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파리를 때려잡고 소를 먹었다.

본 블로그의 주된 목적은 본래 하루를 돌아보는 것이었는데, 요즘들어 인생을 열심히 돌아보느라고 하루하루의 업적을 기록하는 데에는 소홀했기 때문에 오늘은 새벽에 제출할 마르크스주의 과제로 돌아가기에 앞서 오늘 하루만 충실히 옮겨놓도록 한다.

일단 냉장고 안팎에 초파리가 초 창궐했다. 냉장고 내용물을 다 비우고 모든 표면을 다 싹싹 닦아냈음에도 아직 박멸되지는 않은 상태. 지식인과 Answers를 통해 동서양의 민간요법들을 총동원했다. 창문을 열고 좋은 날만 피는 향을 피웠다. 곳곳에 사과식초를 덥혀서 깔때기를 씌운 초파리덫을 설치했다. 부쉬윅은 초파리도 존나 힙함을 알기에 무인양품 사쿠라 향과 거르지 않은 유기농 사과 사이더 식초를 대접했다. 모든 조치를 취해 놓고 현관문을 열어 둔 채로 소파에 늘어져 있으려니까 윗집 양반이 이 집은 뭐가 이리 소란한가 하며 들어와 나 어슬렁 어슬렁 어슬렁 댔다.


점심을 샐러드 비벼서 간단히 때운 까닭은 저녁을 두 분의 트위터 동무들과 만나서 거창한 걸 먹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St. Anselm에 갔는데, 화덕에 큼직하게 구워서 여럿이 나눠 먹는 고기와 아늑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파리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Robert et Louise와 거의 비슷했다. 그때처럼 사과주와 간단한 샐러드를 시켰고, 빵과 같이 먹는 짭짤한 달팽이 요리는 조개가 대신했다. 출중한 음식과 처음 만났음에도 가상세계와의 격세가 적어 곧장 친해진 일행을 합쳐 오랜만에 주말을 주말답게 끝내는 기분에 젖었다.

  1. msg

    우와…

  2. 김괜저

    먹고 뼈 싸올 걸 그랬어요 …

  3. 김괜저

    초파리 자연발생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4. deeeeelee

    안녕하세요. 초파리의 알들이 번식하는 주방 싱크대에 뜨거운 물을 여러번 부어주면 박멸에 도움이 됩니다. 이미 인터넷에서 봤을 수도 있지만 아직 안해보셨다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것도 시도해보세요.

    -생활인

  5. 김괜저

    네 싱크는 이미 해치운 상태입니다. 음식을 하나둘 냉동고로 옮기는 단계까지 왔지요 …

  6.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7.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8.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