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안에 블로그 이사간다.

한다고 얘기만 몇 년째, 이 블로그를 이글루스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 이글루스 전성기 때에는 티스토리로 옮겨주는 서비스를 만든 사람도 있었고 설정을 맞추고 돌리면 파일을 생성해주는 커맨드라인 프로그램도 등장했으나 완벽하지 않았다. 이글루스는 서비스가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포장이사는커녕 백업 기능도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다. 작성할 때 원본을 따로 보관하기 때문에 본문 내용이 날아갈 걱정은 없지만, 덧글과 갖가지 메타데이터는 이글루스가 망하면 그대로 날아가도 불평할 수 없는 입장이다.

포장이사를 크게 두 번 시도했다가 두 번 다 일부의 수확만을 거두었던 내용을 쭉 써둔다. 뛰어넘고 바로 결론을 읽어도 된다.


작년 말이었나, 대대적으로 이사 태세를 갖췄던 적이 있다. 50% 정도 자동화를 해서 글과 사진, 덧글 일체가 포함된 블로그 각 페이지 소스를 웹페이지 아카이브로 다운로드받는 데 일주일 정도 걸렸다. 그 다음 그 소스에서 컨텐츠 부분만 잘라서 일렬로 이어붙이는 작업을 역시 50%정도 수작업이 수반되는 방식으로 했다. 그 다음 그림 링크, 글 링크를 옮길 곳(워드프레스)에 맞게 찾아바꾸는 데에도 시간이 들었다.

그렇게 워드프레스용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백업본을 만들어놓은 다음, 새 블로그 디자인을 시작했다. 포부를 크게 잡았다. 글 종류마다 다른 레이아웃을 보여주고, 기존 덧글과 워드프레스 덧글, 디스커스 덧글을 자연스럽게 표시하고, 검색과 아카이브 열람에 재밌는 기능들을 들였다. 이글루스의 가장 큰 제약 중 하나인 모바일상 기능 제한에 한이 맺혀서, 양식 뿐 아니라 성능까지 대응형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다. 타이포그래피도 재수없어 보이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다듬었다. 플러그인을 이용해 글이 자동으로 백업되도록 했다. 각종 최적화 작업으로 싸구려 호스팅이지만 속도시험 고득점을 받았다.

백업 시점으로부터 시간이 몇 주 더 흘렀으므로, 그 사이에 입력한 글들을 따로 저장하다가 중대한 실수를 발견했다. 일부 비밀덧글(작성자 외부 링크가 있는 비밀덧글 일체)의 비공개 설정 클래스가 리포맷팅 과정에서 누락된 것이었다. 결정적인 실수였고 되돌릴 수 없었다. 같은 방법으로 다시 다운로드하자니 너무 장시간이 소요될 터였다. 의욕이 바닥을 쳤다.

그 후 너무 바빠서 다시 손댈 엄두를 못 댄 채로 몇 달이 지났다. 그 사이 회사에서 XML/JSON 등 데이터 통신 관련한 경험이 좀 쌓여서, 직접 API를 사용해 마이그레이션하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결국 몇 주 전, 이글루스에서 제공하는 개발자 API를 써서 내 블로그에 제 3자 서비스로 접속해 내용을 읽어 파일로 저장하는 간단한 코드를 짰다. 워드프레스용으로 리포맷팅하고 주소를 교체하는 등까지 처리하기 위해 이 역시 며칠 시간이 걸렸지만, 지난번 반수작업에 비하면 훨씬 고등한 접근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글루스의 API 지원의 핵심인 OAuth 사용자 인증 부분이 먹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같은 API를 사용하는 여러 다른 프로그램들도 서비스 중지 상태라고 들었다. 뻘짓을 많이 했는데 결과가 불가항 에러라니, 다시 살아나던 의욕이 픽 죽어버렸다.


결론은 많은 노력을 들여 덧글과 비밀덧글, 상대경로 등을 모두 살리면서 워드프레스로 옮기는 시도를 두 차례 했지만, 아직은 100% 만족할 만하고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지 않는 해결책을 못 찾았다는 얘기다. 그러는 동안 새 블로그는 오지 않는 컨텐츠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괜한 디자이너 손때를 타고 있다. 그가 올해를 넘겨 나이 한 살을 먹기 전에 꼭 컨텐츠를 꽂아넣어주리라는 생각을 버리지는 않았다.

  1. 리미

    괜저님 글 재밌게 읽고 있어요.
    옮기신다고 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해요 나쁜의미는 아닙니다
    저도 옮겨야지 옮겨야지 하는데 도저히 실행에 옮기지 못하겠어요
    컴맹이라 ㅠㅠ 더 힘들기도 하구요

  2. 명품추리닝

    그거 성공하시면 유료서비스라도 하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