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솟아날 구멍을 보았다.

Local Natives : World News

<매드 맨> 종방같은 한 주였다는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나는 뉴앜으로 이사하기 전, 경계적인(liminal) 단계삼아 피츠버그 출장길에 올랐다. 촉박한 시간 내에 방을 빼기 위해, 무턱대고 전임자에게서 받아놓은 무거운 목재 가구들을 혼자 폐기하고 이민가방에 쑤셔넣은 짐을 대충 사무실 창고에 박아놓았다. 가구를 분해해서 트럭에 싣고 이삿짐을 이층 저층으로 옮기는 일은 군대에서 우리 부서 주업무였기 때문에 노하우는 자부할 수 있지만, 지원이나 장비 없이 혼자 사역을 하려니 반나절에도 몇 번씩 벽에 부딛혔다. 말 그대로 벽에 부딛혀서 팔꿈치가 피투성이되었다.

다행히 앤드류는 무사하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주·조연들 여럿이 중요한 국면을 맞았다. 여동생은 구직 면접을 보러 제주도에 갔다. 제니는 샌프란시스코로 떠났고, 모건이 그 뒤를 따르게 되어 있다. 이병장은 프랑스에 있는 학교, 삼갯은 병역기관으로 갈 준비를 하러 서울로 떠났다. H님 역시 나와 동시에 부쉬윅으로부터 이사를 한다. 그런 와중에 내가 넘겨준 방에 살고 있는 앤드류는 저번달까지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로컬 네이티브의 음악을 듣던 중, 머리위로 천정이 무너져내렸다.

출장을 생체리듬 전환의 계기로 끼워맞추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제일 좋아하는 옷들을 챙겼다. 공항버스가 절벽을 넘을 때 왼쪽에 펼쳐지는 피츠버그의 작은 도심은 예상외로 아름다웠다. 구름 구멍으로 빛이 사선으로 쏟아지는데 세 줄기 강에 복사·붙여넣기한 것 같은 철제 다리들, 후방에서 연기를 올리는 굴뚝들이 한 눈에 들어오니 마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화면에 들어온 것 같았다. 날씨도 정확히 좋았고, 기대치도 워낙 낮았던 터라 객관적인 포착은 아니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환경친화적이라는 컨벤션센터 옥상에서 공짜 맥주를 마시며 수많은 모르는 사람들 뒤에 느린화면으로 해 떨어지는 걸 보는데 캬.

피츠버그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판촉 성과도 올리고, 때때로 비는 시간에 도시를 크게 한 바퀴 돌며 살갗을 좀 태우고 맛있다는 것들 맛을 보았다. 낮에는 높은 데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 밤에는 쉐이디사이드 부근 바를 몇 곳 가며 여유를 부렸다. 돌아오는 날에 일찌감치 공항에 가서 검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프로젝터와 아이패드가 든 가방을 버스에 놓고 내린 것을 알았다. 통화 끝에 행방은 파악했지만 버스가 차고로 들어가는 늦저녁에야 직접 본인만 수령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위기관리체계를 가동해 비행기표를 다행히 무료로 다음날 새벽 표로 바꾸고, 에어비엔비(AirBnB)로 삼만원짜리 방을 구하고, 우버(Über)를 불러 무사히 가방을 되찾았다. 다음날 아침 공항에서 바로 출근해 다름없이 일한 뒤 저녁에 비로소 깨끗이 빈 새 집에 출장가방 하나 들고 입주했다. 바닥에 깐 이불을 반 접어 덮고 누운 채, 천정이 무너질 때 솟아날 구멍을 맞춰 뚫을 태세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