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동안 또 한 번 H님 집 신세를 졌다. 그가 나라 밖에 있는 동안 그린포인트에 있는 스튜디오 아파트에 머물게 된 것은 시기가 적절했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계속되는 뉴욕 아트북 페어에 가기에 편리하기 때문이었다. 그린포인트에서 펄라스키 다리를 넘기만 하면 페어가 열리는 MoMA PS1까지 쉽게 걸어갈 수 있다. 덕분에 가벼운 차림으로 두세 번에 걸쳐 다녀왔다. 가장 붐비는 시간에는 발을 돌려 나왔다. 뉴저지에서 보따리 싸매고 왔었다면 사우나처럼 달아오른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현장을 헤집다 앙 님과 마주치는 훌륭한 우연 역시 없었을 것이다.
도쿄 아트북 페어가 불과 며칠 전이었다. 거기에는 디어 매거진 팀이 참가했었다. 도쿄의 분위기를 잘은 모르겠지만, <프린티드 매터>에서 여는 뉴욕 아트북페어는 ‘북’보다 ‘아트’에 좀 힘이 들어가는 행사이기 때문에 디어 매거진 관계자로서 뭔가를 해 보자는 생각을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 모두가 신나하는 자그마한 인디 간행물 붐(물론 텀블러,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의 진원지에 죽치고 있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도쿄 페어를 간추려서 싸들고 오신 분들을 통해 디어 본진과도 간접 교감하였다. 눈여겨보는 잡지 목록에 서너 개를 새로 올렸다. 궁한 시절이라 욕심만큼 물건을 사지는 않았다. The White Review 사람들과 좀 얘기를 했다. 그 잡지는 단편소설(대회도 있다)도 싣고 사진도 좋아하는 그 비율이 내 마음을 항상 동하게 한다. 아트북 페어의 주인공 격인, 정말 뭐라도 만들어 내놓지 않으면 졸음이 몰려와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한 그런 사람들과는 힘을 들여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한편 내 표정은 이미 떡꼬치 집에 온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처럼 되어있지 않았을까 한다. 수고하시네요, 아, 아트-북이네요, 그런 느낌. 왠지 나는 이 씬을 벗어나 따로 마련된 회의장에서 도자기컵에 주스를 마시면서 이 창의적인 에너지를 어떻게 산업화할지 논의를 지시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였을까? 왜긴 왜야, 원대함 없이도 만들어내는 이들에 대한 자격지심이었겠지.
북페어 정말 가보고 싶었는데. 뉴욕 사람들이 이럴때마다 부러워요.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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