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인생 자평

12월 32일을 맞아 지난 한 해를 돌아보겠다. 블로깅 초창기에 했던 것처럼 몇 가지 주제를 정해 한 해를 주제별로 돌아보는 작업인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블로그에 공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 스스로를 위한 가감없는 〈2017 인생 자평〉을 먼저 길게 쓰고 나서, 축약과 검열 그리고 번역을 통해 아래와 같은 형태로 가공하는 과정을 거쳤다. 내가 사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남기는 기록과 공개하는 기록 사이의 관계를 조금 더 분명하게 하고 싶은 뜻이다.

0. 총평

2017년은 내가 스스로에 대해 크게 배우고 인생과 세상에 대해 여러 모로 변화된 시각을 갖게 된 한 해였다. 2016년 후반이 나를 둘러싼 크고 작은 현실들을 지탱하던 원리들이 크게 흔들리는 사건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내리게 되었던 결정들의 결과를 살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따라서 연초부터 미래에 대한 강력하지만 동시에 흐릿한 불안감과 함께였는데, 가을과 겨울 동안 그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앞을 똑바로 보기 위한 단서들이 내 밖이 아니라 안에 있지 않았는가 하는 깨달음이 몇 번의 파도처럼 오고 갔다.

2017년의 결과로 나는 조금 더 겸손하고 솔직해졌다.


1. 건강

하루 7시간 이상 규칙적으로 잤다. 일주일에 한 번 체육관에 가는 것이 목표였지만 평균적으로 한 주 걸러 갔다. 대신 처음으로 체육관에 가면 하는 ‘내 운동’이라는 개념이 흐릿하게 생기기 시작했다. 체중은 작년에 비해 3kg 늘었다. 연중에 약 3달 가량 식단을 기록하는 앱을 사용했다. 술은 한 달에 2~3번 정도로 가볍게 마셨고 커피는 하루 2~3잔 꾸준히 마셨다. 질병이나 부상은 거의 없었지만 연초와 연말에 한 번씩 가벼운 감기를 앓았다. 연말에 처음으로 직장을 통한 건강검진을 받았다.

스트레스를 관리함에 있어 분출하는 것의 중요성을 똑똑히 깨닫게 된 해였다. 전에는 타인에게 내는 ‘화’라는 카테고리가 없다시피해 늘상 다른 방식으로 처리했는데 이것이 장기적으로 독이 된다고 느껴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운동, 식습관, 자세, 정신적·성적 건강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때 새해에 가장 먼저 바꾸고 싶은 것은 하루 2시간 이상의 통근시간이다.


2. 사람들과의 연

2016년에 이어 온가족이 함께 살면서 아무런 탈 없이 화목했으니 대단한 운이다. 보드게임에 푹 빠져서 주말마다 모두 모여 두 판씩 한다. 단순히 잘 지내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가족 세 명 모두와의 관계가 더 깊어졌다.

새로운 친구를 많이 사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던 해였으나 몇몇 사람들과 예기치 못한 깊은 우정을 새롭게 나누게 되어 기쁘다. 일로 연결되었다가 친해진 친구도 있고, 친구의 친구와 불과 두세 번 같이 만나고 즉각 절친해진 적도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와 늘 그렇듯이 함께 상해 여행을 했던 것도 좋았고, 가을에 LA와 뉴욕에서 미국에 두고 온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속 깊은 얘기들을 꺼냈던 것도 좋았고, 그 중 서울을 찾은 친구들과 한 해의 끝을 함께할 수 있어서도 좋았다. 결혼한 친구들이 확 늘었는데 부부 중 한 명이 아니라 둘 다 내 친구인 경우가 그 중 꽤 있으니 다행이다.

연애의 경우 짤막하고 가벼운 만남들만 있었다 없었다 하던 한 해였다. 특히 연말 막판에 급속하게 가까워진 사람과는 한 달 정도 만난 뒤 일단락되었는데,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이어진 인연이어서인지 짧고 큰 일 없는 한 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느낀 점이 많았다. 2018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감정적 계기판을 막판에 점검하게 되었다.

