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지는 않겠다.

오랜만이다.

11월 말일에 잠들기 전에 ‘12월은 나를 위한 시간으로 보내겠다’고 생각했다. 내 단기 메모리 그리고 순발력과 균형 감각을 담당하는 뇌를 쉬게 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시간을 갖고자. 그런데 12월 뿐 아니라 1월 반절이 지날 때까지 그런 시간은 따로 갖지 못했다. 일단 나 스스로 한 해를 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확보했어야 하는데, 2016년은 쉽게 돌아볼 수 있는 한 해가 아니었고 돌아보고 있을 정도로 한가한 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프리랜서였다면 연말이 혼자만의 연말이었겠지만, 팀과 플랫폼이 함께 연말을 맞이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을 계산에 넣었어야 했다. 조직 구조도, 업무 방식도, 플랫폼 커뮤니티도 각자의 축에서 한해를 돌아보았다. 그런 와중에 따로 작업 중인 원고도 두어 개가 있었으니 쉬기는커녕 주중에 수시로 모텔을 잡아서 밤샘으로 일을 해야 했다.

바쁜 게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니다. 내게 번아웃 낌새가 조금이라도 오면 팀이 당장은 괜찮지만 반드시 2~3주 간격을 두고 나서 그 후유증을 겪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따라서 새해에는 좀 더 쉬기로 했노라고 해리에게 다짐을 말했더니 해리가 한참을 웃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했다. 예전이었다면 바쁜 상태를 좋아하는 내 성격을 인정받는 것이 즐거웠겠지만 요즘은 진심으로 덜 바쁘겠다고 다짐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을 때 엄마가 있으면 엄마에게 아들이 일 너무 잘 하고 와서 녹초가 됐다고 말한다. 그러면 엄마는 항상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일하지 말라고 한다. 나를 잘 알기에 하는 말이다. 뭘 하든지 누군가 놀라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나를 바꾸기 위해 뭘 하든지 스스로 먼저 놀라버리기로 했다. 어머, 이것도 이렇게 잘 했어. 오늘 한 일도 이거 정말 끝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