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산엘 다시 갔었다.

다시 부산엘 갔었다. 목적은 여행을 가는 것 그리고 친구 두세 명을 만나는 것. 첫 번째 목적은 여행을 갔으니 달성했고 두 번째 목적은 친구가 한 명은 요양중, 한 명은 부재중인 관계로 삼 분의 일만 달성했다. 그러나 그 한 명의 친구가 바로 만나면 좋은 친구 O였으므로 대충 다 달성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작년 사월에 무가식과 함께 갔을 때 쾌청한 바다도시와 벚꽃길 냄새 나는 사진은 많이 찍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사진 생각 없이 돌아다녔다. 돌아다녔다는 말은 내가 이 블로그에서 가장 많이 쓴 말 중 하나일 것 같다. 하는 게 돌아다니는 거니까. 마지막으로 혼자 살았던 게 거의 30개월 전이니까 한 밤이라도 혼자 있는 게 즐겁고 필요하다. 일이병 때에는 그래서 일직 서는 날을 기다리곤 했다. 추워서 미라처럼 굳은 채로 두유를 마시며 프랑소와 오종 단편선을 보았던 날이 계속 생각난다.

부산이 한두 군데 찍으면 끝나는 관광지도 아니고 그냥 평소처럼 지낼 생각으로 간 것이라 특별히 한 것, 먹은 것은 없다. (마말이 지난주 페이스북에 돼지국밥 먹고 싶다고 쓴 것에 대한 답변으로 첫 끼는 국밥을 먹긴 했다.) 다만 밤에는 해운대에서 비싼 치즈와 프로슈토, 말려 간 토마토 통조림, 호두를 사 와서 아무렇게나 마구 먹었다. 여행의 힘을 빌어 평소에 안 하는 이유들을 치워버렸다. 사실 이 야식에 필요 이상의 감정 이입을 한 것을 인정한다.

부산에 있는 동안에도 부산엘 왜 갔는지 설명해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을 발견하니 웃겼다. 설명하며 살아야 한다는 집착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길 하나를 건너면서도 의미가 필요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유 없이 간다는 것조차에도 의미를 댈 수 없으면 큰 일 난다. 생의 켜켜에 의미를 관개(灌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은 서울의 반대라서 갔다. 서울에 있는 것들이 없고 서울에 없는 것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똑같은 것이 산 넘고 물 넘어도 있다는 의미에서의 반대. 하트의 여왕과 스페이드의 여왕 같은 반대. O와 나는 광안리를 걸으면서 분당에 바다가 들어찬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분당에 광안리가 똑같이 있대도 부산에 갈 것이다.

  1. 아르

    첫 번째 목적 달성 축하드려요 광안리 생각보단 사람이 없져? ㅎㅎ 추워져 더 없는듯

  2. 김괜저

    생각보다 많던데요?ㅎㅎ

  3. Ryan

    부산은 여름에 해수욕하러 많이 오지만 개인적으로 겨울 바다가 더 아름다운거 같아요.

    고향이 부산인지라 돼지국밥을 보니 왠지 댓글을 남기고 싶더라구요. ㅎㅎ

  4. 김괜저

    여름에 가도 해수욕은 잘 안 해서 저도 겨울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