰는 일정이었다. 말레이시아 물가 덕이기도 하고 운도 좋아서, 꽤 괜찮은 호텔에서 싼 값에 머무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내가 가 본 해외 여행 중 가장 다른 목적 없이 휴양에만 집중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나는 쉬러 가는 걸 참 못 하는 편이다. 새로운 도시에 가서 밤낮으로 돌아다닌다. 책방과 맛집을 찾아다니고, 도시의 일정 면적이 지도에서 눈에 익을 때까지 구석구석 밟고 온다. 게다가 평소에 해야지 말만 하고 못 하던 일들을 잔뜩 싸갖고 간다. (싸갖고 간다는 말이 이제는 어색하다. 어차피 인터넷만 연결하고 ‘프로젝트’ 폴더만 열면 된다.) 이건 혼자 여행할수록 심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극도로 여유가 부족했던 봄이 끝나니 휴양을 하고 싶어졌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하는 성격에 붙이는 이름이 뭔가 특별하고 예쁜 것이 아니라, 다름아닌 ‘불안’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쿠알라 룸푸르에서 꼭 가 봐야 할 어느 곳도 찾아보지 않았고, 사진기도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호텔 방에서 룸 서비스를 시켜 먹고, George Saunders의 소설을 읽고, 심지어 호텔 옥상에서 일광욕까지 했다. 내가 일광욕을 하다니! 남들 앞에서 벌거벗는 일과 뙤약볕 아래 아무런 생산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니!

  1. 인영

    그래도 비타민D는 생산했네!

    • gwenzhir

      아주 뿌듯해 1년치 생산이야

  2. kim Eunse

    안녕하세요:) 저는 대구에 사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이번에 책을 출판하게 되어서 이제 표지 작업을 마무리 해야 하는 상황에서 표지 이미지를 서칭하던 중 이 블로그를 방문하게 되었는데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왼쪽 밤 풍경 사진을 표지로 하고 싶습니다.! 이때까지 계속 찾고 있어도 원하는 게 나오지 않고 있었는데 책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만약 허락해주신다면 출처도 밝히겠습니다! 메일로 가능여부와 만약 가능하시다면 사진 원본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gwenzhir

      안녕하세요. 네, 표지에 편하게 사용하시고 출처를 밝혀주세요. 어떤 책이 될지 제 메일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