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개월도 긴 시간이고 삼개월도 긴 시간이다. 그간 뉴욕으로 얼른 돌아가야 한다는 집착 때문에 뉴저지에서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집에 너무 정을 안 붙이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처방으로 연말에 무쇠솥을 샀다.
랏지 솥은 따로 시즈닝을 할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첫 사용을 신중하게 하고 싶어서 세일중인 베이컨을 집어왔다. 한 판 가득 베이컨을 구워서 기름이 배이게 하고 거기에 닭을 튀겨서 테라곤, 알감자와 구웠다. 지금까지 레인지와 오븐을 오갈 수 있는 팬이 없어서 오븐 요리도 잘 안 하고, 큰 솥이 없어서 딱 일용할 양식 일인분씩만 만드는 등 제약이 많았는데 팬이 뚜껑을 겸하는 솥셑 덕분에 요리가 자유로워졌다.
역사적인 눈폭풍이 온다고 해서 동북부 전체가 덜덜 떨었다. 예전에 같이 일한 적이 있는 민간 기상학자 분이 있는데 페이스북에 거의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투의 경고를 한 시간마다 올려댔다. 집에 돌아오니 연방재난관리청에서 일하는 룸메이트 닉이 각종 제설도구를 문 안쪽에 가지런히 준비해 놓은 것이 보였다. 나는 이틀간 집밖에 나갈 일이 없을 것을 대비하여 솥 가득히 칠리를 끓였다. 우려한만큼 눈이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칠리는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볼로네제든 칠리든 어쨌든 간고기 넣은 것들을 만들때는 졸이는 스타일이네. (한글 글씨체 맘에든다)
고기가 얼마만큼의 수분을 머금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걸 좋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