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로 생긴 커피집 주인의 눈물을 보았다.

힙 불모지인 부시윅과 릳지우드 경계 구간. 빽빽한 라티노 가구들 사이사이 틈에 나와 내 친구들같은 중·저소득 힙스터들이 충치처럼 피어나고 있다. 윌리엄스버그에 접한 부시윅 서쪽은 신브루클린화(Neo-Brooklynization)가 이미 거의 다 진행됐지만, Morgan Avenue 역 오른쪽으로는 아직 제법 지저분하다. 여기서 ‘지저분’이란 ‘gritty’를 옮겨본 것인데, ‘더티 시크’할 때의 더티처럼 동네의 더러움(위생, 범죄)이 유행 속으로 들어올 때에 취하는 단어 중 하나다. 즉 우리 집에서 하는 파티에 오는 친구들은 우리 동네가 윌리엄스버그에서 가깝지만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아서 좋다고 말한다. 서울과 바로 비교할 만한지는 모르겠지만, 경리단길이 아닌 이슬람사원 근처에 방을 잡는 것과 비슷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커피가 지표가 된다. 커피집 다니는 것이 너무 좋아서 대학교 초반에 14번가와 Houston가 사이에 있는 커피집을 빠짐없이 가 보는 작업을 했었는데, 그렇게 커피집에 관심을 쏟다보니 커피집 전경과 차림표를 보면, 그 동네에 대해 무척 많이 알아낼 수 있음을 알았다. 요즘을 말하자면 젖류 목록에 두유, 아몬드유뿐 아니라 쌀유와 코코넛유까지 있으면 충치(gentrification)가 갈 때까지 갔다고 보면 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을 까는 건 순전히 습관적이고 ‘찔리기도’ 해서 그러는 거지, 실제로는 면면이 무척 복잡하고 민감한 주제이다.) 들여놓은 도너츠가 도넛플랜트인지 Dough인지, 콜드 브류에 히코리를 넣는지와 같은 디테일로 힙 등급이 갈린다. 무선인터넷을 무료 공개하다가, 비밀번호를 걸다가, 비밀번호를 매일같이 바꾸다가, 결국 한 시간짜리 접속권을 만들어 주는 식으로 운영방식이 진화한다는 것은 그 곳이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지나치게 알려진 곳으로 변화해왔음을 의미한다.

지난 달 바로 그 부시윅과 릳지우드 경계에 작은 커피집이 하나 생겼다. 연지 한 주도 안 되었을 때 우연히 들렀는데, 터키 출신 부부가 하는 집이었다. 힙스터를 받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은 탄탄히 갖췄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 지점에서 꽤 멀어보였다. <요즘 커피집 최소한의 힙 갖추는 법>을 속성으로 익혀 온 것 같았다. 차림표에서는 터키식 커피가 눈에 띄었다. 어떻게 만드냐고 물어보자 주인은 장장 이삼십분간 VJ 특공대 식 설명을 늘어놓았다. 터키의 이런 역사 때문에 이런 커피가 이렇게 저렇게 되어 오늘 네가 브루클린에서 맛보게 되었다는 그런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난 사실 터키식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리 동네에 2.5세대 커피집이 처음 들어온 이상 일단 단골이 되는 것은 의무였기 때문에 성실히 들었다. 무척 신나 보였다. 바클라바 비슷한 과자를 공짜로 얻어먹었다.

일요일 정오쯤 Fairweather라는 이름의 그 커피집에 다시 가보니 줄이 길게 늘어서있었다. 차림표에는 베이글 종류가 몇 개 늘었지만, 이미 거의 다 팔린 모양인지 빵류 선반이 화려한 과자류를 빼면 텅 비어있었다. 줄을 서서 주인 부부가 핀볼 구슬처럼 좁은 주방을 앞뒤로 쉴 새 없이 오가는 것을 지켜봤다. 남자는 바쁠수록 목청이 커지는 사람이었다.

「여러분 조금만 기다려요! 와 줘서 고마워요! 근데 왜 다 한꺼번에 온 거야!」 그가 종이컵에 도장을 찍으며 소리쳤다.

「부시윅 수면 주기가 이래요. 전부 동기화돼서⋯⋯.」 나는 이렇게 말하며 그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두려운 생각이 이마에 스치는 것 같았다.

「카드 돼요?」 내 앞의 여자가 물었다.

「카드 되긴 하는데, $5 이상만 돼요. 근데 봐 줄 수도 있어⋯⋯.

보아하니 Square에 가입해서 아이패드로 카드를 받는 모양이었다.

「이게 한 번 긁을 때마다 25센트인데 커피 한 잔 팔고 그걸 내면 너무 심한 거 같아⋯⋯. 그치만 현금이 없으면 그냥 다음에 내요. 그냥 다음에 받지 뭐.」

여자는 이미 현금을 꺼내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베이글 돼요?」

「베이글이 다 나갔어요. 딴 빵⋯⋯들도 다 나갔어요. 아무것도 없네. 미안해요.」

「시나몬 슈거 있어요?」

「시나몬 슈거가 뭐에요? 아예 처음 들어보는데⋯⋯. 설탕인데 계피가 들어간 거에요? 따로 뿌리는 것보다 좋은가? 아, 손님 많을 땐 편하겠다. 다 산 줄 알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구만⋯⋯!

  1. 고율

    재밌네훃. 무선 인터넷 부분이 특히 재밌었어요. 🙂

  2. 김괜저

    감사해훃

  3. 루아

    주옥같네요. 짧은 꽁트로 올리면 눈물 빼면서 볼 것 같은데…

  4. gene

    수면 주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5. 하하. 무척 재미있는 글이네요…!

  6. 김괜저

    고맙습니다.

  7. 김피자

    괜저님은 조금만 덜 재밌게 쓰시든가, 조금만 더 길게 써주든가 했으면 좋겠습니다.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8. 김괜저

    꼭 그러겠습니다.

  9. 김앎

    글 정말 맛깔나요!

  10. 김괜저

    감사합니다!

  11. 천적

    ㅋㅋㅋㅋㅋㅋ재밌는 동네

  12. 김괜저

    참고해서 나중에 커피집을 하자

  13. gene

    전부터 저쪽 동네에 팥죽과 팥빙수를 파는 가게를 하나 하고 싶었는데…

  14.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15.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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