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상을 만들었다.

몇 주 전 만들어 잘 쓰고 있는 책상을 소개한다. 싸게 팔길래 삼십 분 멀리 있는 목재상에서 합판을 사서 저녁에 낑낑대며 들고 왔다. 배관용 강관(plumbing pipe)에 흑칠해 다리로 썼고 반유광 폴리크릴릭으로 마감했다. 처음에는 폴리우레탄을 썼는데 광이 너무 센 걸 산데다, 아무리 창이 커도 실내 작업하기엔 냄새가 너무 심해서 벗겨내고 다시 칠했다.

그런데 여름에 뉴저지에 잠깐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면서 가구를 막 만들기가 좀 부담스러워졌다. 그래도 침대는 있어야겠기에 여러가지 방법을 구상하다가, 앵글로 만들면 조립 분리하기도 편하고 좋을 것 같아 철물점에 갔다. 앵글로 침대 만든다면 왠지 코치코치 물어볼 것 같아 연극무대에 쓸 소품이라고 둘러댔다. 그런데 마침 남아시아 계통의 이 직원께서 평생 연극 연출과 연기를 해 오신 베테랑이었던 것. 거짓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 작품 제목에 등장인원에 첫 공연날짜까지 얘기해드렸다. 다행히 그 날 밤 건물 지하에 누가 철로 된 소파 뼈대를 버려놓은 것을 발견해서 다시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1. chloed

    ㅋㅋㅋㅋㅋㅋ 작품 제목이 궁금해요

  2. 김괜저

    옛날에 수업 때 썼던 이름으로 대충 넘김 …

  3. gene

    창작은 뭐든 잘하시는듯

  4. 김괜저

    거짓말을 잘 합니다.

  5. 동히

    진짜 맘에들어요!

  6. 김괜저

    고마워요!

  7. j

    제가 원하는 책상이 여기있군요. 멋지네요. 전 만들 엄두가 안나요.(그저 게으른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8. 김괜저

    책상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

  9. 보랏빛물결

    근데 다리 끝부분이 뭔가 바닥에 흠집을 잘 낼 것만 같네요…

  10. 김괜저

    흠집을 잘 냅니다. 저 바닥엔 별 무리가 없어서 안 했지만 강관용 고무 뚜껑을 파는데 그걸 끼우면 좋겠습니다.

  11. 파란밤

    우와 멋있어요! 특히 배관 파이프로 만든 다리!

  12. 체라

    우연히 알게된후 즐겨찾기 까지 하고 종종 구경하고 있습니다.

    읽어갈수록 재미있으신 분 같아요 ^^

  13. Pingback: 나는 사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 괜스레 저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