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것저것 생겼다.

15-09-18-The-republic-for-which-it-stands-WEB-034100

도미노 7호 생겼다 (가장 왼쪽). 이번 도미노는 중철이고 가볍고 약간 더 활자 위주이다. 주제상의 척추가 분명해서 「아, 나오지 않으면 안 되어서 나왔구나」 싶은 인상을 준다. 아직 전부 읽지는 못했지만, 맨 먼저 읽은 윤원화님의 <우리가 곤충이었을 때>가 벌써 부드러운 감동을 주었다는 것부터 적어놓는다. 아카이브형, 반응형, 메타형 등의 글 사이에서 홀로 은은하다. 세상이 이러니 내가 붓을 든다—가 아닌, 세상이 어떻든 나는 붓을 든다—라는 느낌이다. ‘커다란 이야기보따리’가 있어야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뭘로든 이야기보따리를 척 꾸려서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존경스럽고 부럽다.

구두 생겼다 (중앙). 몇 주 동안 고민했다. 이번주에 올해 처음으로 양복 개시하는 일이 생겼는데, 전에 신던 연갈색 스웨이드 처카가 너무 헤져서 버린 이후 마땅한 구두가 없는 것이 걱정이었다.

옷 종류는 사고싶은 것이 확실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구매한다.

  1. 미드타운이나 소호의 고가 브랜드 매장을 방문해 목표물의 물적 이데아를 설정한다. 아주 오랫동안 투자할 필요를 느껴온 물건인 경우 이 단계에서 구매해도 되지만, 아직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미드타운에서 일하는 친구 생일 점심식사를 대접하러 간 김에 매디슨가에 있는 비싼 구두가게 두세 곳에 들어가 신어보고 감을 잡았다. 실물로 보기 전 막연하게 그렸던 ‘광택있는 밤색 가죽의, 토캡이 있고 금속이나 부수적인 장식이 없는, 지나치게 공기역학적으로 미끈하지 않은 옥스포드 또는 더비’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에 놀랐고, 쓸 만한 제품들이 나오는 최소 가격대는 $200 정도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2. 그래머시와 부시윅 등의 단골 헌옷가게를 쓸며 이데아에 가까우면서 개성도 있고 저렴한 물건이 있는지 살핀다. 부츠가 아닌 정장 구두는 헌옷가게에 흔한 품목이 아니라, 허탕쳤다.
  3. 이름난 브랜드들의 할인 또는 카피 제품들을 인터넷으로 찾는다. 비교적 저렴하고 질 좋은 구두를 만드는 유서깊은 브랜드 Florsheim에서 이데아에 무척 가까운 물건을 할인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주문했다.

독립출판물 몇 개와 잡동사니 생겼다 (가장 오른쪽). 작년에 이어 MoMA PS1에서 열린 뉴욕 아트북 페어에 갔다. H 형네 그린포인트 집에 있으면서 사흘 내내 갔었던 작년에 비하면 짧게 훑어보기만 했지만 아트-힙스터 인구총조사로서의 의미가 더욱 큰 행사이므로 발코니에서 모두를 굽어보며 M. Wells 햄버거와 맥주를 먹으면서 당일 만난 친구들과 남는 것 없는 수다를 떠는 시간은 생략하지 않았다. 작년엔 내내 더웠는데, 올해는 오후 늦게 더위가 가셔서 불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