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패딩사러 갔다가 내 인터뷰를 득했다.

가을에 인터뷰를 하나 당했다. <디어매거진>과 NY30NY 프로젝트 때문에 남을 인터뷰하는 일은 익숙하지만, 남이 나를 인터뷰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국산 남성복 브랜드 Series에서 발행하는 잡지 에서 이방인이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모은다고 했다. 우리가 NY30NY 인터뷰 장소로 쓰기도 했던 로워이스트사이드 와이낫 커피에서 기자님 사진사님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옆집에서 치킨과 굴에 맥주도 하고, 얼마 후 브루클린에서 따로 만나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대화를 더 이었다.

그리고 미국 집을 정리하고, 서울로 오는 이삿짐을 택배비 백이십만 원 어치 부치고 (지난 8년간 거처를 옮기느라 지출한 돈을 생각하면 내가 이방인이라는 기획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까지 민망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 밖에 J와의 벤처를 일단락짓는 등 바쁜 늦가을을 보내다보니,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왁자지껄하게 친구들, 또 친구들의 개와 고양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미션 임파서블 전편을 촘촘하게 이어보면서 서울로 날아오니 어느새 눈 내린 겨울이었다.

본가 옷장에 겨울옷을 정리하다 보니, 현역 외투 1호인 국방색 탑코트만으로는 겨울을 나는 것이 역부족일 것임을 느꼈다. 작년에 수명을 다한 싸구려 패딩과 거듭 수선했던 피코트를 정리하고 나니, 바머(bomber)나 트렌치같은 얇은 외투들 사이에서 혹한을 견딜 장비가 그 탑코트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이 탑코트도 제법 낡아 모직이 조금 얇아지고, 주머니는 양쪽 다 안으로 터져 수선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을 목격한 엄마가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로 패딩을 사주겠노라 약속했다. 우리는 고골 얘기를 하면서 백화점에 갔다.

평촌 롯데백화점에 차를 세우고, 곧장 남성복 층의 시리즈 매장부터 들렀다. 엄마와 함께하는 쇼핑이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매장 중 하나다. 비싸지만 패턴과 감이 확실히 좋아서, 짙은 색 바지 같은 베이직을 사면 성공율이 높다. 디테일이 제법 들어갔는데도 멀리서 보면 솔리드한 색상 블록으로 보이고, 노란끼가 살짝 있는 군청색이라 내 옷들과 딱 맞는 긴 패딩을 사기로 했다. 엄마가 자애롭게 계산을 하는 동안 매장에 비치된 시리즈 매거진을 별 생각없이 폈는데, 두 달 전 뉴욕에서 찍힌 내 사진이 단번에 눈에 들어와 깜짝 놀랐다. 엄마와 직원 분이 더 크게 놀라고 나니 나는 금세 민망해졌다. 이 신기한 상황에 직원 분은 하나밖에 안 남은 그 잡지를 우리 쇼핑백에 넣어주었다. 엄마와 나는 잠깐 웃고 온더보더에 가서 멕시코 음식을 먹었다. 내가 인터뷰 내용을 훑어보는 동안 엄마는 벽에 걸린 멕시코 피겨린 장식장을 보고, 집에 있는 장식품들을 걸 수 있도록 비슷한 것을 나무로 짜 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2015-12-04-21.21.08
2015-12-04-21.20.17
  1. 안녕하세요. 예전에 르윈 번역 글 보러 왔다가, 약간 몰래 남 일기 읽는 듯? 한 느낌이 좋아서 들락날락하다 애독자가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12월 연말부터 1월 초까지 뉴욕을 여행하게 되었는데요. 최대한 뻔하고 구린 여행이 되지 않기 위해서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고 있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뛰어난! 취향을 갖고 계신 괜저님의 추천을 받고 싶어서 약간의 용기를 내봤습니다. [멋진 곳, 맛있는 곳, 멋있는 사람이 있는 곳, 살 곳.. 등] 감사합니다.

    p.s 타이포그라피가 보면 볼수록 섬세하고 멋집니다. 읽을 때도 아주 좋았는데, 직접 써보니 더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