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Y를 만났다.

관악구 모 대학에 Y를 보러 갔다. 휴가 첫날 약복 바람으로 맞선임을 만나주다니 감동이다 그것도 군인 안 만나주기로 유명한 군인인 이 친구가. 찌라시처럼 길을 덮은 은행잎과 신입생 딸내미의 안내를 받으며 교정을 관광하는 가족들을 보며 학생회관에 도착했다. 음악감상실에서 만났다.

어린이였을 적부터 내게는 나를 나름의 맞수 같은 것으로 설정한 친구가 옆에 있었다. 중 2 때 이모군과는 서로에게 존댓말을 하고 지냈을 만큼 그런 놀이에 푹 빠졌었다. 고등학교에서도 대충 그런 친구들이 있었고 그런게 무척 즐거웠음은 인정하지만 얼마나 우리의 멘탈성장에 도움이 되었을지는 의문이다. 내게 MSN Messenger란 그 때의 상호 천적놀이가 지나치게 오롯이 기록돼 있는 흑사실록 같은 존재다. 이 블로그에도 돌려보면 그런 흔적들이 탄알 자국처럼 많이 남았다. 어쨌거나 Y는 군대에서 내게 그런 역할을 해줬다.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동력이었다.

학교나 군대나 공통점은 그런 건설적 앙숙관계에 츤데레-호의의 꺼풀을 덧씌워 행복하게 지내기 무척 좋은 환경이었다는 점이다. 자아를 확장하려면 남을 티나게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소사회에서 어느 때는 거울로 어느 때는 우상으로 어느 때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내려다 볼 아래층으로 상호 참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됐다. 고 3 때는 우리 모두의 세계가 한꺼번에 무너져내리던 시대였기 때문에 폐허에 불을 지르는 듯한 ‘에라이’가 있었다고 하면, 군대에서는 약간은 일방적인 면이 있었다. Y의 세계가 나보다 좀 더 확실하게 무너져내리던 틈을 타 내가 비겁하게 고지를 선점했기 때문이다.

Y는 구멍난 약속을 땜질하러 만나준 내가 이렇게 의미부여하는 글을 쓴다면 실소하겠지만, 그의 둥지에서 만나 무덤덤하게 구내식당 점심을 먹어서 제법 기분이 좋았다.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나처럼 영향력을 즐기는 사람에게 친구가 어느 날 내 꼰대를 사절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은 매우 현실적인 고민이다.

  1. Y

    이런 틈새라면같은 (실소)

  2.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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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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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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