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국집에서 우는 친구를 만났다.

<창작한 거>에 든 글은 허구이오니 현실과 혼동하시면 더욱…….

Edward Hopper, Chop Suey (1929)

나는 아침에 잠깐 온라인으로 회의에 참석했다가, 아주 오래 전에 만나고 한 번도 연락한 적 없는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그 친구는 중국집에 물 한잔 앞에 두고 앉아서, 빳빳한 종이수건을 손에 쥐고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나는 먼 발치에서 그녀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만나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어 식당으로 들어갔다. 중국 음식도 하도 먹어 신물이 난 상태였다. 업타운에 사는 그녀는 차이나타운에 왔으니 꼭 차이니즈를 먹어야겠다고 했다.

나는 여자건 남자건 우는 사람 보는 게 좋지가 않다. 남자면 비교적 흔치 않은 일이므로 흥미를 느낄 수도 있지만, 이 친구처럼 눈물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중국집에 앉아서 울면서 하는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내가 안녕, 뭐 먹을까, 하고 종업원에게 메뉴를 달라고만 하고 가만히 있자 이 친구는 무척 당황해 울음을 그쳤다.

자스민 차가 나오기까지 기다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우리 엄마가, 라고 시작하기에 혹시나 큰 일인가 싶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가, 남자친구랑 여름에 같이 못 살게 한다, 라고 끝맺기에 더욱 속이 얼어붙었다. 남자친구는 서부에서 대학원 다니고, 난 미국에 달랑 육 개월 프로그램 온 건데, 여름방학에 가서 같이 좀 지내다 한국 돌아오겠다는 게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잖아? 그렇지, 그렇지. 골때리네. 골때리네라는 말 이거 참 좋은 말이다. 그냥 하면 되는 뒤끝없는 말이다. 나는 화장실에 가면서 종업원에게, 전채고 식사고 전부 준비되는 대로 가져와 달라고 했다.

밥 먹는 동안 조용한가 싶더니, 젓가락을 식탁에 소리나게 탁 내려놓자마자 그녀는 물었다. 너가 전화 좀 해 줘. 무슨 전화? 우리 엄마한테 나 미국에 좀 더 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남자친구 학교에서 여름학기 수강하겠다고 했는데 안 먹혔거든, 여름학기를 얼마나 제대로 하겠냐고, 탱자탱자하다 오려는 거 다 안다고 하는 거 있지. 너가 아니라고 설득 좀 해 주면 안 돼? 우리 엄마가 너 엄청 좋아하잖아. 네 말이면 다 믿는데.

아차, 싶었다. 이 친구 어머니는 이미 예전에 나에게 문득 전화해 조카의 진로 자문을 구한 바 있다. 걔가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데 그래도 외고는 보내야겠지? 이걸 나에게 묻는 건 「그럼요 어머니, 디자인은 취미에요, 재능이 있으면 나중에 선택해도 늦지 않죠」 뭐 이런 말이 듣고 싶으신 것이었을 텐데. 그때 뭐라고 했었더라? 대체로 자식 얘기는 못 듣는 부모가 남 얘기는 잘 듣는다. 내가 나중에 전화 드릴게, 그렇게 대답했다. 「고마워! 내가 여기까지 내려와서 너랑 점심 먹은 보람이 있다. 밥은 내가 살게…….」

  1. 유독 이 글엔 김영하의 향이 진하네요. 잘 읽었어요.

  2. 김괜저

    킁킁

  3.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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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chloed

    지금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을 법한…

  5. start king

    완전 재밌어요.!

  6.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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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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