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낮에는 너만큼 따사로운 그런 사나이는 못 되는 것 같다.

충무로 어딘가 골목에는 이런 분이 앉아 있다

사무실이 강남역으로 옮긴 뒤 점심식사의 질이 확 낮아졌다. 커피집이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곳이니 좋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싸고 맛있는 데 없다. 대신 집 앞에는 아침에 1700원으로 할인해 주는 ‘카페씨엘’이 있으니 출근길은 해결됐다. 강남이라 좋은 점은 저녁 약속 잡기 쉽다는 것과 (강남역에서 만나서가 아니라 이태원, 종로, 방배동 등으로 움직이기가 편하니) 출근버스가 집 앞부터 직통이라는 것 정도다. 그런 강남역에는 그래도 추억이 많이 남아있다. 3차로 간 ‘하바나 몽키’에서 폭음한 추억 (그런 비슷한 추억이 한 50개 쯤),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유흥한 Alliance Française에서 애매한 수업을 들었던 추억, 남자 동창들끼리 칙칙하게 모여 ‘준코’였나 그런 비슷한 데에서 대충 놀았던 추억, 바로 얼마 전에도 간 레인보우에서 복층에 머리 찧은 기억 등. 아 강남아! 네가 아무리 매일같이 변해도 네가 지겹다. 지오다노를 기준으로 동서남북 일 키로미터가 지겹다.

오늘은 퇴근하고 집에 그냥 가기가 심심해서 가로수길까지 걸었다. 저녁 대신 뭐 간단히 걸으면서 먹을 게 없나 보면서 올라갔는데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타코집에 들어갔다가 분위기가 너무 단란한 외식스러워서 나왔다. (귀찮아하는 점원에게 대충 부리또 하나 말아 달래서 가는 그런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논현역 근처에 보석류 공방을 겸하는 커피집이 하나 있길래 계피가루를 막 뿌려주는 카푸치노로 끼니를 때웠다. 손님을 대하는 목소리와 자전거를 타고 들른 친구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찰지게 달라서 재밌었던 곳이었다.

반면 가로수길 주변은 썩소를 머금게 할 때가 많기는 해도 아직 지겹지는 않다. 점점 ‘가로수길스러움’의 수위가 높아지는 게 재미있기 때문이다. 국내 ‘신진’ 디자이너들을 소환해 구성한 편집가게에서 줄무늬 뜨개옷을 하나 샀다. 빨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가격 이만팔천원. 입고 있던 모자 달린 웃옷은 Housing Works에서 산 만오천원짜리였으니 나름 격이 올라간 거라고 생각한다. 안목의 수준이나 일관성에 따라 연금을 주는 공산국가가 도래하면 기쁘겠다. 또 다른 가게에 가서는 없을 게 분명한 내 검지 굵기 검정 반지를 기어코 찾아내겠다고 서랍을 뒤지는 점원에게 너무 미안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저번에 남대문에서 도매로 열 개 그냥 살 걸 그랬지, (손가락이 열 갠데) 너무 많다고 망설이다 눈총 받은 게 떠오른다.

알 사람은 아는 것 같은 책잡지 DOMINO 회의에 초대받아 몇 번 나갔는데 일요일에 교회 나가는 사람들의 즐거움에 대칭할 그 어떤 깨알같음을 느낄 수 있어서 내가 있어도 되나 싶은 염려를 참고 버팅기고 있다. 포도주랑 맥주병 따는 거 말고는 전혀 쓸 데가 없는 내 주머니칼이라도 가져가서 쓸모있게 굴 것을!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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