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혐의를 받을 만 하다.

올 여름 나는 죄를 지었다.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을 용납했다. 나의 정서와 그의 자아를 피차 보호해냈지만 그로부터 세상을 보호하는 데에는 여실히 실패를 했다. 동정이 필요한 사람으로 진단하고도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똥 싼 기저귀를 그대로 채워놓고, 저런 인생도 괜찮을지 몰라, 그렇게 뒀다. 몇 밤 전에 Dogvile을 보다가, 「내가 남을 용서하는 게 교만이란 건가요」 하는 부분이 무척 닿았다.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힘이 사라진 것인지, 그냥 그 장이 닫힌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내 친구도 적도 위도 아래도 아닌, 개콘 특별출연처럼 쓸모없는데도 끼워 넣어야 하는 지나가는 등장인물이라는 점은, 나와 닿는 모든 현실의 면면에 의미를 새겨넣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내 성격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을 주인공으로 특별히 극을 따로 써서 저장한다. 그럴 때 나는 무척 사악하다. 이미 사이에 철조망을 세워 놓은 채로 동물원에서처럼 관찰하면서, 내 입맛에 맞는 의미를 부적처럼 써서 이마팍에 붙여버린다. 내 인생을 재미있게 하고, 내 자아에 먹을 것을 준 그 시간에 내가 만약 몇 계단 내려가 눈 딱 감고 <소통>해볼까 하는 궁리라도 했다면 그 사람 연못에 조금이라도 물결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세상이 나아졌을> 것이다. (아하!) 곧 나는 세상이 나아지는 것보다 세상이 재미있어지는 것을 좋아한다는 혐의를 받을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