작년 초부터 함께 해 온 직장 동료들, 특히 나보다 더 오래 일해온 동료들과의 신뢰가 수십 번의 시험과 단련을 통해 깊어졌다. 단순히 함께 일하는 시간과 강도로 인해 신뢰가 차곡차곡 쌓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신뢰를 주고 받는 법을 깨우친 것에 가깝다. 자주 싸우고, 화해하고, 돌아보고, 배웠다. 서로 싸우기를 두려워하는 상태가 얼마나 신뢰 부족의 상태인지 다들 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특히 이 과정을 통해 리더십이나 팀워크 같은 개념들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생각들을 갖게 되었다.


3. 배움

데이터시각화 석사 프로그램에는 가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이미 잘 한 결정이었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직장에서의 직무가 기술적인 일들에서 사람을 다루는 일로 많이 옮겨왔기 때문에 2016년과는 상당히 다른 지식을 익혔다. 여름에는 경영 결정의 일부를 돕는 역할을 처음으로 하려다 보니 재무 관련된 기초 지식을 습득해야 하기도 했는데 내가 이에 관해 얼마나 모르는지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아직도 재무 기초를 익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략적 결정에 소요되는 계획과 예측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생긴 것 같다. 연말에는 고객개발 파트로 또 한 번 중심을 옮겼는데, 영업이나 마케팅을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사람 관계,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따위의 느슨한 ‘센스’들의 집합으로 헤쳐나가던 내 원시적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그 뒤의 작동방식들과 원칙들을 습득하고자 노력했다. 이 모든 것이 2016년에 이미 알았더라면 많은 실수들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소중한 지식이다. 이를 계기로 경영대학원이라는 예전에는 끔찍하게 여겨지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나 싶어지기도 한다.

진지하고 치열한 관계들을 통해 2017년에 배운 가장 큰 교훈이라면 「똑똑해 보이는 사람 되기」를 경계하고, 상황을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려는 충동을 솔직하고 진실된 표현과 공감이 될 때까지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조급한 사람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루에도 네다섯 번씩 해야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은 시인하자. 내 단점을 나보다 남이 더 잘 본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해하지 말자.


4. 공적 자아

서울에서 독립적으로 또 자생적으로 재미있는 일을 꾸려나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망이 작년에 비해 넓고 깊어졌다. 예전에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사람들, 또 텀블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로만 아는 채 특정한 공간들에서 스치다 마침내 만난 사람들 등 경로는 다양하다. 이로 인해 서울이라는 거대도시 내 ‘재밌는 서울’ 이라는 주관적이지만 많은 이들과 공유되는 영역의 윤곽이 조금 더 뚜렷해 보이게 되었다. 2016년까지는 아무래도 이 서울에 대한 나의 포지션은 관찰자에 가까웠고 특정 프로젝트들에 참여한 것 또는 특정인과 연결된 점에 의해 대강 사람들의 머릿속 이곳 저곳에 놓여지는 입장이었으나, 201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나의 이런 저런 참여와 활동으로 말미암아 이름이 이해되는 입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세대’라는 불명확한 것과의 관계도 진일보했다. 아무래도 ‘윗 세대’라는 (마찬가지로 불명확한) 것이 자주 호명되고 그것과의 대척점이 요구되다보니 그렇다. 내가 가장 동시대성을 느끼는 서울 사람들은 80년대 중·후반생 중산층 또는 지식노동자 계층인데 이러한 동시대성을 더 강렬하게 곱씹어볼 수 있었던 기회가 연말에 있었으니 내가 인터뷰이로 참여했던 안은별 기자님의 책 〈IMF 키즈의 생애〉가 출간된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맥락 말고도, 하는 일을 통해 형성된 페르소나로도 새로운 계통들과 많이 연결되었던 해였다.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디자인 언저리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애매한 정체성을 수용하는 데에는 〈비핸스 포트폴리오 리뷰〉에서 발표하고 얼마 뒤  팟캐스트 〈디자인 테이블〉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 〈RE:Work 컨퍼런스〉등 나가서 텀블벅 얘기와 김괜저 얘기를 반반 섞어서 발표하는 계기가 몇 차례 더 생겼고 이를 통해 테크 섹터 디자이너들이나 소셜임팩트 쪽 사람들과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연말에 신뢰하는 이들과 함께〈프리랜서 네트워크〉라는 비영리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겹이 하나 더 생기게 되었다.


