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자 면접을 보았고, 생각을 좀 했다.

이 블로그에도 언제 한 번 비자 신청하고 면접 본 얘기가 자세히 나와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번처럼 촉박하고 초조했던 적은 없었다. 여차저차하여 생년월일이 잘못 나온 I-20를 급히 재발급받아 비자 면접을 보았다. 서류를 조금 지나치게 완벽하게 준비해 갔기 때문에 면접이 싱겁게 끝나고 나서 약간 허탈한 마음을 스스로 발견하고, 약간 쪽팔렸다. 뉴욕 프랑스 대사관에서 비자 신청할 때에도 훨씬 여유로웠었는데, 이번에 고생하면서도 그 고생을 계속 내부 기각하느라 힘을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들었고, 많이 돌아다녀봐서 훌쩍 떠날 준비를 늘 하고 있는 그런 가벼운 영혼 연기를 했던 게 좀 쪽팔렸다.

처음 떠나던 2007년에는 느끼지 못했던 좀 찐득찐득한 아쉬움이 좀 많다. 예컨대 서울 퇴근길 지하철에서는 모두가 하나같이 「당신도 알 만 하네요」 같은 무표정을 서로에게 은근히 겨누고 있다. 「당신도 일하기 존나 싫은데 모니터 쳐다보며 겨우 하루 버텨서 눈이 여간 뻐근한 게 아님에도 이 시간에 DMB라도 봐야 자신에게 잘해 주는 것 같지 않나요?」 이런 패색 짙은 연대감이 조금 그리울 것이다. 내가 느낀 뉴욕에서는 나와 네가 공감을 얘기할 만하다는 점이 어떤 일대일 제스처로 증명되지 않으면 그런 무의식적 결속은 어렵다. 떠나는 마당에 보니, 모두가 같은 배를 타고 하는 멀미의 따스함은 서울만한 곳이 없다.

면접이 끝나고 교보문고에 들러, 한국에서 그간 사고 싶었는데 못 산 책 몇 권을 샀다. 특히 프로파간다 <젊은 목수들>은 하도 주변에서 얘기를 많이 해서 (내가 침대와 책장을 만들자 취미 목수가 되려냐는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그건 박명수 → 작곡가와 비슷한 거다) 보고 싶었는데, 막상 보니 재밌긴 했는데 읽고 도움을 얻을 부분이 생각보다 적었다. GRAPHIC 인쇄 특집호 보고 배울 점의 목공 버전을 기대해서 그런가. 나처럼 남의 손 간 건 싫고 (반제품) 제대로 배울 마음도 딱히 없이 그냥 되는 대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볼 만한 자료가 별로 없는 게 목공이다. 미송으로 못과 철물 때려박아서 만들어도 <쓸 만 하던>데 쓸 만 한 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로 자료를 만들기 때문에.

교보문고에서 나와 명동으로 갔는데 비가 오락가락해서 걷는 길에 책을 읽다말다했다. 평일 오전이라 거리에만 사람이 많았기에 텅 빈 <공차> 3층에서 남은 일들을 좀 정리했다. 서울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뭐 하나 찾아서 해야 하나, 그런 기분이 잠깐 들었지만 차가 식어 타피오카 구슬을 들이킬 수 있게 되자 이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