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 연결이 된다.

몇 차례 E와 만나서 놀았다. 그래픽디자인 애호가인 나와는 다르게 정말 그래픽디자인에 몸바친 친구이기 때문에 같이 어제처럼 프린티드 매터에 간다거나 하면 재미있는 일이 많다. 집은 샌프란시스코, 학교는 보스턴인데 반 년만 뉴욕에 와 있는 처지라 돌아다닐 이유가 충분하다. 어제는 만나서 보쌈을 먹었다. 그냥 괜찮았다. 보쌈이면 무조건 좋았던 지난 몇 년간의 입맛이 조금은 변한 것을 느낀다. 무엇보다, 쌀밥이 땡긴다는 느낌을 거의 못 받는다. 점심에 서브 집 가서 고기 이거, 치즈 이거, 빵 이거, 이렇게 후딱 골라서 둘둘 말아서 갖고 나와 사무실에서 먹는 것이 딱히 싫지 않다. 샐러드도 예전보다 훨씬 간단하고 가볍게 만들어 먹는다. 맛있는 게 먹고 싶으면 정말 맛있는 델 간다.

예를 들어 MJ와 랜드마크 선샤인 영화관에서 Only Lovers Left Alive를 보고 밤인데 허기가 져서, 새로 생긴 해산물 집에 별 기대 없이 갔다가 꽤 맛있는 굴 요리를 먹었다. 보쌈에도 굴이 나왔기 때문에 이 생각이 났다. 굴에 시금치와 치즈를 얹어 토치로 그을린 것인데, 나는 굴의 제 맛을 즐기는 편은 못 되기 때문에 이것이 나쁘지 않았다. MJ와 영화를 보면 늘 할 얘기가 많이 생긴다. 백포도주 한 잔 하면서 다 했다.

Yara, Brett, Jessica, Kyle 패거리들과 우르르 Momofuku 국수집에 몰려가 닭튀김을 먹으면서도 내 입맛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쌈이건 닭튀김이건 어떤 것이 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냐, 라는 질문이 전보다도 더 무의미해 보인다. 한번 닭을 튀겨갖고 오시라, 그럼 이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인지 말씀드릴 테니. 우리 패거리는 요리도 잘 하고 요식업에 종사한 적 있는 친구 비율이 높아 늘 만남의 장엔 음식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상에 올라온 것 중 하나도 빠짐없이 대화 주제에 포함된다. 점점 배가 차오르면, 요식업보다도 우리 패거리와 더 관련이 높은 주제인 영화 얘기를 한다. 뭐 봤고, 뭐 봐야 되고, 어디서 뭘 하는지 각자 두셋씩 꺼내놓는다. 본 지 한 달이 넘었지만 Boyhood는 아직도 장안의 화제다.

토요일에는 H님이 바로 그 보이후드를 보고 나오면서 술 호출을 해 왔다. 세라의 생일잔치라 예전 집 바로 근처에서 이미 술을 마시고 있던 나는 슬슬 모르는 사람 비율이 높아져서 피곤하다 싶었던 터라 잘 됐다 싶었다. 만나 영화 얘기를 나눠보니, H님과 내가 보이후드의 서사에서 동질감의 끊을 놓기 시작하는 지점의 차이가 곧 우리 둘의 두 도시 배합비율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난 번에 비슷한 동네에서 함께 뵀던 YH 피디님도 오셔서 함께 펍에서 한 잔, 이자카야에서 한 잔을 얻어마셨다. 피디님은 MJ와 함께 간 <설국열차> 시사회 때 마주친 바 있다. 또 보이후드를 만들고 트는 IFCE가 인쇄디자인을 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이 문단들은 다 연결이 된다.

  1. 이쌩

    맛있는 굴요리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