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이 바를 찾아갔다.

지난 번 공항에서 즉석 결정한 홍콩 여행 이후, 해리와 나는 어디든 함께 여행할 운명인지 모른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번에는 도쿄였다. 지난 번의 패착을 거울삼아 환불 정책을 깐깐히 따져 결정한 에어비엔비 숙소는 GO OUT지 화보 촬영을 위해 꾸며놓은 듯한 아웃도어 캠핑 테마 숙소였다. 부끄러워지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테마였기 때문에, 적당히 특별한 곳으로 도망친 듯한 기분을 즐기며 묵을 수 있었다.

첫날 밤에는 오드피쉬님과 그의 친구를 만나 오피스란 바에서 분위기 좋게 술 한 잔 했다. 서울에서는 퀴어 퍼레이드가 끝나고, 이런 저런 후기들이 트위터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중이었다. 올해는 한국에 있는 동안 서울 퀴어 퍼레이드를 꼭 가려고 했는데, 아무렇게나 잡은 여행 계획이 겹치게 두었던 것이다. 오드피쉬님은 나와 해리의 사진을 찍어 「퀴퍼 부럽지 않은」 으로 시작하는 캡션을 달아 올려주었다. 부러움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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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에는 숙소가 있는 시모키타자와와 시부야 근처를 별다른 순서 없이 돌아다니는 것으로 계획했다. 시모키타는 하루 이틀 살다 가는 사람들에게도 동네 주민 행세를 허락하는 산뜻한 동네여서 좋았고, 시부야 주변에는 HJ씨가 추천해 준 독립 서점과 레코드바 등 가 볼 곳 목록이 있었다. 해리가 시부야 주변 주점들을 검색하다가, 내 직장과 똑같은 이름의 게이 바를 찾아냈다. 설명을 보니 그닥 재미있는 곳은 아닐 것 같았지만, 그냥 우연이 재미있어 구글 지도에 표시해두었다.

점심은 트위터로 연락드린 오토나쿨님과 먹었다. 퀴퍼 얘기, <아가씨> 얘기를 하다가, 한국 LGBTQ 커뮤니티들이 한국 LGBTQ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각종 우습고 슬픈 상황들 얘기로 넘어갔다. 용기를 내어 서로를 만나고 드러내고, 그 즐거움을 아는 것이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까지 귀한 경험인 것인지. 그 얘기에서 다른 얘기로 쉽사리 넘어가지 못했다.

나와 해리 같은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주변에 넉넉히 둘 수 있는 형편이다. 나 같은 경우 근 일 년 동안, 뉴욕에 두고 온 ‘내 사람들’ 역할을 서울에서 해 줄 수 있는 사람들도 많이 찾았다. 나는 이제 뉴욕에도 서울에도, 집에도 직장에도, 트위터에도 페이스북에도 일상적으로 용기를 훈련할 안전한 상대들이 있다. 그건 매우 좋은 환경이고 분명히 예외에 속하지만, 조금씩 쌓아서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더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한다. 올 퀴어 퍼레이드 이모저모를 망원하면서, 사람이 외로움을 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끓어오를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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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무렵 유명한 식당에서 입에서 살살 녹는 우나쥬(うな重)를 먹었다. 같은 시각, 플로리다 올란도의 게이 나이트클럽 펄스에서는 그 역시 게이 또는 바이로 추정되는 뉴욕 출신 남성 아프간계 미국인 ISIS 추종자 오마르 마틴이 마흔아홉 명의 춤 추던 사람들을 쏴 죽이고 사살되었다. 현장에서 전달된 뉴스 파편들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우리는 골든 가이에 있는 수많은 단칸방 바 중 한 곳에 들어앉아 하이볼을 마시고 담배를 태웠다. 나는 해리에게 괜히 다른 사소한 일로 심술을 부렸다. 나는 일요일 새벽 2시에 마지막 주문을 받는 게이 바라는 공간의 온도와 습도, 그 특유의 묘하게 세상이 끝날 것 같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다는 듯 뒤섞인 기분을 잘 알고 있었다. 그 곳은 내가 아는 곳이었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뭔가에 홀린 듯, 막차가 끊기기 전에 내 직장과 이름이 같다는 그 시부야 게이 바를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검색해 나온 주소를 보고 찾아간 곳에는 게이 바 비슷한 것도 없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막차를 놓쳐도 괜찮겠냐고 묻고,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기계 번역한 일본어 사이트들을 헤집으며 찾아보니, 도겐자카 쪽으로 옮겼다고 나왔다. 육교를 건너고 도겐자카의 언덕을 지나가는 동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겐자카 옆 러브 호텔 힐로 가는 길목에는 양복 차림 남정네들이 비닐 우산을 들고 윤락업소 호객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기어코, 비에 웬만큼 젖고 나서야 구석진 건물에 작은 글씨로 간판을 매단 그 바를 찾아내었다. 4층 어둡고 긴 복도 끝에서 철문을 꼭 닫은 채로 운영하는 작고 조용한 업소였다. 심호흡하고 문을 열어보니 나이 든 바텐더가 바에 앉은 손님 한 명과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침입한 축축한 관광객에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마치 다들 잘 있는지 확인했으니 되었다는 듯 스미마셍하고, 가만히 건물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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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yano

    안녕하세요
    괜저님의블로그 몰래 탐독한지도 어언…6년이넘은것같네요. 한번쯤 글남기고싶어서요.너무 좋다구요 이 블로그 글 읽는게요.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