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 친구와 한국 택시를 탔다.

어제 하루를 월차 썼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서울역으로 가서 공항철도 타고 오는 친구들을 기다렸다. 부쉬윅 이웃 제시카와 카일이 필리핀 여행을 마치고 뉴욕에 돌아가는 길에 서울에서 10시간을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먼저 서소문청사 정동전망대로 데려가 지친 몸에 커피를 먹였다. 아침까지 오던 비가 그치더니 하늘이 깨끗해져서 덕수궁부터 경복궁 청와대 북한산이 또렷이 보였다. 남대문을 거쳐 명동으로 가서 제시카의 관심사인 K-화장품 쇼핑 타임을 가졌다. 제시카는 재작년 뉴저지 아리따움 매장 사진 작업했을 때 미국인 손님 1로 도와준 바 있다. 때마침 요우커를 겨냥하다못해 멱살잡는 수준의 ‘코리아 세일 데이’ 광고가 롯데에 나부끼고 있어 재미있는 얘기들을 들려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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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은 근현대사를, 제시카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따라서 박정희가 사랑한 곰탕을 먹는 시간을 준비했다. 하동관을 나오자 카일이 평소 먹는 소화제를 찾길래 명동역 근처에 있는 약국에 갔다. 한참동안 약성분 검색을 하고 나서 약을 사 먹였다. 그 다음엔 인사동을 뚫고 삼청동을 돌고 슬로우스테디클럽 옥상에서 차를 마셨다. 민속박물관 앞뜰에 마련된 한옥에 앉으니 그제서야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참 좋다는 얘기가 나왔다.

저녁은 한일관에서 먹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출국 시간을 맞춰야겠어서 택시를 탔는데, 사드 반대 집회가 시작되려는 참이라 기사가 불만이 한가득이었다. 지금 서울역으로 가면 못 나올 텐데 어쩌냐며. 뒤에 탄 외국인들이 어디 사람이냐고 나에게 물었다. 미국 사람이오, 하니 기사는 자기가 딱 십 년 전, 정확히 십 년 하고도 삼 일 전에 텍사스 킬린에 가 본 얘기를 시작했다. 누이가 텍사스로 시집을 가서 킬린에 살았는데, 킬린에는 군 공항밖에 없고 달라스에서 경비행기로 더 들어가야 된다고 그랬다. 그 때 딱 한 번 가 보았던 일이 누이의 장례식이었다. 누이는 텍사스에 묻히기를 원했는데 가족들도 누이를 데려오고 싶어서, 그가 대표로 가서 화장한 재 한 줌만 들고 왔다고 했다. 서울역에 거의 다 와서 그가 시키는 대로 글러브박스를 열어보니 납골당 사진 한 뭉치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