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꾸할 도리가 없었다.

2014년, 온 가족이 기로에 섰다. 아빠와 엄마는 각각 삼십 년 근속한 첫 직장의 종착점이 시야에 들어왔고, 나와 동생은 동시에 출발점에 섰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올해에 중요한 결정들이 줄지어 있다. 서로를 참고하고, 조언을 구하고, 힘을 얻는다. 큰 고민일수록 간섭하지 않으려 노력하니 복된 가족이다. 그리고 함께 있는 것이 편안하고 늘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고맙다는 것, 그런 식이라는 것이 정말 대단한 행운이라는 것을 안다. 엄마와 나는 말을 하면서 생각하고, 아빠와 동생은 말을 쉬는 동안 생각하지만, 서로의 방식에 적응한 모양이 완연한 대칭이다.

아빠가 나에게 당신의 불안과 믿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지극히 미묘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퇴근해 신발을 벗으면서 내 뱃살을 툭 치고 들어오는 데에 몇십 줄이 코딩되어 있다. 나 역시 그와 대화할 때에는 물 한 잔 뿌린 숲이 파랗게 되살아나는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낀다. 할아버지의 방식은 그것의 제곱이다. 돌아가기 전날 통화로 인사드렸는데, 내가 하는 일을 모르시고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의 일 해 주는 거, 공정하게 해라.」 별 말씀 아닌 것 같지만 내가 고민하던 데에 너무나 적확히 맞아서 대꾸할 도리조차 없었다.

  1. 마말

    연륜이 쌓이면 그런가봐

  2. 김괜저

    그런가봐

  3.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