5. 생산

텀블벅에서의 두 번째 해는 1년차 이상으로 폭풍같은 배움의 연속이었다. 조직을 적당히 관리하는 것과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것이 얼마나 다르던지. 다행히 사업은 이런 우리의 노력을 알아주는 것 같다. 물론 한 뼘을 성장하면 새롭게 풀어야 할 문제가 한 꾸러미씩 던져지고, 이런 문제 꾸러미를 풀어야 할 사람이 나를 비롯한 단 몇 명의 동료들이라는 점이 무섭기는 하지만. 도전하면 늘 보답이 따른다는 경험치 덕분에 계속 간다.

텀블벅에 모든 역량을 쏟으면서 2016년까지는 간간히 해 오던 사이드 프로젝트들도 연중에 거의 다 끊었었다. 연초에 나온 〈뒤로〉 2호에 데이터시각화를 보탰고, 〈GQ〉 2월호에는 서울의 택시에 대한 글을 하나 쓴 정도다. 확실히 글쓰는 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블로그에 쓴 글도 불과 28개 뿐이다. 사진 역시 D750으로는 여행할 때를 제외하곤 별로 찍지 않았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일상의 말과 이미지가 ‘각 잡고’ 만드는 것들을 점점 대체한다. 그러나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나 사진은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과는 달리 즉각적인 피드백 엔돌핀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닌 만큼 꼭 꾸준히 습관을 유지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6. 문화

2016년만큼은 아니지만 괜찮은 여행을 몇 번 갔다. 봄에는 천안–군산을, 여름에는 상해를, 가을에는 삿포로와 LA–뉴욕을 다녀왔다. 특히 뉴욕 방문은 지난해부터 계획되었던 것으로 일종의 시즌 피날레 역할을 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기획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살면서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중 어느 정도가 ‘뉴욕 금단현상’인지 제대로 가려내어야 앞을 계획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과 재회하고 충분한 시간 동안 도시에 다시 푹 빠졌다 나오고 보니, 20대 초반에 뉴욕을 떠나면 일단 불안하던 시절과 지금이 얼마나 다른 상황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즉, 나는 이제 더 이상 뉴욕에 ‘당장 가야 하기 때문’에 초조하지는 않다. 그러나 언젠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한 계획을 오래 미뤄둘 수는 없다.

영화는 2017 영화 본 거에 따로 정리했다.

텔레비전은 VeepBojack Horseman 정도만 꾸준히 보고 있다. 이 두 쇼의 공통점은 비대한 자아를 가진 시끄러운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는 것인데 아무래도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에 이입하는 내 심리가 관련이 있지 않은가 싶다.

공연은 가족들과 뮤지컬 두 편을 본 것과 LA에서 스케치 코미디 쇼를 두 편 본 것 외에는 없었다.

활자에 파묻혀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형태로는 거의 일과 관련된 논픽션만 읽으며 살았던 한 해가 아닌가 싶다. 2018년에는 문학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7. 살림

기본적인 개인 재무를 위한 세팅을 2017 연말에 이르러서야 겨우 만들었다. 이제 최소한 반 년 정도의 주기로는 돈이 들어오고 나가고 쌓이는 과정에 대한 계획과 실행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실제로 해 보아야 알 것 같다.
돈이 모인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유학 살림 모드에서 전환하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귀국 후 2년간의 본가 생활은 안락하고 걱정없는 좋은 시간이었지만 아무래도 일상에 대한 주도력 반경이 방 단위로 한정되고 도시로부터 멀다 보니 삶에 대한 태도 또한 정체되는 듯한 기분이 최근 자주 들어서 나올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내 손으로 내가 사는 공간과 그곳의 동작 원리를 구축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늘 분명했으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핑계로 행동에 옮기지 않았었던 2017년이었는데, 이제는 ‘불확실하니 행동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불확실하니 행동한다’로 기본 모드를 전환할 때가 된 것이다.

  1. yoidome

    3번 배움의 마지막 문단 글에 무척 공감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올해 우정국이랑 이곳저곳에서 몇 번 뵈었는데, 인사는 못했지만 반가웠습니다.
    괜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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