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스톤에서 동창회담을 했다.


방에 피아노도 있고

소속감을 좋아한다기보다, 친구 및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은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햇수로 육 년째지만, 기숙사 생활 삼 년간 지지고 볶은 그을음도 짙고 특히 이십 대까지는 워낙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사람들이다보니 연락망이 촘촘한 편이다. 유학 초반에는 뉴욕에서 많이들 만났다. 첫 해 모임을 내가 준비해서 우여곡절 끝에 스무 명 넘게 모였고, 그 후로도 뉴욕이 가까워서 또는 뉴욕이라서 연휴만 되면 방문하는 친구들로 늘 붐볐다. 그러다 지금은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 뉴욕 공동체는 일을 하거나 법대에 진학한 친구들 위주로 재편되고, 좀 더 전통적인 의미에서 「유학생활을 이어가는」 동창들은 보스턴으로 모이고 있다. 그래서 뉴욕에서 요새 모이면 직장인의 피로가 머리 위에 짙게 깔려있는데, 이번에 보스턴에서 다 같이 만난 분위기는 파릇파릇하면서도 점잖았다. 일단 HJ이가 운좋게 마련한 필요 이상으로 고풍스런 공간(실제로 문화유산 지정된 곳으로 정상회담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과 딕따의 품격있는 진행 덕이 컸다.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세상에 있다고 믿었던 (혹은 믿고자 했던) 시절은 지났지만, 놓였던 자리가 워낙 특수하기 때문에 우리만 하는 고민이란 건 분명히 있다. 꼭 만나서 털어놓고 그러지 않아도 그냥 비슷한 결정, 비슷한 곤란이 나 말고 누군가의 머리속에서도 돌아가고 있다는 안도를 통해 의지가 된다. 스스로의 기대치에 맞추는 것, 남의 기대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기대치가 남의 기대치는 아닌지 점검하며 쉬는 것, 이런 분야에서 나름 전문가들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적이 방이 MIT에서 새로 개조한 창고 건물에 있었는데, 리모델링 참 「여긴 창고였어요!」 허세로 과하게 (예: 첼시 마켓) 하지 않고 적정선을 잘 유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난도 함께 저녁을 같이 먹고, 빗자루로 검도 놀이를 하고 놀았다. 전망 좋고, 공간 좋고, 단 천적이 스테인레스 후라이팬이 좀 시원찮았는데 그걸로 레몬 생선구이 파스타를 하겠다고 덤볐다가 기름에 불 붙어 다 태워먹을 뻔 했다.

  1. 여랑

    부럽다 오랫만에 보는 얼굴들 많네 ㅎㅎㅎ

  2. 김괜저

    서울 있는 애들도 보고 싶다

  3. 샤워

    볼 때마다 달라지고 볼 때마다 같은 얼굴들이로구나. 텍사스도 동부에 있었으면.

  4. 김괜저

    좀 와

  5.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6.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