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됐으면 좋겠다.

아마 진심일 것이다. 정말 자신이 유일한 새정치 적격자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실현시키지 못해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는 게 다 진심이었을 것이다. 가짜라고 느껴서 실망한 건 아니다.

내게 대통령 선거는 지도자를 뽑는 게 아니라 적을 고르는 것에 가깝다. 누가 되건 오 년간 실망할 일은 충분히 많을 것이다. 나와 함께 앞으로 달려가 줄 거란 부푼 기대를 어떻게 오 년마다 되풀이하나. (휴거론자도 아니고) 그래서 정책에 더불어 얼마나 민주적 의사결정에 소질 있는 사람인지 얼마나 말이 통하는 사람인지를 보는 것이다. 단 두 명 사이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판엎기로 퇴실하는 건 결격사유다. 이거 비겁하다. 공약에 있어서는 실현 가능성을 보고 타협해 점진적으로 하자고 늘 말했으면서 내려놓는 데엔 중간이 없는 건 양면이 아닌가. 훈훈한 단일화란 결과의 순간이 절대과제였기 때문에 갈등을 감수했던 것인데 「억울하고 분하다」는 인상을 남기고 나가면 곤란하다. 「새 정치의 꿈이 미뤄지고」「국민 여러분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활짝 꽃피우지 못하고」이렇게 갈테니 단일후보 지지해달라니 무슨 심보인가. 예전에 그런 여자친구가 있었던 것 같다.

대의를 위한다는 말 아래 참 몹쓸 짓도 많이 일어나는 거 알지만 결국 그 오그라드는 대의란 말로 정치가 지탱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자신을 양보하는 것이 진짜 양보지, 자신의 순백 청정 자아를 위해 지금의 권력을 양보하는 것은 양보라고 할 수 없다. 울면서 기자회견을 할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가 얼싸안고 쇼를 해 줬어야 한다. 남은 기간 동안 얼마나 정권교체를 위해 영향력을 발휘해 줄지를 보고 평가함이 옳겠지만, 이미 「뭔가 되게 고귀한 게 꺾였다」고 반응하는 주위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나는 안철수 지지자였던 적은 없지만 내가 잘 아는 내 주변의 모태 냉담자들을 CPR한 그 힘을 어떻게 써 줄지 무척 기대했으나 사출(ejection)로 끝나다니 안타깝다. 반정치 정치인이란 유례없는 명찰로 율도국을 세우려는 것이라면 행운을 빈다. 정치혐오를 연료로 쓸 수 있는 기회는 이렇게 날려버렸다.

「안 후보도 이걸 원하셨어요」식으로 야권 지지자를 결집한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지만 몇몇 식견있는 안 지지자들이 다행히도 재빨리 선언해주고 있듯, 따라 죽겠다는 엄한 마음을 자제하고 반대쪽에 뭐가 있는지 충분히 두려워하자. 이것도 나름 수백명이 보는 블로그인데 이걸 다 읽을 분이면 이미 생각이 있을테고, 나머지 「예쁜 사진이 요기잉네」방문자들께서는 마음이 어떻게 동하실지 몰라 제목은 희망차게 썼다. 나도 오늘만 비극을 즐기고 내일부터는 희망찬 일만 해야지.

  1. 앞발

    구구절절 동의합니다. 이 시점에 울분에 찬 듯한 목소리는 좀 아니죠…

  2. 김갱

    마지막 구절이 좋네요. 입 안에 되내이다 갑니다.

  3. lumineux

    율도국 좋지…

  4. 예쁜 ~잉네 방문자

    도 역시 공감합니다.

  5. 김괜저

    센스ㅎㅎ

  6. 지혜

    어제의 제 심정과 200% 같네요.

  7. 남남

    정치 혐오층, 민주당에 대한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을 끌고 올수 있는 전무후무한 사람이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어안이 벙벙하기만 합니다.

  8. 월요일

    처음부터 끝까지 공감공감 또 공감. 안철수라는 사람에게 실망했어요. 나는 과학같지도 않은 사회과학을 하는 인간이라 공돌이의 논리전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9. 김괜저

    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구요 그냥 상황에 실망이죠 🙂

  10. 덥수룩수염

    한마디한마디 전부 공감갑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답답하고 착잡하네요.

  11.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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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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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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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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