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반 카페지기였다.

중학교 시절 학기초에 다음카페를 만들면 내가 그거 디자인을 도맡아 했었는데 마키나 이미지맵 같은 것이 필수로 들어가는 대문을 만들고 나머지 요소를 스킨설정으로 조화롭게 하느라 날밤을 새곤 했다. 시험 전에는 오엠알 카드 모양으로 도트를 찍어 축전을 올렸고, 모든 글은 돋움 9pt에 자간을 1px 좁혀 진회색으로 촘촘하게 썼다.

닉네임이 중요했다. 아프락사스라는 그 당시에도 가는 웃음이 나오는 닉네임을 쓰는 친구는 흰 피부에 무척 내성적이고 일본 음악인지 만화인지를 좋아하면서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는 소녀였지만, 카페에서 아프락사스라는 닉네임을 달고 있을 때엔 말수가 배로 늘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가끔씩 카페에서 얘길 나누고 나서 학교에서 말을 걸었다가 벽 취급을 당하는 아이들이 생기기도 했다.

한 닉네임을 두고 싸우던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한 번은 강성훈 팬과 손호영 팬이 살인미소라는 닉네임을 두고 맞붙었다. 나는 방송부 일을 하느라 두 진영이 이미 점심시간마다 각 가수의 음반을 틀려고 밥도 거르고 줄을 서던 모습을 보아 알고 있었다. 나는 가끔씩 젝키와 지오디 음반이 너무 지겨운 나머지 다른, 그래봤자 유승준 음반 따위를 재생목록 앞에 끼워놓기도 했다.

삼학년 때 나와 제일 친했던 친구는 이은주를 죽도록 좋아했다. 반 전체가 잘 알고 있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이은주에 별 관심이 없었다가 그의 영향으로 영화를 챙겨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다른 친구들의 신청사항을 무시하고 카페 대문을 이은주 사진에 감성적인 글귀를 붙인 그런 걸로 바꿔 걸어놓았다.

한 번은 카페에 다들 담임선생님을 입 모아 욕하는 분위기로 몇 주가 흘렀던 것 같다. 카페 이름부터 <퍼킹유에스에이>의 오마주였던 우리 반에는 쉽사리 가시지 않는 화가 있었다. 어떻게였는지는 모르지만 담임선생님이 그 글들에 대해 듣고 직접 읽기까지 하게 됐고, 카페는 잠시 수면기를 가졌다.

졸업하고 나서 카페에는 서너 번 정도 접속했다. 이은주가 죽었을 때도 들어갔고, 동창회날 밤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몇 달 전에 아이디를 없애면서 아마 마지막으로 들어갔는데, 비교적 최근에 올라온 글이 있었다. 아프락사스가 올린 글이었다. 잘 지내니 얘들아? 시간이 많이 흘렀네. 다들 어떻게 지내니? 나는 요즘 세계가 끝난다는 것에 대해 믿음을 가지게 됐어.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아. 잘 지내, 안녕.

  1. 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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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like the last paragraph so mu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