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지점'이 있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성수동, 논현동, 녹사평, 홍대, 동대문, 시청, 북촌 등 다양한 곳에서 촬영이 있어서 굳이 나 혼자 이유를 만들어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거의 매일 보다보니 많이 익숙해졌다. 어제 인터뷰 두 건을 마치고 연남동 <옥타>에서 따뜻한 사케와 위스키 하이볼, 적포도주 등을 골고루 마시면서 잡지에 관한 얘기와 잡지와 상관없는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오늘은 새로 작업 맡겨주신 분께 홍대에서 점심을 얻어먹었고, 일호선 타고 안양으로 내려왔다. 세단장한 롯데백화점 이철 헤어커커에서 부원장님이 이발을 해주었는데 딱 원하는 윤곽을 삽시간에 만들어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일인 미용실 같은 곳에 갈까도 싶었지만, 단골이 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 그런 노력(의미있는 인격적 접촉)을 들일 일 없어서 그만두었다. 떠날 도시를 마주한 마음새는 종종 그렇다.

그러고 나서, 은퇴 후 오랜 취미인 사진을 다시금 시작하려고 디지털 사진기를 유심히 보시는 아빠와 특유의 가벼운 딴청으로 그의 관심을 돌려놓으려는 엄마를 만나 초밥으로 저녁을 하고 Life of Pi을 보았다. 뉴욕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 셋이 함께 볼 영화로 나는 진작부터 이것을 찍어 두고 있었다.

연말에 동창들을 모아 조촐하게 놀았는데, 신기하게도 동창 모임은 매년 같은 사람들이 끔찍히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만나 우리의 여전함을 확인하고 놀라며 즐거워하는 그런 자리임에도 그 자리의 느낌은 매년 무척 다르다. (올해는, 놀랍게도, 약간 홍상수 같은 색채감이 있었다) 우리가 바라본 우리는 매년 그대로이고 그 시선들만 나이를 먹어가는 듯하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을 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게 되는 게 맞는 것인지 누가 알려주시라.

  1.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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