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필립 시모어 호프만이 죽었다.

감기약 기운에 열 한 시간 자고 일어나는데 목과 코가 지독하게 말라있었다. 전날 사다 틀어놓은 휴대형 가습기는 이미 수 시간 전 물이 떨어진 채 꺼져있었다. 물을 마시러 가다가 고양이 Ziggy가 울어 돌아보니 거실에 Morgan이 자고 있었다. 전날 Yara네와 술 마시러 갔었나. 다들 느릿느릿 일어나 실없는 소리를 하며 빈둥대다가, 아점을 먹으러 나가기로 되었다. 거의 만 하루만에 집을 나서는데, 날이 몰라보게 풀려 있었다. 해가 내리쬈다. 산들바람이라고 부를 법한 것이 불었다. Yara-Brett 커플, Jessica-Kyle 커플, 그리고 독립체인 나와 Morgan 이렇게 우리는 세 가지 다른 종류의 블러디 메리가 나오는 집에서 끼니를 때웠다.

다같이 장을 보러 가서 과일 같은 걸 사고 나서, Maria Hernandez 공원에 죽치고 앉아있기로 했다. 스케이트보드 연습생들, 머리를 빡빡 볶은 할머니들, 햇빛 받으러 살을 드러낸 엄마 아빠처럼 자기도 외투를 벗으려고 꿈틀대는 애새끼들이 무척 예뻐 보였다. 더러운 화장실마저 살구색 페인트를 새로 먹고 취해 있었다. 우리 중 하나가 전날 바에서 가져온 분필을 꺼냈다. 그걸로 길바닥에 낙서를 좀 했다. 분자구조, 자궁, 각종 먹을것을 그렸다. 그렇게 올해 처음 느껴보는 진한 햇빛에 노릇노릇 타고 있던 중에, 누가 필립 시모어 호프만이 죽었다고 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다들 좀 놀랐다. 각자 좋아하는 출연작을 하나씩 댔다. 나는 그를 대표할 만한 다른 작품들을 애들이 댄 다음에 차례가 돌아온 것이 달가왔는데, 내 머리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다름아닌 Doubt였기 때문이다. 마침 전날 뉴브런즈윅에 새로 잡은 집 앞에 있는 대학극장에 걸린 작품도 Doubt였기에, 마침 맹렬히 기억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그의 죽음을 사람의 죽음으로 슬퍼하기보다 이집트 피라미드가 무너져버렸대 하는 소식을 듣는 것처럼 구경거리를 놓친 그런 보잘것없는 감정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Skirball 학교극장을 지날 때마다 그가 나왔던 Othello, 저걸 봤어야 했는데 했던 그 기억, 그리고 군대에서 HH형이 그의 장교사무실로 나를 불러 몰래 Synecdoche, New York를 보고 귤 까먹었던 기억들까지 떠올라 한참이나 어깨가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눈구름이 몰려와 다시 추워졌고, 우리는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개공원에서 개들을 무척 오랫동안 구경했다.

  1. jamssong

    이 블로그에서 보고 Synecdoche, New York을 봤었는데, 한번 더 보고싶어지네요

  2. 김괜저

    조만간 다시 봐야지

  3. neversunset

    와 사진이 너무 예뻐요…(필립세이무어호프만글에 이런걸 쓰게 되서 아이러니하지만)
    혹시 필름카메라로 찍으신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