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수에서 종이와 빵을 사고 미용실에 딸려 있는 커피집에 앉아있었다.

상수에서 종이와 빵을 사고 미용실에 딸려 있는 커피집에 앉아있었다. 커피가 생각만큼 비싸지 않았고 바에 앉았으려니까 다 마신 잔을 알아서 다시 채워주기까지 했다. 연예인 같은 머리를 하고 검은 옷만 입는 여성들이 많았다. 잡지 ㅎ을 읽고 있었는데 한글 타이포그라피처럼 취미 창작자도 덕후(비전문 연구가)도 부족하고 종사자도 힘들어 척박척박한 분야라면 차라리 폐 끼칠 걱정도 아무 자격도 없이 덤벼도 욕 먹을 짓은 아니지 않은가 싶었다. 뭐라고 정리하려는 때에 KM이 왔다. 도자기과 여성에 대한 얘기를 잠깐 하다가 치과 신경치료 얘기로 넘어갔다.

같이 에이랜드에 들러서 길종상가와 The Book Society 반짝가게를 구경했다. 유에서 유가 무에서 유보다 창의적일 수 있는 좋은 예이자 (<할머니의 경쟁자>가 첫인상이었기 때문에) 근본 없는 이 목공 초심자의 우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분의 작품들을 보고 싶었다. 느낀 점은 나도 하나를 만들더라도 읭 하게 만들어야겠다는 것. 그렇게 다짐은 했는데 정작 지금 만드는 건 무능력을 숨기기 위해 최적화된 반듯한 모양의 독서 걸상이다.


검지에 끼는 큰 반지가 흰 것 하나, 검은 것 하나 이렇게 있어야 하는데 늘 검은 것만 잘 없어진다. 싼 것은 잘 잃어버리고 잃어버렸다는 것도 쉬이 잊어버린다. 오층에서 내려오는 길에 무광택으로 잘 빠진 것 하나 새로 샀다. 검은 반지로는 한 5호쯤 되는 것 같다. 잘 맞는지 좀 애매했는데 그건 아까 갔던 그 미용실에 딸린 커피집의 지하 화장실에 AVEDA 손 크림이 준비돼 있었기에 손가락이 무척 촉촉했기 때문이었다. 사고 보니 다행히 촉촉하지 않은 손에도 잘 맞는다.


유니클로에 전쟁이 났다. 나도 금요일에 친구를 기다리면서 우연히 들러 내복을 사고 빼빼로를 받았는데, 주말 몇몇 매장처럼 히트텍을 내세워 나를 줄 세우려 했다면 무척 성이 났을 것이다. J+ 때문에 났던 난리와는 조금 다른 새로운 최저점이다. 이하이 노래를 어디선가 틀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이 「꺼져줄래」를 떼창하고 다같이 호호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 빼빼로는 유니클로에서 일하는 검은 누나에게 선물해 롯데의 선순환을 이룰까 하다가 삼각지까지 걸어가는 길이 너무 멀고 배고파 먹어버렸다. 그리고도 어찌나 곯아 보였는지 꿀물을 사러 들어간 편의점에서 주인 아줌마가 그냥 먹으라고 피자호빵을 주셨다. 안 팔릴까 걱정할 늦은 시각도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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