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절을 즐기는 열쇠는 한 발 앞서 쾌적함을 준비해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녁까지 푹푹 찌는 여름이 왔는데, 나쁘지 않다.

선반 때문에 목공소에서 나무를 떼었다. 적당한 길이의 목재들이 다 상태가 안 좋은 것을 보고, 더 긴 것들을 사게 됐다. 재단을 끝내니까 당장 쓰지 않을 부분이 많이 남았다. 짧은 것들은 베낭에서 한참 삐져나오게 대충 넣어서 싸매고, 긴 것들은 유격훈련처럼 어깨에 얹었다. 지는 해를 마주보고 직사광선을 쬐면서 집까지 왔다. 방 창문을 열어제끼고 흠뻑 젖은 피케셔츠를 몸에서 떼어냈다. 티셔츠였으면 덜 그랬을 텐데 두툼한 피케셔츠는 하루에 흘린 땀을 전부 다 머금고 있어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기 좋다. 나는 이럴 줄 알고 어제 저녁에 수박 반의 반 통을 사서 시뻘건 부분이 눈에 확 들어오게 냉장고 한복판에 놓아두었다. 랩을 벗기고, 수박 자르는 데 필요한 이상으로 날카로운 칼을 써서 깔끔하게 발라 먹었다.

그걸로는 모자라서 자몽 작은 것도 하나 먹었다. 음악을 듣다가,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팟캐스트를 듣다가 하면서 해가 지기 전에 한쪽 벽에 선반을 다 올렸다. 내가 가진 책의 반의 반을 올리자 자리가 꽉 찼다. 벽을 하나 더 써서 전면 책 선반을 추가로 짜야겠다. 그건 아마 바닥이 좀 더 정리가 되고 나면 해도 될 것이다. 그 날에는 수박을 반 통은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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