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에 갔다.

아빠의 갑작스런 제안으로 온가족이 가까스로 시간을 맞추어 주말에 속초·양양·강릉에 다녀왔다. 원주, 횡성, 강릉, 대관령 등에 인연이 있는 우리 가족의 가장 강력한 ‘기분 전환’의 수단인데, 이번에 그런 전환이 필요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도루묵 찜, 곤드레밥, 곰치국 같은 음식을 먹고, 산과 절에 들른다. 낙산사와 상원사였다. 살짝 내린 눈이 잘 굳어서, 너무 춥지 않았지만 겨울 분위기를 내기에 충분했다. 분위기를 낸다는 것은 굉장히 능동적인 행동이며, 여럿이 함께일 경우 모두가 합심해야 이룰 수 있는 사업이다. 저녁에는 할매가 사투리로 자꾸 반건조 오징어 사 가라고 하는 구멍가게에서 맥주와 안줏거리를 사서, 나를 뺀 나머지 식구의 새로운 관심사인 여자배구를 함께 보며 먹었다.

같은 곳에 일 년 전에 갔던 사진과 비교해도 사진이 다른 것에 놀라고 좋아한다. 촬영 일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 별 생각 없이 그냥 가지고 다녔다. 눈이 살짝 덮여서 먼 것이 더욱 뿌연 듯하면서도 선명하고, 그림자도 하루종일 길어서 사진에 추운 기운이 잘 드러난다. 사진 같은 것이 조금씩 볼 만해진다고 내 안에 좋은 게 점점 쌓인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고 미신이지만, 외제 위로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괜찮은 처방이 될 수 있다. 물론 세련된 위로건, 배배 꼰 위로건, 양판형 위로건 효혐은 같다.

  1. 고율

    지붕을 찍은 두 번째 사진이 좋네요.

  2.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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