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풍 직후 타이완에 갔다.

15 08 09 Taipei WEB - 144242

우리는 타이페이가 태풍 사우델로르에게 4명의 목숨을 내어준 날 그리로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비행은 허락되지 않았다. 약간의 지연을 예상하며 가긴 했지만 열 두 시간이나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중 처음 너댓 시간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 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로 지나가 버렸다. 결국 정오였던 비행이 자정 이후로 조정된 것을 화이트보드 손글씨 공지사항으로 확인한 우리는 짐을 들고 먼 시내로 도로 나가는 대신, 공항 한켠에 짐을 맡겨놓고 어슬렁거리고 쉬기로 했다. 항공사에서 제공한 식사권으로 비싼 한국 음식을 사 먹고, 해리에게 광둥어 레슨을 받으면서 놀았다.

대기중인 승무원들과 함께하는 연착비행은 찌뿌둥했다. 타이페이 공항에는 우리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결항·지연항 승객들이 시내로 가는 택시와 버스가 모자라 대합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잠 없이 맞은 새벽, 급기야 나는 면역이 떨어져 귀와 목 부근에 서늘한 감기 기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첫 며칠간 내게 어른 역할을 맡겨놓았던 해리가 모드를 전환하여 나를 이끌고 이런 저런 버스와 택시를 잡아탔다. 태풍이 물러간 뒤 도착했는데 마치 뚫고 온 듯한 몰골로 숙소에 도착했다. 첫 사흘간 홍콩에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놀고 중간중간에는 서로를 거듭 반가워하느라 오버클럭 상태였던 서로를 진정시키고, 타이완에서는 편안히 놀기로 결의했다. 그 결과 시장에서 맛난 것 먹고, 타이페이 북쪽 담수이 온천에서도 일박 하고, 희대의 척추 경락 마사지도 받고, 틴더로 말만 섞었을 뿐이었던 현지인 친구와 해리의 학교 친구와도 만나 천막 친 곳에서 칵테일도 마시고, 수십가지 맥주를 드래프트하는 모습이 브루클린과 다를 바 없는 힙스터 종착지도 가 보는 등 잔잔하고 회복적인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15 08 09 Taipei WEB - 083045
15 08 09 Taipei WEB - 135521
15 08 09 Taipei WEB - 135905
15 08 09 Taipei WEB - 144148
15 08 09 Taipei WEB - 153219
15 08 09 Taipei WEB - 225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